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인문적인 삶을 살려면, 우리는 하는 일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 #복합와인문화공간뱅샾62 #사는_일 #나태주 #카이로스_시간 #시간은_나는_것이_아니라_내는 것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4월 27일)

4월도 거의 다 지나간다. <<탈무드>>에서 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돈을 시간보다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그 때문에 잃어버린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오늘 아침 화두는 '시간'이다. '시간'은 우리 삶을 작동시키는 핵심 동력이다. 많은 돈이 있어도,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도, 높은 지위를 얻어도, 죽음의 순간이 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시간' 없는 행복은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 주어지느냐, 우리가 그 시간을 얼마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 우리 삶은 결정된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픈 일을 '지금 여기'에서 이룩하기보다 하염없이 뒤로 미루면서 살아간다. 이를 인문학에서는 '시간 유예'라고 말한다.현대적 삶의 특징이다. '오늘 저녁엔, 이번 주말엔, 다음 휴가엔, 은퇴 후엔, 언젠가는…' 하고 되뇌면서 우리는 경험 하고픈 일, 이루고 싶은 것을 내일의 시간으로 넘기곤 한다. 미루기는 시간 부족의 대안이 아니다. 돈은 저축할 수 있어도, 시간은 저축하지 못한다. 아이와 보낼 지금을 놓친 사람은 나중에 그 시간을 채울 수 없고, 교양을 누릴 청춘을 갖지 못한 사람은 노년기에 이를 만회할 수 없다. '지금 여기'의 행복은 오직 '지금 여기'에만 속하기에 미루기는 후회나 자책을 낳을 뿐이다.

인문적인 삶을 살려면, 우리는 하는 일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시간을 더 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려운 일이 닥치면, 좌절하지 말고, 시간을 내어 바깥으로 나가라는 말이다. 삶에는 두 가지가 있다. 원하는 삶과 감수하는 삶. 한번 뿐인 인생을 그저 감수나 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면 바깥으로 나올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갖고 걸으면서 숙고해라. 그러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탁월한 결과를 얻는 지혜도 그 결과를 얻는 데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다. 예컨대, 글을 잘 쓰는 데는 재능과 작문 기술이 요구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충분히 시간을 들일 수 있다면 누구나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생각과 철학을 문장 들 속에 풀어 놓을 수 있다. 시간이야 말로 가장 창조적인 편집자가 된다. 다시 말해, 탁월한 결과를 얻으려면 결과에 상관 없이 우리는 시간에 투자를 해야 한다. 간단한 지혜인데, 우리는 그걸 잘 잊는다. 그러면서 늘 초초해 하고 조급해 한다. 나는 그런 경우에 다음 기도를 바친다. "신이여, 바라옵건대, 제게 바꾸지 못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차분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늘 구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니버의 기도>이다. 이걸 한문으로 하면 다음과 같이 세 자로 요약할 수 있다. 정(靜), 용(勇), 지(智). 여기서 차분함은 '조급해 하지않음'이다.

인간은 자기 시간을 스스로 결정하고 구성할 때 시간의 주인이 된다. 시간 압박을 덜 받으면서 과제를 수행하거나 여가에 사랑하는 이들과 온전히 긴 시간을 보낼 때, 시간의 풍요를 느낀다. 반대로 24시간 죽도록 애써도 주어진 일을 끝낼 수 없거나, 일하느라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충분치 않다고 여길 때, 우리는 불행감과 함께 시간 부족으로 고통받는다. 아무리 잠을 적게 자고, 여가를 알차게 관리해도 시간 부족을 해결하긴 어렵다. 일도 잘하고, 가족도 잘 챙기고, 친구도 자주 만나고, 취미 활동도 열심히 즐기는 사람은 불행하다. 왜냐하면 다이어리 가득 일정을 채우고 열정을 다해 뛰어봐야 일시적 삶의 만족도는 오를지 몰라도 끝내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쁨을 가치로 삼고 살면 우울이나 공허, 질병이나 죽음 같은 때 이른 번-아웃(소진)과 마주칠 뿐이기 때문이다.

