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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그 사람 신발을 신고 걸어보라."

3104.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2월 13일)

1
울음의 근본, 눈물의 원천은 무엇인가? 내 마음속에 있는 우물이다. 그 깊은 내면의 우물을 울리는 공명음이 곧 울음이다. 우리 마음속에는 증오와 사랑의 우물이 공존한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전설의 ‘두 마리 늑대’와 같다. 원주민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말한다. “내 안에는 서로 이기려고 싸우는 두 마리 늑대가 있지. 하나는 악이란다. 악한 늑대는 분노와 증오, 시기, 탐욕, 오만, 원한, 죄책감, 열등감, 거짓말, 이기심이지. 두 번 째는 선이란다. 이 늑대는 기쁨과 사랑, 공감, 평화, 희망, 조화, 겸손, 친절, 관대함, 진실, 연민, 신뢰지. 이 둘은 죽을 때까지 싸우는데 그런 싸움이 네 안에서도 벌어지고 있단다.” 아이가 “그래서 누가 이겨요?”라고 묻자 노인은 답한다. “그건 내가 누구에게 먹이를 주느냐에 달려 있지.” 

2. 
"그 사람 신발을 신고 걸어보라." 이 얘기는 우리가 어떤 생각과 감정을 키우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을 일깨운다. 나는 어느 늑대에게 먹이를 주며 사는가. 악한 늑대는 증오의 눈물을 먹고 산다. 그 맛은 쓰고 짜다. 선한 늑대는 사랑의 눈물을 먹고 산다. 그 맛은 달다. 그러니 선한 늑대에게만 먹이를 주자. 아니다.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악한 늑대에게도 기회를 주자. 악한 늑대를 선한 늑대로, 증오의 눈물을 사랑의 눈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내 안의 우물에서 울리는 공명의 근본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 소리의 높낮이와 진폭에 따라 생각의 각도를 조절하고 행동의 방향을 바꿔보자. 그러다 보면 남의 우물에서 울리는 소리도 들릴 것이다. 두 우물과 두 눈물이 만나 ‘공감의 강물’을 이루는 소리까지 들릴 것이다. 그 물결에 몸을 맡긴 채 서로를 껴안고 흘러가는 것에서 시작해 보자. 공감은 상대가 증오의 눈물로 고통스러워 할 때 그 깊은 우물 바닥으로 내려가 함께 울어주는 일이다.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쓰라린지 헤아려 주는 일이다. 상대의 속사정이 어떤지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것이다. 이런 배려가 곧 선한 마음이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선한 행동이다. 동사로 치면 ‘어루만지다’와 ‘보듬다’ ‘품다’와 같이 둥글고 품이 넓은 것이다. ‘어루만지다’는 부드럽게 쓰다듬어 만지는 것, ‘보듬다’와 ‘품다’는 가슴으로 품어 안는 것이다. 어머니가 아기를 보듬고 어루만지며 젖을 먹이는 장면을 그려보자. 세상이 어둡고 세태가 엄혹할수록 공감과 사랑, 선한 마음, 넓은 품, 어둠을 밝히는 빛의 소중함이 커진다. 대립과 분열, 분노와 저주로 얼룩진 시대에는 서로를 어루만지는 선한 행동이 더 절실하다. 장발장이 주교 덕분에 ‘선에 속한 사람’으로 거듭나듯이 선함과 사랑은 암흑을 가르는 빛이요, 인생을 밝히는 등불이다. 그 빛으로 나와 타인의 발 밑을 함께 비출 줄 알아야 한다. 북아메리카 원주민들도 “누군가를 알려면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먼 길을 걸어보라”고 했다

3. 
그런 차원에서, 몇 일전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들으며, 이재명이라는 인간에 대해 인문 운동가의 시선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 제일 먼저, 김주대 시인의 표현에 동의한다. "이재명은 상처가 언어가 된 사람이다. 바람이 제 살을 찢어 소리를 만들 듯 그리운 건 다 상처에서 왔다." 인간의 그릇이 커지려면 상처가 있어야 한다. 그 상처가 힘이 되려면, 세상으로부터 받는 모욕과  굴욕을 참아내야 한다. 그건 소명 의식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다. 여기서 소명 의식이란 자신이 하는 일이 직업이 아니라, 천직이어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는 내적 진실성과 겸손이 배어 있다. 

