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와인 파는 인문학자의 인문 일기
모처럼 토요일 아침에 비가 오지 않아, 아침에 일찍 주말 농장에 나갔다. 오늘 아침 사진처럼 밭 두렁에 '불임'이라고 낙인 찍힌 튤립을 심었더니 싹이 나 꽃을 피우려고 꽃망울이 올라 왔다. 옆 밭은 아예 꽃이 활짝 피었다.
밭 둑에 완두콩을 심지 않고 왠 꽃이냐고 흉 보겠지만, 언젠가 배연국 <세계일보> 논설위원의 글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대충 이런 글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어느 날, 끔찍했던 한 수용소에 거대한 화물이 도착했다. 그 속에는 수용소의 모든 여성들이 사용할 수 있는 분량의 립스틱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고함을 질렀다. “누가 이따위 쓸데없는 걸 보냈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옷이나 치약 등 더 필요한 물품이 많았던 상황을 감안하면 이들의 반응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립스틱 공급이 천재적 발상이었음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자들은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입술을 칠하기 시작했다. 죽은 여성의 손에도 립스틱이 쥐어 져 있었다. 여성들은 입술을 화장하면서 행복했던 옛 기억을 떠올렸고, 곧 그런 시절로 되돌아갈 것을 희망했다. 립스틱은 여성들에게 삶의 희망을 불어넣었다. 팔에 새겨진 숫자로서 존재하는 인간이 아니라 외모에도 관심을 가질 줄 아는 인간임을 각인 시켰다. 수용소 여성들에게 립스틱은 단순한 화장품이 아니었다. 희망 그 자체였다. 희망은 우리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영혼의 에너지'였다. 그래 포로 수용소의 여성들은 립스틱으로 희망을 색칠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이다. 전쟁이 끝난 후 잿더미로 변한 독일에선 꽃이 립스틱 역할을 대신했다는 것이다. 역시 배연국 논설위원의 글이다. "한 사회학자가 조수와 함께 지하실에 사는 어느 독일 가정을 찾았다. 방문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교수가 조수에게 물었다. “저들이 재건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조수는 어려울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교수는 반드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는 것이었다. 조수가 까닭을 묻자 교수가 말했다. “어두운 지하실 탁자 위에 꽃이 꽂힌 병이 있는 것을 보고 알았네. 국가적 재난을 당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꽃 한 송이를 피우는 민족이라면 틀림없이 나라를 일으켜 세울 것이네. 아직도 희망을 믿고 있다는 뜻이거든!” 오늘날 독일이 유럽 최강국으로 우뚝 설 수 것은 이런 희망 에너지로 무장한 덕분이 아닐까 싶다."
립스틱과 꽃의 공통점은 희망이다. 희망은 우리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영혼의 에너지'이다. 끝없는 코로나의 터널 속에서 지금 우리가 가슴에 되새길 것 역시 희망일 것이다. 희망을 같자. 'Dum vita est, spes est(둠 비타 에스트, 스페스 에스트)'라는 라틴어 문장을 나는 좋아한다. 이 말은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건배사로 내가 자주 쓰는 것이 "스페로(spero), 스페라(spera)"이다. 이 말은 "나는 희망한다. 그러니 너도 희망하라"라는 말이다. 이 말은 '나는 숨쉬는 동안 희망한다'는 라틴어 'Dum spiro, spero(둠 스피로, 스페라)'에서 나온 말이다. "불행과 고난을 버티게 하는 힘은 실낱 같은 희망이다. 지금은 돈이 없어도, 집이 없어도,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해도, 조금만 참고 견디면 지금보다 나아지리란 희망이 있을 때 사람은 초인적인 성실성과 인내심을 발휘한다.
문화적으로 앞선 나라에는 정원 문화가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나라에는 텃밭 문화 밖에 없다. 정원은 쓸모 있는 땅에 쓸모 없는 것을 심는 것이고, 텃밭은 쓸모 있는 땅에 쓸모 있는 것을 심는 거다. 그래 내 밭은 정원 같은 텃밭이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설치 미술' 장이기도 하다. 오늘 아침 시는 이 때쯤 되면, 꼭 다시 공유하고 싶은 정호승 시인의 시이다.
봄길/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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