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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신언불미, 미언불신(信言不美 美言不信)": '미더운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스럽지 않다.'

3108.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2월 17일)

1. 
일주일 한 번씩은 <<도덕경>>에 나오는 한 단어를 갖고 사유를 해볼 생각이다. 오늘 선택한 단어는 "신언불미(信言不美)"이다. 제81장에 나온다. "신언불미, 미언불신(信言不美 美言不信)" 에 나오는 말이다. '미더운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미더운 말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꾸밈이 없는 까닭이다. 꾸밈이 없는 말은 소박하다. 말이든 인격이든 통나무(樸)같이 소박한 게 진짜이다. 아름답지도 않을 뿐더러 그릇으로도 쓰지 못하는 통나무는 그저 원 재료일 뿐이다. 그걸 쓰려면 다듬고 꾸밈이 있어야 한다. 통나무는  '꾸밈이 없음'으로 무위 그 자체이다. 노자는 통나무에서 '도'를 보았다.  노자가 우리들에게 권하는 삶의 태도는 '소박함', '유약함', 겸손 등이다. 이런 것들이 '도'에 가깝다는 거다. "신언불미"라는 말에는 말이 아무리 매끄러워도 마음의 지극함이 없다면 그것은 가짜라는 거다. 참다운 말에는 꾸밈도 변명도 없다. 꾸밈과 변명은 본질에서 거짓이다. 하늘의 도에는 거짓이나 교언영색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참다운 말은 아름답지 않고 통나무같이 투박하고 소박한 말이다.

