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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을 다녀와서

9년 전 오늘 글입니다.

[대전문화연대 전반기 답사 후기]

파주는 북한의 개성과 서울의 중간에 있는 곳이다.

평소에는 정확하게 파주가 어디에 붙어 있었는지 잘 몰랐다. 판문점과 임진각이 이 지역에 있었다. 잘 모르지만, 남북통일이 되면 대한민국의 중심이 될 곳이었다.

대전에서 버스로 3시간이 족히 걸렸다. 서울을 관통하여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예정대로 대전 시청 앞에 13명이 모여 정각 8시에 출발했다. 박은숙 공동대표의 수고로 약간의 간식과 물을 나누어 갔고, 마냥 달려 도착한 파주의 헤이리 예술마을에는 배재대의 이정규 교수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점심 먹기 전에 우리는 헤이리 예술마을의 중심 거리에 가서 약간의 설명을 듣고 주변을 둘러 본 다음, 근처에 만들어진 식당 거리의 맛있는 한 식당으로 옮겼다.
  
헤이리란 예술인들이 꿈꾸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1998년에 시작되어었다고 한다. 15만평에 미술인, 음악가, 작가, 건축가 등 380여 명의 예술인들이 회원으로 참여해 집과 작업실, 미술관 박물관, 갤러리, 공연장 등 문화예술공간을 지으면서 시작된 마을이다. 마을 이름은 경기 파주 지역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래농요 '헤이리 소리'에서 따왔다고 한다. '해이리'가 아니라 '헤이리'이다. 이름부터 달라 보인다.

이런 사전 지식을 갖고, 헤이리에 도착해 처음 받은 인상은 이 마을도 상품이 되었구나!'였다.

자본주의 역사는 상품의 역사이다. 상품이란 팔기 위한 물건이다.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다른 것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우리가 뜻을 바쳐야 할 것은 수단이 아니라, 아름다운 대상이어야 한다. 헤이리의 중심가에 있는 광장의 헤이리 지도 앞에서 배재대 이정규 교수님은 헤이리가 만들어진 역사와 마을의 현황에 대해 짧고 짜임새 있게 설명해 주셨다. 교수님은 10년 전에 이 마을에 오셨다고 한다. 평소에 내가 가진 교수님에 대한 인품이나 말씀하시는 인상에서 이 마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을 때, 예술인들의 마음은 이 마을을 상품으로 보지 않으셨을 거라고 믿는다. 절대로 상품화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우리는 자연, 인간 그리고 화폐 세 가지를 말한다. 자연은 인간이 만들지 못하는 것이며, 인간은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며, 화폐는 실물이 아니라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얼마 전에 돌아가신 신영복 교수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기도 하다.
교수님의 설명을 들은 후, 만나는 건축물들을 둘러보면서 헤이리에서 배울 것은 자연과 다투지 않고도 더불어 함께 하는 공간을 만들어 살 수 있다는 '지혜'를 얻었다. 한길사가 지은 책방은 큰 충격이었다.  

점심 먹은 후에는, 정말 산책하는 것처럼, 게다가 이교수님의 친절한 안내와 설명을 들으면서 여러 건축물들을 살펴 보았다. 그 때마다 찍은 사진은 다른 분이 올리시기로 했다. 강제규 영화감독이 아버님과 함께 사는 집, 여배우 김미숙의 집, 내가 좋아하는 가수 안도현이 지은 집 등등. 모든 건축물들이 다 나름의 특색을 가지고 있드며 다르게 지어져 시간이 지루할 사이가 없었다. 다만 약간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걸어주는 발이 불평할 뿐, 새로 만나는 건축물마다 정신을 각성시켜 즐거운 오후를 즐겼다.

예술의 토양은 다양성에서 나온다. 다양성은 획일적인 것을 거부하는 자유의 개념이다. 자유의 반대는 타성이다. 타성이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감성이 갇혀 있는 상태이다. 어느덧 아파트로 들어찬 도시에서 나는 이미 타성에 젖어있다가, 이 헤이리에서 터져 나오는 새로운 감성에 오후의 지친 피로를 양보했다.
석가모니가 한 처녀가 준 '죽'을 먹고 깨달았듯이, 한 카페의 시원한 뒷테라스에서 팥빙수로, 시원한 아이스 커피로 힘을 얻어 우리는 마지막 코스의 여러 건축물을 보고 오후 4시경에 임진각으로 장소를 옮겼다. 이교수님과는 그 때 헤어졌다. 우리에게 시간을 허락해 주신 교수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정확하고 정중하게 하고 싶다.

헤이리에서 얼마 가지 않은 곳에 한강과 임진강의느이 합류하는 곳에 임진각이라는 통일을 바라는 사람들이 오는 공간이 있었다. 그 곳에서 만난 녹슨 기차는 이데올로기가 뭔데 길이 막혀 그곳에 있어야 하는 건지 '순진한' 나는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다음은 대전으로 내려오는 시간이었다. '지혜롭고' 편안하게 운전하시는 기사를 믿었더니 예정된 시간보다 20분이나 당겨 7시 40분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각자 아쉬움과 함께 헤어졌다. 그러나 난 회원 몇 분을 모시고 순대국밥에 막걸리 한 잔을 하고 헤어졌다. 치사하게 따로 간 것은 아니다. 제안했는데, 함께 하신 분이 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