4. 
빅터 프랭클의 말을 소환한다. "중요한 것은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 이다. 삼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기를 멈추고, 대신 우리 스스로를 날마다, 시시각각 삶이 던지는 질문을 받는 존재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삶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운명이 자신 앞에 도덕적, 지적 임무를 제시한다. 그것은 운명으로부터 수행해야 할 임무를 받은 것이다. 이 임무를 자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임무는 앞으로 받게 될 고통을 잘 감당하고, 그걸 겪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수모를 참아내는 능력이 나오고, 자신의 내적 장악력, 주도권이 생긴다. 운명이 부여할 열 가지 외부의 어려움을 제어할 수는 없지만, 그 수모와 굴욕, 더 나아가 고통에 대한 내적 반응은 제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세상이 던지는 모욕들에 맞서 자신의 내적 진설성과 도덕성은 오히려 더 강화된다.

5. 
내적 진실성이란 다른 말로 하면,  자기 자신에 대한 강철 같은 제어 능력이고, 내적 장악 능력이다. 이를 '주도권'이라고 한다. 이런 능력을 갖춘 사람이 상황 판단이 빠르고, 일 머리를 안다. 임제 선사가 말한 "수처작주"를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수처작주(隨處作主)"입니다. 이 말은 "어디서나 어떠한 경우에도 얽매이지 않아 주체적이고 자유자재 함'이 사전적 정의이다. 무슨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하기 싫다고 괴로워하지 말고 스스로 그 상황의 주인이 되어 보는 것이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는 것이 자유와 행복의 길이다. 능동적이고 긍정적으로 일을 대하고 처리해 나가면서 즐거워하는 것이 행복이다. 자유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라기 보다 해야 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수처작주"의 마음을 가지려면, 비교 분별의 마음을 비워야 한다.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비우고, 그래도 이런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면 된다.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이니, 집착을 버리고 유연해지는 것이 "수처작주"의 시작이다. 한 발 더 나아가 미음을 비우고(분별심과 집착), 삶을 놀이로 만들면, 자유롭고, 즐겁고 행복해진다. 그때부터 "수처작주"의 삶이 시작된다.

6. 
이런 사람은 자기 존재와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내적 장악력,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분투한다. 니체는 정육점 앞에 있는 다음과 같은 두 마리 개를 보면서 인간이 가진 욕망의 이중성을 통찰 했다. 첫 번째 개는 당장 들어가 고기를 뜯어 먹고 싶지만, 주인의 손에 들린 칼에 다칠까 봐 그저 주변을 서성대며 짖기만 한다. 그런 모습은 하고는 싶지만, 두려운 마음, 원하기는 하지만 주저하는 마음, 많은 사람들이 빠져 있는 안타까운 마음일 수 있다.  두 번째 개는 짖기만 하는 개와는 달리, 과감하게 정육점 안으로 돌진해서 물어 뜯는다. 이 두 번째 개는 상처를 입을 수는 있어도 고기를 먹었다는 만족감과 자신도 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더 나아가 이 개는 앞으로도 원하는 것이 있다면 상처 입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돌진할 수 있다. 이 두 마리 개의 차이는 크다. 주도권을 쥐고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일도 이것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주저하게 되고,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할 수 있지만, 어떤 일에 대한 전략을 알고 하나 씩 실천해 본다면 어느덧 '고기 맛'을 알게 되고 그것을 향해 돌진하는 흥분감은 짜릿한 스릴이 된다는 거다. 언제까지 주인공을 빛내게 하는 조연으로 살아갈 것인가? '내 역할에 충실 했어'라는 소소한 자기 위안보다 '내 삶에 충실 했어'라는 충만한 '자존감'을 위해 무서운 사냥 개처럼 돌진해 보자.

7. 
이재명에 대해 받은 김주대 시인 받았다는 다음과 같은 두 번째 인상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는]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몸에 무리한 힘을 주지 않고 슬금슬금 자연스럽게 싸운다. 반면에 실력이 없고 싸움을 못 하는 사람은 힘을 많이 쓰다가 자기 근육만 파열시킨다. 윤가의 계엄이 그렇다. 흔히 대단한 이야기는 대단히 힘을 주거나 건들거리며 거만하게 말하는데 이재명은 대단한 이야기를 힘들이지 않고 조근조근 소박하게 말한다. 이를테면 국가 미래 정책적 비전을 속삭이듯 자연스럽게 말하며 상당히 구체적으로 내놓는다. 비전의 구체성은 실제 실천 실행해본 사람만이 가지는 특징이다."

