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3월 22일)
복잡한 마음을 좀 비우기 위해 오늘 아침은 차분하게 노자 <<도덕경>>을 펼쳤다. 여러 가지 일들이 진행되는데, 세상이 어수선하다. 그래도 내 일상은 나름 잘 돌아간다. 마음을 비웠기 때문이다. 마침 오늘 읽어야 할 제11장의 주제가 "없음의 쓸모", "'허(虛)'의 쓰임"이다.
노자의 철학이 강조하는 무위(無爲)와 허(虛)를 강조하는 핵심적 이유는 '허'가 있어야만 순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창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몸도 피의 순환에 의하여 몸이 유지되는 생명의 체계이다. 냉장고의 속도 순환의 체계이다. 사실 냉장고는 비어 있을 때만이 냉장고이다. 냉장고는 비어 있을수록 좋다.
요즈음 나의 사유를 지배하는 말이 순환(循環)이다. 이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아 세상이 병들었다. 수렴과 발산의 순환, 욕망의 재배치 등이 답이 아닐까? 왜냐하면 존재는 소유하는 것으로 정체성이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방출하는 것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욕망을 가지고 욕망으로 무언가를 창조하면서 살아가는 게 우리의 삶인데, 우리는 욕망을 어떤 특수한 영역에 몰아넣고, 욕망을 우리 삶과 분리시킨다. 우리는 욕망과 삶의 이분법에 사로잡혀 있다. 장자는 자유를 위해 이분법을 초월하라고 한다. 그걸 알면서도, 일상에서는 그 이분법이 크게 작동한다. 고미숙은 말한다. 이 이분법을 타파해야, 우리가 욕망과 함께 욕망을 데리고 살면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열 수 있다고. 그러면서 고미숙은 욕망을 에로스로 표현하며, 욕망의 현장이 곧 생명과 삶의 현장, 일상의 토대라는 관점으로 문제를 풀어간다. 인간은 에로스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니까 존재 자체가 다 에로스의 총화이다. 그 에로스는 우리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힘이다.
좀 어렵지만 '비우자'는 말이다. 아무 것도 갖지 말고,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에로스의 힘으로 욕망의 재배치를 하자는 거다. 수렴과 발산의 순환을 만들어 내자는 거다. 노자의 말 중에 "반자, 도지동(反者, 道之動)"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되돌아 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라는 말이다. 반대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 그것이 도의 움직임, 즉 순환이다. 바로 그러한 순환의 장이 '허(虛)'이다. 이 빈자리, 허가 있어야 자연의 순환이 가능하고, 인간 존재의 순환이 가능하고, 문명의 순환이 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은 문명으로써 천지의 허를 죽이고, 자신의 존재를 건강치 못하게 만들며, 문명을 파탄으로 몰고간다. 도올이 노자 강의에서 하는 말이다. 예컨대 전쟁이란 모두 허의 반대인 '참(滿)'의 방향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한마디로 '허'는 창조성의 근원이다. '허'가 있어야 창조가 가능하고 새로움이 가능하고 지속이 가능하고 '상(常, 늘 그러함)의 생명력'이 유지되는 것이다.
제11장을 한 편의 시처럼 번역한 오강남 버전과 원문을 공유한다.
서른 개 바퀴살이 한 군데로 모여 바퀴통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 아무 것도 없음(무) 때문에
수레의 쓸모가 생겨납니다.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 아무 것도 없음 때문에
그릇의 쓸모가 생겨납니다.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 아무 것도 없음 때문에
방의 쓸모가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있음은 이로움을 위한 것이지만
없음은 쓸모가 생겨나게 하는 것입니다.
三十輻共一轂(삼십폭공일곡) 當其無(당기무) 有車之用(유거지용)
埏埴以爲器(연식이위기) 當其無(당기무) 有器之用(유기지용)
鑿戶牖以爲室(착호유이위실)當其無(당기무) 有室之用(유실지용)
故有之以爲利(고유지이위리) 無之以爲用(무지이위용)
비움의 미학이다. 비움이 도의 속성에서 가장 큰 것이기 때문에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나온다. 앞에서는 계곡, 자궁, 대장간의 풀무 등에 빗대서 도를 설명한 바 있는 데 11장에서는 가운데가 비어 있는 수레 바퀴통과 빈 그릇, 빈 방의 비유를 들어 도의 형상을 설명하고 있다. 바퀴통이 꽉 차 있으면 바퀴살이 한 곳으로 모일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수레를 움직일 수 없다. 수레가 굴러가는 것은 바퀴통이 무(無)의 상태로 비어 있기 때문이다. 그릇과 방도 마찬가지이다. 그릇이 차 있으면 물이나 밥을 담을 수 없고, 방이 차 있으면 사람이나 물건을 들여놓을 수 없다. 사물의 쓰임새는 무에서 출발한다. 이 장에 나오는 모든 "무"는 "허"로 이해하면 된다. '허'의 가능성을 보는 거다.
이젠 글을 두 가지 버전으로 쓰다. 길게 사유한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면 된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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