2. 
통나무는 거친 탓에 그 자체로는 별 쓰임이 없다. 노자는 거칠고 쓰임이 없는 통나무를 <<도덕경>>에서 자주 말한다.
• 제19장에 나오는 "견소포박, 소사과욕(見素包樸, 少私寡慾)" 이다. 이 말은 '순결한 흰 바탕을 드러내고, 통나무를 껴안아라! 사사로움을 적게 하고, 욕심을 적게 하라! '란 뜻이다. 좀 더 자세하게 풀면, 물들이지 않은 무명천의 순박함을 드러내고, 다듬지 않은 통나무의 질박함을 품는 것, '나' 중심의 생각을 적게 하고, 욕심을 줄이라는 것이다. '질박함'이란 먹는 것은 기름지고 걸쭉하고 느끼한 것이 아니라, 덜 가공한 담백하고 소박한 음식이고, 옷은 요란한 색상이나 과장된 디자인은 피하고, 질박하고 수수한 디자인을 찾는다. 몸에 편하게 입는다. 미끈하고 반짝거리고 화려하고 화끈함은 물건이건 인간 관계이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 제28장에 나오는 "爲天下谷(위천하곡) 常德乃足(상덕내족) 復歸於樸(복귀어박)" 이다. 이 말은 '천하의 골짜기가 되면 영원한 덕이 풍족하게 되고 순박한 통나무로 돌아가게 된다"는 뜻이다. 요지는 "덕이 풍족하면 통나무로 돌아 간다" 이다.  '골짜기에 부귀영화나 욕됨을 다 담아내어 이를 표준으로 삼아 따르니 덕이 항상 족하다. 그래서 통나무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여기서 통나무, 박(樸)은 순수한 상태이다. 아직 가공하지 않은 나무 토막, 어떤 형태로 결정되지 않은 가능성이 무한한 어떤 것이든 만들어 질 수 있는, 아직 나무 토막 자체인 것을 말한다. 그리고 부귀함을 누리나 욕됨을 알면 부귀를 가치 있게 쓸 것이다. 또한 욕됨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여 감수하면 또한 부귀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부귀영화와 욕됨이 서로 넘치면 서로 뒤바뀌게 되는 이치를 알아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덕이 항상 부족함이 없이 풍족하다고 한다. 그러면 '손대지 않은 통나무의 소박함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다시 질박함과 순수한 상태로 되돌아가 회복된다'는 말이다. 
▪ 이어지는 문장은 "樸散則爲器(박산즉위기) 聖人用之(성인용지) 則爲官長(즉위관장) 故大制不割(고대제불할)" 이다. 이 말은 '통나무를 쪼개면 온갖 그릇이 생겨난다.  성인은 통나무의 질박한 가능성을 잘 활용하여 세상의 진정한 리더가 된다. 그러므로 훌륭한 리더의 다스림은 자질구레하게 자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웅(雌雄), 백흑(白黑), 영욕(榮辱)"으로 "영아(嬰兒), 무극(無極), 박(樸)"으로 돌아간다. 이는 '전혀 상반된 것을 크고 순수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로 돌아간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제도를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대제불할(大制不割)"이라 한 것 같다. 큰 '도'일수록 세밀한 것을 논하지 않는다는 거다. '어느 한 곳에 치우침이 없다'는 말이다. "대제"를 말하지 구체적이 않다는 거다. '세밀함이 없다'는 말이다. 아우트라인(outline)만 있다. 통나무는 다듬으면 그릇이 된다. 그런데 성인은 관장, 즉 관의 장으로 삼아 사용한다. 이 말은 '통나무를 다듬는 것은 세밀함이고, 관장을 임명하는 것은 넓은 의미라 그릇은 그릇으로만 사용되고 관장은 아직 관장 아래 많은 이가 있어야 관이 돌아가게 된다'는 거다. 성인은 관장만 임명하고 나머지는 관장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래서 '큰 제도는 세밀한 부분은 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통나무를 쪼개어 그릇을 만들 수 있듯이 소박함을 끊어 인재를 만들 수 있지만 성인이 그들을 쓸 때는 고작 한 분야의 우두머리로 쓸 뿐이다. 그러므로 크게 쓸 때에는 인위적으로 손대지 않고 통나무의 소박함을 그대로 두는 것이라는 말이다. "대제불할"은 넓게 다스리는 제도에서는 세세하게 개별화로 나눠서 규제하지 않는다는 말로 이해하면 더 쉽게 와 닿는다. 도올 김용옥은 다르게 풀이한다. '관장'을 성인 본인의 덕성, 위상으로 보았고, "대제불할"을 통나무, 박(樸)의 무위정치(無爲政治)로 보았다. 그래 그는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성인은 통나무의 질박한 가능성을 잘 활용하여 세상의 진정한 리더가 된다. 그러므로 훌륭한 리더의 다스림은 자질구레하게 자르지 않는다."
▪ 제 32장에 나오는 "道常無名(도상무명) 樸雖小(박수소) 天下莫能臣也(천하막능신야) 侯王若能守之(후왕약능수지) 萬物將自賓(만물장자빈)" 이다. 이 말은 '도는 늘 이름이 없다. 질박한 통나무는 비록 작지만, 하늘 아래 아무도 그를 신하로 삼을 수는 없다(어찌 할 수 없다. 또는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제후나 왕이 능히 그 통나무를 지킨다면, 만물이 스스로 질서 지워질 것이다. 또는 세상 만물들은 그를 따를 것이다(스스로 손님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저절로 찾아와 따르게 될 것이다)"라는 뜻이다. '도'는 이름 지어 지기 이전의 것, 분별하기 이전의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무명(無名)"이라 한다. 그래서 아직 다듬어 지기 이전의 통나무라 한다. 통나무가 다듬어져(制,제) 어떤 물건으로 만들어 진다면 이는 어떤 것이 이름 지어진다. 그러므로 "박(樸)"이라 한 것이다. 아직 분별 이전이 상태이기에 천하라 할지라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신(臣)"은 속박의 의미로 본다. 만일 나라를 다스리는 제후나 왕이 이 '도'에 따라 나라를 다스린다면 만물이 저절로 따르게 된다. 다시 말하면 '도'로써 나라를 다스리면 저절로 되는 것이지 어찌 보면 다스리는 것이 아니다. 인위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닌 모두가 스스로 알아서 한다는 것이다.
▪ 도올 김용옥에 의하면, 우리는 이 '박(樸)'을  '박(朴)'으로 잘 쓰는데, '박(朴)'은 '박(樸)'의 약자라는 거다. '통나무 박'자이다. 목수의 손을 거친 다듬어진 나무들에 비해 통나무는 껍데기도 있고 흙도 묻은 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맥락에서 '질박, 투박, 소박'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동시에 통나무는 가공되지 않은 원목으로 가공하면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가능성, 즉 잠재력, 다시 말해서 허(虛, 빔)의 극대치를 상징한다.

