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운동가의 시대정신
3년 전 아침 글이다.
여기서 '불임의 인문학'이란 '사람 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인문학'을 말한다. 인문학은 사람을 사람 답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답지 않은 사람들이 열심히 배워야 하는 학문이다.
요즈음 보면, 인문학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 자본주의적으로 잘 훈련된 '사이비' 인문학자들이 인문학의 내용들을 파워 포인트로 재미 있게 만들어 사람들을 끌어 들인다. 강연을 들은 사람들에게 사람 답게 사는 삶의 방향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느냐고 물어 보면,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사람 답게 살기 위해서 가르치고 배웠던 인문학이 사람 답게 사는 데 공헌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글이나 말로는 '진실'에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이라는 책 안에는 '자신의 삶을 주도하라.'는 제목이 첫 번째로 걸쳐 있다. 이 내용을 읽었다고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바꿀 수 있을까? 또 그런 사람이 생겨날까?
공자는 인격을 완성하는 최고의 방법을 말해준다.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 문제는 이 말을 듣고 실생활에서 정말로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않게 되는가'의 여부인데, 대개는 시험지 답안에만 쓰고 끝난다.
그것을 구체적인 생활로 까지 끌고 나가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포용을 이야기 하면서 포용의 혜택을 입으려고만 하지, 자신을 양보하여 포용의 주도자가 되려 하지는 못한다. 포용에 대해서 아무리 토론하고 가르쳐도 포용이라는 가치 있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 막상 인문학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사람 답게 살게 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인문학은 불임(不姙)의 인문학이다.
인문학에 관한 공부가 불임이 되지 않고 사람을 변화시키게 하려면 고전과 직접 자기 몸으로 거래를 해야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눈으로 읽어야 한다. 그러면서 인문학을 통해 인문정신을 몸에 스미게 해야 한다.인문학은 아는 게 중요하지 않다. 사는 게 중요하다. 내가 어떻게 사는지를 알고 살아야 한다. 그게 인문정신이다.
인문정신은 "아직은 이름 붙지 않은 모호한 곳을 향해 부단히 나아가는"(건명원의 '우리의 정신') 것이다.난 인문운동가로, 이름이 붙은 분명한 곳은 가지 않으리라. 인문운동가는 다양한 학문의 섭렵이 아니라, '반역자' 가 되는 것이 목표이다. 내가 정한 내 직업인 인문운동가의 지향점은 반역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코 이름이 붙은 분명한 곳에는 가지 않는다. 아직 이름 붙지 않는 모호한 곳으로 부단히 나아가는 자이다. 이게 인문운동가의 인문정신이다.
인문정신은 '아파도 당당하다.' 문제가 있다면, 대충 관념적으로 장난치지 말고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그래서 인문학의 길은 아프다. 아파야 살아있는 것이다. 안 아프면 죽은 것이다. 삶은 원래 아픈 것이다. 그러니까 살아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이 다 힘든데도 버티며 사는 것이다.
삶이 그렇게 아픈 것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려고 자꾸 연어처럼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힘들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방향을 선택하면 강물에 휩쓸려 내려간다. 그것은 살아도 죽은 것이다. 왜? 죽은 물고기만 내려가니까. 우리에게는 두 가지 현실이 있다. 극복해야만 하는 현실, 순응해야만 하는 현실. 그런데 순응해야 하는 현실은 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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