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09.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2월 18일)
1.
지난 2월 3일 '입춘' 때부터, 올해는 <<제철 행복>>을 쓴 김신지 작가가 보여준 연례 행사를 따라가 볼 생각이라고 <인문 일지>에서 말했다. 그러다 보면, 내년에는 나 만의 "제철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면 나 만의 일상에 나만의 '기다려 지는 일'들이 쌓일 것이다. 작가의 아이디어처럼, 나도 '제철'의 단위를 사계절이 아닌, 24 '절기(節氣)'로 여긴다. 한 달에 두 번씩이다. '절기'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한 해를 24로 나눈, 계절의 표준이 되는 것', 더 나아가 '한 해 가운데서 어떤 일을 하기에 좋은 시기나 때' 이다. '절기'는 1년 동안 하늘을 지나가는 해의 발걸음을 24 걸음으로 나눈 섬세한 계절력 이다. 각 절기에는 우수, 경칩처럼 그 무렵의 날씨나 동식물의 변화 등을 담은 이름을 붙였다. 절기를 살피면 언제 봄이 오는지, 언제 더위가 한 풀 꺾이고 서리가 내릴 지를 가늠할 수 있었으므로 옛 사람들은 절기에 따라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수확을 했다. 제철 음식으로 건강을 챙기고 집 안팎을 돌보았다. 모든 '때'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며, 해의 걸음에 발맞춰 살아가는 자연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
2.
오늘은 '벌써' '눈이 녹아 비가 되어 내리고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된다'는 우수(雨水) 절기이다. 봄이 정말로 시작하는 때가 언제 일까? 매년 봄의 시작을 두고 내기를 하는 알래스카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유한다. 꽁꽁 얼어붙은 강 한가운데 놓인 삼각대에 로프를 묶고, 그 끝을 강가에 있는 시계에 연결한다. 봄기운이 번지면 겨우내 얼어 있던 강이 '찍'하는 소리와 함께 갈라져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데, 바로 그 해빙의 찰나에 로프가 팽팽하게 당겨지며 시계가 멈추는 것이다. 가장 근접하게 시간을 맞춘 사람이 내기에 걸린 금액을 모두 가져간다.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가 쓴 <<긴 여행자의 도중>>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우수가 오면, 우리는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말을 한다.
3.
'기다린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이 봄이다.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기다릴 수 있지만 그 마음은 어쩐지 혼자에 가깝고, 함께 기다리기에 좋은 것은 역시 봄이다. 우리 사회도 곧 봄이 오겠지. 나라가 너무 걱정이다. '경우'가 없는 사람들이 너무 날뛴다. 나는 어린 시절에 동네에서 “사람이 경우가 밝아”, 또는 "경우가 없어" 하는 말들을 자주 들었다. "사람이 경우가 밝아"는 최고의 칭찬이지만 “경우가 없다”라고 평가되면 지내기 힘들어진다. 사전적 의미인 ‘사리나 도리' 와는 어감이 다르다. 법령 체계상 헌법-법률-명령-조례-규칙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더 강력한 힘이 있다. 빨리 "경우"가 회복되는 봄이 왔으면 하고 기다린다. 아침에 어느 시골 이장의 글에서 위로를 받았다. 공유한다. "법에는 감정이 없다. 승패를 가려야 하기에 절차가 중요하고, 법적 잣대에 동정과 연민을 적실 수는 없다. 법은 선과 악을 구분하기 위한 시스템이 아니다. 피도 눈물도 없다." 그래 최근의 정치권 사정은 기다려야 한다. 법과 '경우'는 다르다. '경우'는 상식이고, 우리들 사이의 '공감'이다. "어디에도 정리된 문헌이 없는 ‘경우’는 처벌 대상이 아닌 의도와 감정까지 염두에 두고 판단한다. 도덕적인 옳고 그름을 따지고 관습과 선례를 기본으로 한다. 사람의 됨됨이와 집안의 내력을 참고하기도 한다. ‘경우가 아니다’라는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처벌과 응징이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관계가 깨지고 감정적인 화를 입는다. 결국엔 ‘몹쓸 놈’으로 찍혀 소시오패스가 아니고는 버티기 힘들다." 곧 그런 자들은 사라질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시오패스"에 대한 정의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인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에 이렇게 정리한 의학자료가 올라와 있다 한다. “소시오패스는 스스로의 이익만이 중요하기 때문에 양심과 동정심, 죄책감이 없고 자신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지속적으로 타인을 속이고 험담하며 자신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몹시 기만하고 무책임하게 잘못을 떠넘기기도 한다. 또한 타인의 안전과 건강에 대해 몹시 가볍게 여기지만 타인을 해친 후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행동의 원인을 사회나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등 사건을 포장하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4.