3.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높은 자리에 있거나 재산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삶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많은 사람, 쓰러지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많은 사람,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이 맹자이다.  그는 이를 "득도다조(得道多助)"라고 표현했다. '득도다조(得道多助)'를 소환한다. 강한 사람은 힘이 센 사람도 아니고, 지위가 높은 사람도 아니고, 또한 엄청난 부를 소유하거나 학력이 높은 사람도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도와주는(助) 사람이 많은(多) 사람이다. 아무리 힘이 센 사람이라도 도와주는 사람이 많은 사람을 이기지는 못한다. 그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고, 그 사람이 쓰러지지 않기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많으면 그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주위에 도와주는 사람이 많은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 

맹자는 이렇게 도와주는 사람이 많게 되기 위해서는 인심(人心)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평소에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만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진다. 이것을 ‘득도다조’라 했다.  즉, ‘도를 얻은 사람은 도와주는 사람이 많다’라는 뜻이다. '평소에 남에게 베풀고 인간 답게 살았기에 그가 잘되기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그만큼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도(道)’란 '사람의 마음'이다. "득도(得道)"란 '산에 가서 도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얻었다'는 뜻이다. 지도자가 ‘도’를 얻었다는 것은 민심을 얻었다는 뜻이 된다. 기업가가 '도'를 얻었다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평소에 주위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고 배려해 주었기에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평소에 사람의 마음을 얻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 되어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그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4. 
대화 속에 나는 이제 거대 담론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작고 사소한 것들의 합이 우리의 인생임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좋음’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지 말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더 힘들다. 누가 좋은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거창한 말보다 그 사람의 작은 행동을 보면 안다. 소설가 백영옥은 이런 사람들이라고 열거를 했다.
▪ 운전할 때 양보해 주는 사람,
▪ 문을 열 때 뒷사람이 오는지 확인하는 사람,
▪ 식당에서 일어설 때 의자를 밀어 넣는 사람,
▪ 비 오는 날 상대에게 우산을 더 기울여 주는 사람,
▪ 약속 시간에 5분 먼저 오는 사람,
▪ 헤어질 때 한 번쯤 뒤돌아봐 주는 사람,
그리고 나에게 잘하는 사람. 그러나 나에게만 잘해주는 사람이라면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세상에 나에게만 잘하는 사람은 없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감’을 잡을 수 없을 때는 ‘음소거’ 버튼을 누르고 오직 그 사람의 ‘행동'만 보라고 충고한다. 나쁜 행동에 대한 기준이 명확해질 때 라야 좋은 사람에 대한 안목이 생긴다.