노자의 <<도덕경>>의 첫 단어는 '도(道)'이고 마지막 단어는 '부쟁(不爭)'이다. <<도덕경>>을 딱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도위부쟁(道爲不爭)', '도란 싸우지 않는 것'이다. 노자에게 '도'란 평화다. 각 장의 핵심 메시지를 추려서 요약해도 평화에 관한 메시지가 가장 많음을 알 수 있다. 무위하기에 다투지 않고, 자연을 닮아 너그럽기에 다투지 않고, 비우기에 다투지 않고, 소유를 주장하지 않기에 다투지 않고, 몸을 앞세우지 않기에 다투지 않고, 자랑하지 않기에 다투지 않고, 화목하기에 다투지 않고, 검소하기에 다투지 않고, 편가르지 않기에 다투지 않고, 강해지려 하지 않기에 다투지 않고,  만족할 줄 알기에 다투지 않고, 어린아이를 닮기에 다투지 않고, 겸손하기에 다투지 않고, 일을 꾸미지 않기에 다투지 않는다. 노자는 <<도덕경>> 전편을 통해 '부쟁(不爭-싸우지 않기)'을 강조하였다. "상선약수(上善若水)"로 시작되는 제8장에서는 "수선리만물부쟁(水善利萬物而不爭),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고 했고, 제22장에서는 "부유부쟁(夫唯不爭) 고천하막능여지쟁(故天下莫能與之爭) 다투지 않기 때문에 천하의 어떤 것도 그에 맞서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제68장에서는 "선용인자위지하(善用人者爲之下) 시위부쟁지덕(是謂不爭之德) 사람을 잘 쓰는 사람은 스스로 아래에 거하니 이를 일컬어 부쟁지덕이라 한다"고 했고, 제81장에서는 "성인지도(聖人之道) 위이부쟁(爲而不爭) 성인의 도는 일을 도모하지만 다투지 않는다"는 말로 <<도덕경>>을 마무리하고 있다. 

'부쟁'에는 노자 사상의 핵심인 "무위자연(無爲自然)"과 평화, 공정이 응축되어 있다. 자연은 무위하고 다투지 않는다. 가을은 겨울을 이기려고 다투지 않고 겨울도 봄을 이기기 위해 다투지 않는다. 가을은 때가 되면 묵묵히 자신을 비우고 겨울에게 때를 넘겨주고 겨울 또한 때가 되면 따뜻한 봄을 위해 자신을 버린다. 다투지 않기 때문에 또 다른 가을이 있고, 또 다른 겨울이 있게 된다. 각자의 분수와 영역을 지키면서 서로 다투지 않기에 세상은 평화로워진다. 재물에 대한 욕심을 가지면 분쟁(分爭)이 발생하지만 욕심을 비우면 '부쟁(不爭)'하게 되고 세상은 공정해 진다. 노자는 자신의 능력을 베풀고, 진리를 말하고, 깨달음을 전하는 사람을 '성인'이라고 한다. 그 '성인'은 자신의 가진 것을 자신의 울타리에 쌓아 놓지 않는다. 소유에 대한 집착은 파멸을 가져올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인'은 타인의 불행에 공감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깨달음을 전하지만 오히려 자신에게 큰 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잘 안다. 주었지만(與), 더 많아지고(多), 베풀었지만(爲) 더 갖게(有) 된다는 노자의 논리 속에는 쌓지 말고 베풀라는 '성인'의 삶이 있다. 통장에 돈을 쌓아 놓아도 내가 다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통장에 찍힌 숫자와 금의 무게만큼 삶은 더 짓눌리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노자는 '성인'은 쌓아 놓지 않는 사람("聖人不積")이라고 정의한다.

