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2월 7일)
몇일 전부터 나는 <인문 일기>에서 노자가 꿈꾸는 성인, 내 방식대로 하면 '진정한 자유인'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여섯 가지 일을 살펴 보고 있다.
① 無爲之事(무위지사)하고
② 不言之敎(불언지교)하고
③ 萬物作焉而不辭(만물작언이불사)하고
④ 生而不有(생이불유)하고
⑤ 爲而不恃(위이불시)하고
⑥ 功成而弗居(공성이불거)하고, 夫唯弗居(부유불거)하면, 是以弗去(시이불거)하다.
이를 한국어 말하면, 성인, 즉 자유인은 "① 무위로써 일을 처리하고, ② 말로 하지 않는 가르침을 수행한다. ③ 모든 일이 생겨나도 참견하지 아니하고, ④ 낳으면서 소유하지 않는다. ⑤ 할 것 다 되게 하면서도 거기에 기대려 하지 않고, ⑥ 공이 이루어져도 그 공을 주장하지 않는다. 공을 주장하지 않기에 이룬 일이 허사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 중에서 어제는 ③ 만물작언이불사(萬物作焉而不辭) ④ 생이불유(生而不有) 이야기를 했다. 오늘은 마지막 ⑤ 위이불시(爲而不恃), ⑥ 공성이불거(功成而弗居), 부유불거(夫唯弗居), 시이불거(是以弗去) 이야기를 한다. 이 말은 "할 것 다 되게 하면서도 거기에 기대려 하지 않고, 공이 이루어져도 그 공을 주장하지 않는다. 공을 주장하지 않기에 이룬 일이 허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爲而不恃(위이불시)"는 도(=성인_은 "만물이 잘되어가도록 하면서도 그 되어가는 모습에 기대지 아니한다"는 거다. 여기서 "시(시)"는 '기댄다', '의지한다'는 뜻이다. 이 이야기는 <<도덕경>>의 여러 장에서 되풀이된다. 제10장에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부재, 시위현덕)". "낳으면서도 나은 것을 소유하지 않고, 지으면서도 지은 것에 기대지 않고, 자라게 하면서도 자라는 것을 지배하지 않는다. 이것을 일컬어 가믈한 덕이라 한다. 제51장에도 똑같이 반복된다. 그리고 제77장에서는 "시이성인위이불시, 공성이불처, 기불욕현현(是以聖人委而不侍, 功成而不處, 其不欲見賢)". "그러므로 성인은 만물이 자라도록 만들어가며 그 성취에 기대지 아니하고, 공이 이루어져도 그 속에서 처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슬기로움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功成而不居(공성이불거)"는 "공이 이루어져도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한다"는 거다. 자신이 공을 쌓고 그 공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거다. 쉽게 말하면, 무엇을 해 놓고도 뽐내지 않는다는 거다. 내가 무엇을 성취한다 할지라도 그 열매를 독차지하고, 그 성과를 따먹으면서, 그 성과 속에서 안주하는 삶의 태도를 근원적으로 벗어 내버리는 거다. 성인, 자유인은 자기 행동 때문에 누가 잘되거나 무슨 일이 이루어져도 자기의 공을 주장하거나 과시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자기의 의식적, 인위적 행위가 아니라, 도에 따라서 저절로 우러나온 자연적 행동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행동인지도 모르고, 그것 때문에 생긴 공이 자기 젓인지도 모른다. 이런 행동 방식, 이런 마음가짐, 이런 초월적 자세를 자진 자유인이 하는 일은 참된 일기 때문에 "허사로 돌아가지 않는다(是以不居, 시이불거)"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부유불거, 시이불거(夫唯弗居, 是以不去)"이다. "대저 오로지 공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사라지지 아니한다"는 거다. 세월은 원래 있던 환경을 지우고 전혀 다른 환경을 세워가며 질주해 나간다. 그 동작은 한 번도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세월은 무정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움직이는 세상을 자신의 기억 속에 가두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그러므로 살면서, "성공이 이루어지면, 그 성공을 차고 앉지 말아야 한다"는 노자의 말 "공성이불거"를 잊지 말아야 한다.
에리히 프롬에 의하면, 어떤 혁명가가 자신이 타도하려고 하는 대상을 타도하고 나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면 그것은 이미 혁명가가 아니라 반항아에 불과하다. 혁명가와 반항아는 다른다. 진정한 혁명가는 공을 이룬 후에는 그것을 차고앉으면 안 된다. 그 예가 체 게바라이다. 반항아들은 모두 무엇인가를 타도하고 난 후, 바로 그 자리를 차고 앉아 바로 정주형태의 집안을 이루어 버린다. 혁명이 성공한 그 순간을 차고 앉는다. 혁명의 깃발이 바로 완장으로 바뀐다. 혁명은 지속적으로 혁명 될 때에만 혁명이 된다. 이 말을 노자식으로 말하면, 공성이불거, 즉 공이 이루어지고 난 후에는 그것을 차고앉지 말자는 것이다. 이를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라 한다. 중심에 머물다가, 그만 파국을 맞는다. 삶은 동사적인 태도가 중요하다. 공(功)을 이룬 다음에 바로 다음 공(功)을 향해 나아 가는 동사적 태도 말이다.
"노자가 이런 방식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사회와 이상적 인간형은 어떤 본질적인 가치에 충실하여 남성적으로 경쟁에서 승리하여 굳건해 지는 모습이 아니라, 존재와 가치를 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부드럽고 여성적이며 한계 지워지지 않는 순수한 모습이다. 고정적인 지적 체계나 가치가 없으니 세계의 전체 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최진석) 오늘 공유하는 시인처럼 말이다.
옹기전에서/정희성
나는 왠지 잘 빚어진 항아리보다
좀 실수를 한 듯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아내를 따라와 옹기를 고르면서
늘 느끼는 일이지만
몸소 질그릇을 굽는다는
옹기전 주인의 모습에도
어딘가 좀 빈 데가 있어
그것이 그렇게 넉넉해 보였다
내가 골라 놓은 질그릇을 보고
아내는 곧장 화를 내지만
뒷전을 돌아보면
그가 그냥 투박하게 웃고 있다
가끔 생각해 보곤 하는데
나는 어딘가 좀 모자라는 놈인가 싶다
질그릇 하나를 고르는 데도
실수한 것보다는
실패한 것을 택하니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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