5. 
그렇지만,  피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다. 관계는 말로 이루어진다. 또한 말이 곧 그 사람이다. 그러므로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과는 멀리하고 피는 것이 좋다.
▪ 힘센 사람에게는 머리를 조아리고, 약자 앞에서는 거들먹거리는 사람 : 강한 것은 누르고 약한 건 키워주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사람이다. 
▪ 늘 남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사람 : 마치 자신이 무슨 심판 관이라도 된 양 만나면 노상 남을 평가한다. 그것도 추켜세우는 말이 아니라 깎아내리는 말을 한다. 이런 단점이 있고 저런 허물이 있다고 폭로하고 다닌다. 시기와 질투가 말에 배어 있다. 그런 사람에게 한 말은 비밀도 지켜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유명한 누구를 알고 있다.’, ‘내가 누구와 친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자기 말은 하지 않고 ‘누구’ 말만 하는 사람을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누가 이렇게 말하더라.’, ‘누가 어떻게 됐다.’, ‘누구는 어떤 사람이다.’ 등. 남 얘기를 안 할 순 없지만, 남 얘기만 하는 건 문제다. 그리고 그런 말만 하는 사람을 만나지 않을 순 없지만,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경우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 갈라 치기에 능한 사람: 이런 사람도 피해야 할 대상이다. 늘 내 편 네 편 편을 가르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언제나 피아를 구분한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동지이고, 눈앞에 없는 사람은 적이 된다. 또한 이 사람에게 가서는 저 사람 욕을 하고, 저 사람에게는 이 사람 욕을 해서 두 사람 사이를 갈라 놓는다. “내가 너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알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누가 너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다닌다 던대?”, “네가 속상할까 봐 말 안 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고민 고민하다 얘기하는 거야.” 이렇게 이간질하는 사람은 절대 가까이해선 안 된다. 부처님도 입으로 짓는 업(業)에는 망어(妄語), 기어(綺語), 악구(惡口), 양설(兩舌)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 가운데 양설이 바로 이간질하는 말이다. 양쪽에 다니면서 상대방에게 서로 다른 두 가지 말로 싸움을 붙이는 양설을 조심하라고 했다.
▪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말만 입에 달고 사는 사람: 이런 사람도 멀리하는 게 좋다. 만나면 늘 징징대고 투덜대는 사람, 자기는 운이 없고, 되는 일도 없고, 나만 힘들다고 아우성 치는 사람, 모든 게 못마땅하고 일이 끝나면 꼭 뒷말하는 사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그게 안 될 줄 알았다.’, ‘이건 누구 탓이다.’ 말이 온통 후회와 남 탓뿐이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기가 빨리고 급격히 우울 해진다.
▪ 말을 수시로 바꾸는 사람: 이런 사람도 조심해야 한다. 어제 한 말 다르고 오늘 한 말 다르고, 이 사람에게 한 말 다르고 저 사람에게 한 말 다르다. 생각과 말과 행동도 다르다. 물론 생각과 말은 바뀔 수 있다. 어떤 이유에서 바뀌었다고 말하면 된다. 그렇지 않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말을 바꾸고, 자신에게 불리하면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언제 그랬느냐고 따지고 달려든다. 그런 사람은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종잡을 수가 없고 예측이 안 된다. 한마디로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이렇게 진정성이 없는 사람도 피해야 할 대상이다.
▪ 염치없는 사람: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지만, 사람이기에 자신의 이기적 속성을 감추려고 한다. 그래서 있는 것이 체면(體面)이다. 사람은 체면을 차리려고 한다. 그런데 체면이 깎이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제멋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 그야말로 뻔뻔한 사람이 있다. 항상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이런 사람 입에서는 사과나 양보라는 게 나오지 않는다. 반성도 없다. 잘못하고도 잘했다고 우긴다. 아니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 자체를 모른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어르신이 서 계시면 아예 모른 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리를 양보하진 않더라도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도 있고, 양보하지 않는 걸 나무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미안해 하고, 부끄러워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양심이고 도덕성을 지닌 사람이다.
▪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사람: 이런 사람도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아무에게나 반말하는, 오만하고 불손한 사람이 있다. 자신에 대한 대접이 소홀하면 불같이 화를 낸다. 늘 남을 가르치려 들고, 자기 말만 옳다고 주장한다. 상대를 존중하거나 배려하는 건 언감생심(焉敢生心, 어찌 그런 마을을 품을 수 있거나)이고, 자신의 감정조차 절제하지 못한다. 자주 부아가 치밀고 폭언과 욕설을 남발한다. 감정의 기복이 변화무쌍하다. 그래서 주위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굳이 이런 사람과 가깝게 지낼 이유가 없다.
▪ 남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 이런 사람도 멀리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공평하게 나눠 가져야 한다. 그런데 그 기회를 독점하려고 하거나, 자기 말의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다. “알아, 알아!” 하면서 남의 말을 끊거나, “너는 왜 그런 말을 해!” 하면서 입을 막는다. “아, 그 말 하니까 생각나는데” 하며 수시로 끼어든다. 모임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놓으려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말을 시키지 않으면 토라진다. 정작 자기가 말은 가장 많이 하면서 남에게 ‘말이 많다'고 타박 한다. 가급적 이런 사람도 안 만나는 게 좋다. 남의 말을 잘 듣고, 남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하고, 이도 저도 아니라면 침묵하는 것이다. 곳곳에 ‘침묵’, ‘경청'이란 문구를 붙여 놓고 수시로 보며 마음을 다 잡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정직하지 않은 사람: 이런 사람의 특징은 말을 자기 마음대로 편집한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실을 과장, 축소 그리고 왜곡하는 건 다반사이고,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사실과 자기 의견을 섞기도 한다. 이런 사람은 귓속말을 자주 하고 밀실에서 끼리끼리 모여 말하는 걸 즐긴다. 말이 공개적이고 투명하지 않다.

지금까지 말한 사람을 대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그 자의 문제를 지적하고 맞서 싸우기, 만나긴 하지만 무시하기,  아니면 만나지 않기. 나는 만나지 않기를 택한다 피할 것인가, 타도할 것인가, 함께할 것인가? 우리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6.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밝은 사람과 있으면 더 자주 웃게 되고, 꿈이 있는 사람을 보면 덩달아 뜨거워지고, 잘 들어주는 사람과 있으면 남에게는 털어 놓지도 못할 말을 짜내게 된다. 다정한 사람과 있으면 나 또한 그래진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닮게 된다.


내게 좋은 사람/전선경

똑똑한 사람보다
마음 따뜻한 사람이 더 좋다

조각같이 잘생긴 사람보다
볼수록 매력 있는 사람이 더 좋다

처음에만 잘 대해 주면서 
자신에게 이익이 없으면 
금방 무관심해지는 사람보다
꾸준한 맘으로 상대방을 
대해주는 사람이 더 좋다

가르치려고만 하는 사람보다
아이에게서도 배우려는 사람이 더 좋다

가끔씩 하늘을 보며
웃음 지을 수 있는 사람이 좋다

아이의 미소를 보고 
길 가던 걸음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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