세상이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아 속상하지만, "도"의 움직임이라고 여긴다. "오이관복(吾以觀復)"할 뿐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내가 좋아하는 말이 <<도덕경>>의 제16장에 나오는 다음 말이다. "완전한 비움에 이르십시오. 참된 고요를 지키십시오, 온갖 것 어울려 생겨날 때 나는 그들의 되돌아감을 눈여겨봅니다.”라고 한다. 원문은 이렇다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치허극 수정독 만물병작, 오이관복)”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비움을 끝까지 하고, 고요한 상태를 돈독하게 하여 지키는 일상을 꾸리라'는 말로 읽는다. 다시 마음을 비우고, "오이관복(吾以觀復, 나는 돌아 감을 볼 뿐이다)"한다. 나는, 최근 세상 돌아가는 것이 이해가 안 되면, 이 문장을 소환하고, 비우고 고요 해지려고 한다. 특히 "오이관복(나는 돌아 감을 볼 뿐이다)"을 소환하며 나를 위로 한다. 세상 모든 이치이다. <<주역>>에 나오는 말이 있다. "무왕불복 (無往不復)", 즉 자연의 순환 원리를 주역에서는 "무왕불복"의 원리라고 한다. 세상의 이치는 결국 가면 반드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순환 철학은 <<주역>> 11번째 괘인 <지천태괘>에 나온다. 이 괘에 "무평불피(無平不陂)"라는 말도 나온다. 세상에 영원히 평평한 땅은 없다는 말이다. 난세를 이겨내는 중요한 인생철학이다.
5.
빨리 봄이 오고, 나라도 어서 언정을 되찾으면 한다. 봄아 돌지 말고 바로 와라. 그런 생각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이성부 시인 <봄>을 공유한다.
봄/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미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누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6.
오늘의 절기인 '우수' 이야기로 다시 돌아온다. 입춘 다음에 오는 우수(雨水)는 이름 그대로 눈이 녹아 비가 되어 내린다는 절기이다. 봄을 부르는 비가 내리면 농부들은 본격적인 한 해 농사 준비에 들어간다. '봄비는 일비, 여름비 잠비, 가을비는 떡비, 겨울비는 술비'라는 말이 있다. 봄비는 벼농사의 밑천이라 한다. '봄비가 잦으면 마을 집 지어미 손이 크다'라는 말이 있다. 부녀자 손이 크면 지난 봄비가 잦았던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 비처럼'이란 노랫말에서 보듯 봄비는 더할 나위 없는 서정적 소재이다. 구질구질하다는 이유로 더이상 봄비를 탓할 일이 아니다. “그 놈의 봄비는 왜 이리 시도 때도 없이 오나”라고 버릇처럼 되뇔 일도 못 된다. 우리 모두에게 생명수인 까닭이다. 비는 그 철을 돕거나 재촉하는 촉매제와 같은 것이다. 봄은 '보기' 때문에 봄이라는 이가 있다. 그러니까 이 봄비가 그치면, 세상 만물이 더 잘 보일 것이다. 새싹을 기르는 봄비는 꽃의 부모라고 한다. 봄비를 꽃을 재촉하는 비란 뜻의 '최화우(催花雨, 꽃을 재촉하는 비)'라고도 한다. 봄비에는 부지런히 농사일을 해야 하지만, 여름에는 비가 오면 일을 쉬면서 낮잠을 자고, 가을에는 비가 내리면 햅쌀로 떡을 해먹고, 겨울에 찬비 내리면 아랫목에 앉아 술 마시며 논다는 의미이다. 계절 따라 비에 따른 제철 숙제가 있었다.
