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인디 라이프'

2년 전 오늘 아침 글이다.

러시아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이다. 대전에서는 나의 공동체 <대덕몽> 사회적협동조합 <대전혁신 2050> 주관한 "시민들이 함께 만드는 8,15 광복절 기념 행사 <새로운 독립의 아침 白개의 테이블>" 비가 오는데도 하고 있었다. 함께 해야 하는데, 나는 동해 바다의 한복판에서 응원을 했을 뿐이다.

 

나는 멀리서 '인디 라이프'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인디펜던트 라이프, 마치 인디 뮤지션처럼, 의존하지 않는 , 독립적인 삶을 살자는 것이다. 자유를 위해. 그런 선언하는 행사가 되었으면 한다. 주먹밥, 그날 먹었다. 망망대해의 바다 복판에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바다, 저리 보아도 바다였다. 마음으로 먹는 주먹밥일 수밖에 없다. 그래 그립다. 또한 100 독립군들이 먹었을 주먹밥, 그때의 주먹밥은 지금만큼 쌀도 아니고, 거의 대부분이 옥수수나 콩이었을 것이다.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특히 5, 18 광주 시민군의 주먹밥이 생각난다.  오니기리하는 말은 쓰지 않았으면 한다. 2019 8 15 아침의 주먹밥은 우리의 독립과 민주주의 상징하는 음식이었다. 음식을 준비했던 분들,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에 옮겨 구현한 은다르크, 김은형 선생에게 경의를 못한다.

 

너무 시간이 안가서, 배의 공동 휴게실에 나가, 갖고 유발 하라리 <21 Lessons> 요약본을 읽었다. "근대사를 과학과 특정 종교, 즉 인본주의 사이의 계약과정으로 본다. 근대 이후의 사회는 인본주의 교의를 믿고 그 교의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과학을 인용한다. 근대성은 일종의 계약이다. 이 계약은 우리가 먹는 것, 우리의 직업, 우리의 꿈을 주무르고, 우리가 사는 곳, 사랑하는 사람, 죽는 방식을 결정한다. 그 계약의 내용은 인간은 힘을 가지는 대가로 의미를 포기하는 데 동의한다는 것이다."

 

근대 이전까지 대부분의 문화는 인간이 우주적 규모의 장대한 계획 안에서 한 역할을 맡는다고 믿었다. 그 계획은 전능한 신 또는 영구불변의 자연법칙이 짠 것이므로 인류가 그 내용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 장대한 계획은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했지만, 인간의 힘을 제약하기도 했다. 인간은 마치 무대 위의 배우들 같았다. 전근대 사람들은 힘을 포기하는 대가로 자신들의 의미를 얻는다고 믿었다. 모든 일이 어떤 목적을 위해 일어난다고 믿었다.

 

근대 이후의 문화는 그런 장대한 우주적 계획 따위는 없다고 말한다. 우주는 "아무 의미 없는 소음과 광기로 가득차다." 우리는 우주 속의 작은 점에 불과한 어느 행성에 아주 잠깐 머물다 가는 동안 "활개치고, 안달하다. 사라져버릴" 뿐이다. 사실은 어떤 결말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어떤 일들이 차례로 일어날 뿐이다. 근대 이후의 세계는 목적을 믿지 않고 오직 원인만을 믿는다. 우리가 방법을 찾을 수만 있다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우리를 구속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무지 뿐이다.

 

그래도 이번 여행을 통해, 친구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친구들을 위해 기도"한다.

 

친구를 위한 기도/ 박인희

 

주여

쓸데없이

남의 얘기 하지 않게 하소서

 

친구의 아픔을

붕대로 싸매어 주지는 못할 망정

잘 모르면서도 아는

남에게 까지

옮기지 않게 하여 주소서

 

어디론가

훌훌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면서도

속으론 철 철 피를 흘리는 사람

떠날 수도 머물 수도 없는 사람

차마 울 수도 없는 사람

모든 것을 잊고 싶어하는 사람

사람에겐

그 어느 누구에게도

가슴 속 얘기

털어 내 놓지 못하는 사람

가엾은 사람

어디 하나 성한데 없이

찢기운 상처에

저마다 두 팔 벌려

위로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우리는

 

말에서 뿜어 나오는 독으로

남을 찌르지 않게 하소서

 

움추리고 기죽어

행여 남이 알까 두려워

떨고있는

친구의 아픈 심장에

한번 더

화살을 당기지 않게 하여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