시간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삶을 꾸미는 행복을 맛보려면 개인의 노력만큼이나 시간 정의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시간이 30대는 시속 30km, 50대는 50km로, 60대는 50Km로 빨리 간다고 투덜대는 주변 사람들의 푸념들을 들은 적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가속도가 느껴지는 건 느낌만의 문제일까? 어릴 때는 새로운 정보를 많이 경험하고 학습하기 때문에 어른에 비해 뇌는 훨씬 더 많은 일을 한다. 처리한 정보량만큼 시간도 느리게 흐른다. 어른들도 새로운 정보를 접하는 여행지에서 보낸 시간을 더 길게 느낀다. 여행지의 일주일은 익숙한 일상에서 보낸 일주일보다 훨씬 길게 느낀다. 그리고 나이가 든다는 건 과거는 길어지고 미래가 짧아지는 것이다. 그러면 시간을 길게 만드는 비법이 있을까?  낯선 길을 걷다 뜻밖 풍경을 만나면 멈추듯, 습관이라는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습관은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정해진 틀 대로 움직이므로 미래가 쉽게 예측되기 때문이다. 여행이 꼭 멀리 떠나는 것 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평소 가지 않던 길로 가보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낯선 음식을 먹으며 일상에서도 우리는 빠르게 삭제되는 시간을 붙잡아 느림을 만끽할 수 있다.

그걸 우리는 '카이로스의 시간'이라 한다. 좋아하는 일에 집중할 때는 시간이 평소보다 훨씬 빨리 가는 느낌이 든다. 좋아하는 사람, 영화, 책, 음악과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은 왜 그토록 빨리 가버리는지. 그럴 땐 시계를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 진정 좋아하는 일 앞에서는 아무 것도 계산할 필요가 없으니까. 반면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을 떠맡았을 때는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이런 시간의 놀라운 주관성을 가리키는 단어가 바로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이다.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이 분 초 단위로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시간이라면, 카이로스의 시간은 오직 내 마음 속에서 저마다 다른 느낌과 향기로 빛나는 시간이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하면 내 시간을 아무리 퍼주어도 아깝지 않은 느낌, 좋아하는 일에 몰입할 때는 평생을 다 바쳐도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 때, 카이로스의 시간은 유난히 빛난다.

그리고 시간은 '나는 것'이 아니라, '내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시간이 나면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한다. 하지만 시간은 내는 것이기도 해서, 그 시간에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그러니까 시간은 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는 것이기도 하여야 한다.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냈다가, 힘들게 비웠던 그 시간이 가득 채워졌던 경험은 행복하다. 끝으로 더 많은 시간을 더 바쁘게 일할 권리보다 더 적게 일하고도 풍요롭고 여유롭게 살 사회적 권리가 필요하다. 19세기에 8시간 노동제가 여가를 가져왔듯, 21세기에 걸맞게 육아나 간병 같은 돌봄 활동을 노동 시간에 포함하는 등 시간 제도를 손보아야 한다. 인간 행복을 중심으로 시간이 조직되는 사회, 우리가 꿈꾸고 추구해야 할 사회일 테다.

어쨌든 잘 "사는 일"은, 오늘 시인의 말처럼, "굽은 길은 굽게 가고 곧은 길은 곧게 가는’ 것이다. 달리 말해, 순리대로 사는 게 잘 사는 것이
다. 순리대로 산다는 건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욕심 부리지 아니하고 살아가는 것일 게다. 오늘 아침 사진은 내가 내 시간을 내는 곳이다. 맨발로 걸으면서.

사는 일/나태주

오늘도 하루 잘 살았다.
굽은 길은 굽게 가고
곧은 길은 곧게 가고

막판에는 나를 싣고
가기로 되어 있는 차가
제시간보다 일찍 떠나는 바람에
걷지 않아도 좋은 길을 두어 시간
땀 흘리며 걷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나쁘지 아니했다
걷지 않아도 좋은 길을 걸었으므로
만나지 못했을 뻔했던 싱그러운
바람도 만나고 수풀 사이
빨갛게 익은 멍석딸기도 만나고
해 저문 개울가 고기 비늘 찍으러 온 물총새
물총새, 쪽빛 날갯짓도 보았으므로.

이제 날 저물려 한다
길바닥을 떠돌던 바람은 잠잠해지고
새들도 머리를 숲으로 돌렸다
오늘도 하루 나는 이렇게

잘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