7.
우리는 하나의 절기를 다시 세 마디, '초후', '중후', '말후'로 나누어 섬세하게 계절 변화를 살폈는데 우수의 '삼후'는 다음과 같다.
- 초후에는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 늘어놓고 제사를 지낸다. 수달은 물고기를 잡은 후 물가나 바위에 가지런히 올려놓는 습성이 있는데, 이 모습을 본 옛 사람들이 물의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믿었다. 하필 왜 수달인가? 수달은 평소에도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 탓에 생긴 것 같다.
- 중후에는 기러기가 북쪽으로 날아간다.
- 말후에는 초록이 싹튼다.
'삼후' 내용은 계절에 따른 이 무렵의 자연 변화를 담은 한 편의 시와 같다. 우수는 얼음이 녹으니 수달이 물고기 사냥을 시작한 것이고, 봄기운이 번지니 겨울 철새인 기러기가 북쪽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또 흥미로운 것은 제사라는 표현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투영한 것이라 본다. 혹독한 겨울이 지나가고 얼음이 녹는 것을 보며 무사히 봄으로 건너온 것을 하늘에 감사하고 깊었을 것이 아닐까?
8.
우수에 가장 반가운 것은 땅이다. 기온이 오르면 겨우내 쌓여 있던 눈과 얼음이 녹고, 하늘에서 내리던 눈도 비로 변해 스며든다. 이렇게 스며든 물은 흙 속에 남아 있던 한기를 몰아내며 땅에 온기가 들도록 한다. 이제부터는 새싹의 차례이다. 아래로는 뿌리를 뻗고 위로는 포슬포슬 부드러워진 흙을 밀어내며 기지개 켤 힘을 낸다. 우리가 마침내 흙을 뚫고 올라온 새싹의 정수리를 보게 되기까지, 땅속에선 봄의 일들이 부지런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해가 뜨기 전, 봄날의 새벽에 밭에 나가면, 땅 속에서 얼었던 물기가 반짝이는 서리가 되어 새싹처럼 땅 위로 피어난다. 이게 봄 서리다. 흙은 늦가을 서리에 굳어지고, 봄 서리에 풀린다. 김훈은 "봄 서리는 초봄의 땅 위로 돋아나는 물의 싹"이라고 말한다. (김훈, <<자전거 여행 1>>) 풀 싹들은 헐거워진 봄 흙 속의 미로를 따라서 땅 위로 올라온다. 흙이 비켜준 자리를 따라서 풀이 올라온다. 이건 놀라운 생명의 힘이다. 생명은 시간의 리듬에 실려서 흔들리면서 솟아오르는 것이어서, 봄에 땅이 부푸는 사태는 음악에 가깝다. 경이(驚異)이다. 봄의 흙은 헐겁다. 봄이 오면, 언 땅이 녹고, 햇볕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흙의 관능은 노곤하게 풀리면서 열린다. 봄의 흙이 헐렁해 지는 과정은 아름답다. 초봄의 햇살은 흙 표면의 얼음을 겨우 녹이고 흙 속으로 스민다. 흙 속에서는, 얼음이 녹은 자리마다 개미집 같은 작은 구멍들이 열리고, 이 구멍마다 물기가 흐른다. 밤이 되면 다시 기온이 떨어져, 이 물기는 다시 언다. 그러나 겨울처럼 꽝꽝 얼어 붙지는 않는다. 다음날 아침에 햇살이 다시 내리쬐면, 구멍 속의 얼음이 다시 녹는다. 얼고, 녹기를 거듭하면서, 흙 속의 작은 구멍들이 조금씩 넓혀진다. 그 넓혀진 구멍들로 햇볕이 조금 더 깊게 스민다. 이런 식으로, 봄의 흙은 헐거워지고, 헐거워진 흙은 부풀어 오른다.
9.
