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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무기, 무공, 무명.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은 세종시 정부청사로 특강을 간다. 인문학 강의를 부탁했다. 인문학은 영어로 liberal arts라 한다. '자유기술'이라 번역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인문학이란 '자유를 위한 기술을 익히는 학문'이다. 최종 목적지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자유인으로 자유를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 특강에서 장자 이야기를 갖고 자유에 대해 좀 이야기하려 한다.

장자는 곤이라는 물고기가 붕이라는 새의 경지에 이른 후 남명(남쪽 바다)에서 노는 사람을 지인, 신인, 성인이라 한다. 사자성어로 물고기가 붕이라는 새가 되는 것을 우리는 ‘화이위조化而爲鳥’라 한다. '새로 변하기'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이렇게 인간의 잠재력이 변화하는 단계를 네 개로 장자는 말하고 있다. 흔히 우리는 이것을 ‘자유의 네 단계’라고도 한다.
  
▪ 제1단계: 상식인(常識人)이다. 이런 사람들은 기껏해야 과장, 군수, 장관, 국무총리 따위 사다리를 하나하나 오르는 것을 인생의 유일한 목표로 삼고, 이를 향해 일로매진(一路邁進)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다. 이들은 인간 한계 밖을 넘보는 것을 부질없는 짓이므로 거들떠보지도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메추라기처럼 시야가 좁기 때문에 자기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찾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런 가능성을 말하는 사람들과 실현하려는 사람들, 실현한 사람들을 비웃기까지 한다. 메추라기는 붕새보고 이렇게 말한다. “도대체 어디로 저렇게 날아간단 말인가?”
  
▪ 제2단계: 송영자를 예로 든다. 그는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주의자로, 전쟁의 근본 원인이 칭찬받기를 좋아하고 비난을 싫어하는 속물(俗物)근성-교양이 없거나 식견이 좁고 세속적인 일에만 급급한 사람- 때문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그런 것을 초월하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자신의 비난이나 칭찬에 “목계”처럼, “육중한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고 영광과 치욕을 분별해 세속에 구애(拘礙-거리끼거나 얽매임)되지 않고 초연(超然-세속(世俗)에서 벗어나 있어 현실에 구애되지 않다)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다. 그러나 스스로 칭찬이나 비난에 초연하지만, 아직도 칭찬과 비난을 칭찬과 비난으로 의식하고 칭찬받으려는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분별의 마음이 있다.
  
▪ 제3단계: 열자 같은 사람이다. 그는 세상사에 초연할 뿐만 아니라, 바람을 타고 아무데나 마음대로 떠다니며 자유를 누린다. 그러나 15일 지나면 돌아와 새 바람을 기다려야 했다. 이렇게 훨훨 떠다니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바람이라는 외부 요인에 의지했다. 아직도 기대(有待)하는 상태이다. 무언가에 의존하는 상태이다.
  
▪ 마지막 제4단계: 장자의 궁극적 이상이다. 우주의 원리에 따라 자연과 하나가 되어 무한한 경지에서 노니는 절대자유의 단계이다. 아무 것에도 기대지 않는(無待, 의존하지않는 독립) 완전한 자유를 만끽하고 구가하는 무애(無碍-막히거나 거치는 것이 없음)의 삶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삼무(三無), 무기(無己), 무공(無功), 무명(無名)한 사람이다. 자기가 없고, 공로가 없고, 이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들에 집착하거나 연연(緣緣-집착하여 잊지 못하다)해하지 않는 것이다. 자아나 공로나 명예의 굴레에서 완전히 풀려난 사람들이다.

오늘 아침 강조하고 싶은 거 다음의 세 단어이다., 무기, 무공, 무명.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영어로 I am nothing이다. 내가 이룬 것은 없다. 다 주변 사람들의 덕분이다. 그리고 자신의 명예를 쫓지 않는다. 그냥 오래되고 익숙해진 것들에 감사하며, 때가 되면 바꾸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산다. 오래되고 익숙해진 것들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때가 되면 멈추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오래된 것들 속에서 그리고 그렇게 바꾸고 멈추는 것들 속에서 나는 나를  맡기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익숙해진다는 것/고운기
  
오래된 내 바지는 내 엉덩이를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칫솔은 내 입안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구두는 내 발가락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빗은 내 머리카락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귀갓길은 내 발자국 소리를 잘 알고 있다
오래된 아내는 내 숨소리를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오래된 것들 속에 나는 나를 맡기고 산다

바지도 칫솔도 구두도 빗도 익숙해지다 바꾼다
발자국 소리도 숨소리도 익숙해지다 멈춘다

그렇게 바꾸고 멈추는 것들 속에 나는 나를 맡기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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