8. 
김주대 시인은 그의 본능을 다음과 같이 읽었다. "이재명은 웃을 때 자라처럼 목을 살짝 안으로 집어넣으며 구걸하는 듯한 미소를 상대 쪽으로 밀어 보낸다. 자신을 상대보다 낮은 곳에 내려놓고 아부해야 생존할 수 있었던 어린 시절(공장 시절)의 고생이 만든 자세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다소 간사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내용마저 간사한 웃음과는 다르다. 웃을 때 그렇지 않아도 작은 눈이 거의 다 감긴다. 일부러 힘을 주고 질끈 감는 것 처럼도 보인다. 눈 밖으로 새어 나가는 자신을 막으려는 보호 본능 같다. 스스로 자기를 지키지 않으면 살아내기 힘들었던 삶이 몸을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재명은 싸우는 시간이 아닌데도 먼저 화합의 웃음을 자주 상대에게 보낸다. 든 거 없는 사람은 이런 웃음을 얕잡아 보기도 하겠지만 얕잡아 봐서는 안 되는 미소다." 그런데 세상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단순 명료하지 않다. 그러니까 복잡한 세상에 '친절한 진실'이란 없다. 뉴스가 시민들의 삶에서 조금씩 멀어져, 이제는 자본과 권력의 광고판으로 전락하였다. 언론이 본연의 가치를 잃은 채 경쟁에만 몰두한 나머지 수많은 '페이크(가짜)'가 '팩트(사실)'의 탈을 쓰고 전달되고 있다. 이것이 과연 터무니 없는 실수인지, 혹은 의도된 전략인지 모를 일이다. 

9. 
지난 2021년에 유시민이 말했던 것이 소환되었다. 그는 "이재명 학(學)"을 말했었다. 키워드는 다음과 같이 (1) 생존자  (2) 발전도상인 (3) 과제중심형’ 세 가지였다. 이 말들이 신선하여 아직도 기억하고, 그 기억을 어제 인터뷰에서 소환했다. 
▪ 첫째, 생존자는 이재명이 어려서 가난과 정치 입문 후 각종 논란을 겪고 살아남았다는 의미였다. 결론적으로 이재명은 ‘정치적 생존을 위태롭게 할 어떤 하자도 없는 사람’이기에 살아남았다는 평가였다. 키워드는 이재명을 방어하는데 원용될 것 같다. 과거 범죄 경력이나 욕설 논란은 ‘이런 생존 과정에서 난 상처’로 이해하자고 했다. 상처가 흠은 아니지만, 나는 그런 흠과 틈이 있는 사람이 좋다. 
▪ 둘째, 발전도상인은 끊임없이 발전하는 사람이란 말이었다. "머리 좋고 학습 능력 뛰어나고 목표 의식이 뚜렷해 자기를 바꿔 나가는 사람"이기에 "앞으로도 계속 발전"한다는 주장이었다.  '발전 도상'이란 개념 역시 이재명 방어용으로 유용하다. ‘불안한 리더십’도 앞으로 나아질 것이며, 대통령이 되면 ‘학습 능력을 발현해’ 잘 할 것이란 얘기 같다. 나도 개인적으로 나를 발전도상인으로 여기고 싶다. 죽을 때까지 공부하고 배우고 싶다는 말이다. 
▪ 셋째, 과제 중심형은 현안을 즉각 해결 해낸다는 말이었다. ‘일 잘 하는 이재명’을 설명하는 키워드라고 본다. 과거 정치지도자들이 철학과 가치를 세우고, 이에 따른 과제와 정책을 선택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재명은 이와 반대라는 해석이다. 이재명의 상대적인 정치철학 빈곤을 역설적으로 장점처럼 포장한 논리로 들렸다.

10.
숲길을 걷다 보면 가끔 커다란 혹을 달고 있는 나무가 눈에 띈다. 병들거나 벌레 먹은 자리에 맺힌 결인 혹은 나무가 겪어온 풍상의 세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옹두리를 볼 때마다 상처를 딛고 상승에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은 나무가 대견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나무는 누구를 탓하지도 않고 비애조차 내비치지 않으며 홀로 그 상처를 치유한다. 생명이 하는 일이다. 생명은 그래서 장엄하다. 아무리 삶이 곤고해도 내색하지 않고 검질기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상처가 많지만 스스로 치유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

상처에 대하여/복효근

오래 전 입은 누이의
화상은 아무래도 꽃을 닮아간다
젊은 날 내내 속썩어 쌓더니
누이의 눈매에선
꽃향기가 난다
요즈음 보니
모든 상처는 꽃을
꽃의 색깔을 닮았다
하다못해 상처라면
아이들의 여드름 마저도
초여름 고마리 꽃을 닮았다
오래 피가 멎지 않던
상처일수록 꽃향기가 괸다
오래된 누이의 화상을 보니 알겠다
향기가 배어 나는 사람의 가슴속엔
커다란 상처 하나 있다는 것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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