문제는 도시에 살면서, 우리는 봄의 흙을 만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걷는 길은 죄다 보도 블록이고, 산책로 역시 포장되어 있다. 따라서 도시인들에게는 봄이 더디 온다. 이럴 때 땅의 봄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이른 봄나물을 찾아 먹는 것이다. 입춘 지나 우수 무렵이면, 우리들의 몸에서 냉이와 쑥의 기억이 소환된다. 냉이는 냉이무침이나 된장국이 되고, 여린 쑥은 쑥 버무리나 쑥 국이 된다. 이맘때 마트나 시장에 가면 남쪽의 지명을 이름표처럼 달고 있는 봄나물들을 만날 수 있다. 포항초, 남해초, 섬초 등. 드 중 나는 멀리 신안 비금도에서 겨울 한철 한뎃바람에 자란 섬초를 좋아한다. 발그레하게 굵은 뿌리를 보면 입맛보다 먼저 마음이 동한다. 눈서리 맞고도 그만큼 야무지게 광합성을 잘한 푸성귀가 또 없다. 살아 낸 관성대로 푼푼한 생김새. 씨 뿌려진 날부터 해풍에 엎드렸으니 팡파짐한 앉은뱅이다. 귓불처럼 도톰한 잎, 바닷가 성긴 햇볕을 어떻게 움켜 삼켰으면 속속들이 단물인가 싶은 뿌리. 키만 커서 싱거운 비닐하우스 시금치 따위는 댈 게 못 된다. 지붕 없고 집 없는 것이 가장 달게 겨울을 이겼다. 매운 날에는 부서지게 얼었다가, 푹한 날에는 쓰러지게 녹아도 내렸다가. 섬초를 만나면, 한 번 가본 적 없는 비금도가 궁금해서 안달이 난다. 비금도는 햇볕도 달겠지? 삶은 섬초처럼 사는 거다. 덤비지 않고 버티는 삶은 섬초 뿌리 같아질까. 그렇게 달해 질 수 있다면, 어디 한번 섬초처럼 사는 거다. 그 길은 스스로 살아가는 생존의 힘을 키우고, 남에게 무언 가를 시키지 않고 스스로 하는 거다. 그리고 청산도 봄동이 맛이 좋기로 소문이 나 있다. 바닷바람을 견뎌낸 단맛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 궁했던 시절 봄나물을 먹는 것은 겨우내 부족하기 쉬운 영양분을 보충하고 겨울내내 찌뿌듯했던 몸을 깨우려 했던 조상들의 지혜이기도 했다. 이번 우수에는 통영으로 도다리 쑥국을 먹으러 갈 생각이다. 섬에서 난 해 쑥을 뜯어 만든다고 한다 . 봄이 왔음을 기념하는 나만의 음식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 같다. 김신지 작가에게서 배운 거다. 그에게 봄은 다음과 같이 온다고 했다. 커다란 꽃처럼 잎을 활짝 펼친 봄동을 사다가 겉절이를 하거나 쌉사래한 달래장을 만들어 밥을 비벼 먹고, 이맘때 냉이 된장국을 내어놓는 백반집을 알아두고 찾아가는 거다. 새봄을 맞이하는 자신만의 몸나물을 하나쯤 품고 사는 것은 자신만의 작은 의식이 있다는 것은 누가 뭐 래도 봄은 그날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봄나물을 먹는다는 것은 게절의 흐름을 느끼며 2월의 봄비와 햇볕을 몸에 들이는 일이다.
10.
옛사람들은 봄의 첫 달을 맹춘(孟春), 둘째 달은 중춘(仲春), 마지막 달을 계춘(季春)이라 불렀다. 맏이 '맹(孟)'은 첫째, 버금 '중(仲)'은 둘째, 끝 '계(季)'는 막내이니 봄의 세 형제라 볼 수 있다. 절기로 보면 입춘과 우수는 '맹춘' , 경칩과 춘분은 '중준', 청명과 곡우는 늦봄 '계춘'에 해당한다. 봄이 짧다고 말할 때 우리가 생각하는 봄은 산과 들에 꽃이 만발한 정명 무렵의 모습이다. 봄을 그렇게만 알고 그것 만을 봄이라 부르니, 이미 봄이 곁에 와 있는데도 봄을 기다린다. 입춘부터 곡우까지, 모든 모습이 다 봄이다. 그걸 알게 되면 봄이 짧다는 말 대신 눈 앞의 봄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
다른 글들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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