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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행복은 환경과 타인이 주는 게 아니라, 행복을 발견하는 눈이 밝아 야만 누릴 수 있다.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1월 28일)

왜 사느냐고 물으면 행복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행복이 뭐냐고 물으면 건강에서 경제적 자유까지 가치관에 따라 다양한 답이 나온다. 이럴 때 유용한 건 대조군, 즉 행복의 반대인 불행과 후회가 무엇이냐를 살펴보는 것이다. 어둠을 알기 위해 빛을 연구하는 것처럼 말이다. 가장 대중적인 건 ‘죽기 전 사람들이 제일 후회하는 것’의 리스트다. 그 리스트는 다양하지만 공통점은 이렇다. 첫째, 삶의 많은 부분을 너무 일만 한 것. 둘째, 가족, 친구 등 사랑하는 사람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않은 것. 셋째, 걱정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쓴 것. 소설가 백영옥의 주장이다.

우리는 대개 성공한 커리어와 풍족한 돈을 행복이라고 믿지만 다양한 행복 연구에서 밝힌 행복의 핵심에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돈 역시 일정 수준을 넘으면 행복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혀졌다. 큰 프로젝트나 일을 끝내면 “이게 다인가?"라는 공허감이 밀려오거나, 가지고자 그토록 노력했던 걸 가지고 보니 자신이 원하던 것이 아닌 경우도 있다. 만약 가족을 위해 일에 집중하고 마침내 고급 아파트에 입주했는데 일하는 과정 중 생긴 무심한 상처들 때문에 그 큰 집에 나만 홀로 남는다면 행복할까. 함께 눈 맞추고 기뻐할 사람이 없다면 그곳에 행복은 없다. 행복의 관점에서 결과보다 중요한 건 행복에 이르는 과정이다.

그리고 필요한 것이 긍정적 감정을 갖는 거다. 행복은 환경과 타인이 주는 게 아니라, 행복을 발견하는 눈이 밝아 야만 누릴 수 있다. 나이 들수록 삶의 의미를 발견하며 품격 있게 살아가고 싶다면 오늘부터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인 생각, 긍정적인 감정을 선택하는 습관을 키우자. 우리 뇌는 죽는 날까지 새로운 습관 회로를 형성하고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 박상미 교수의 글에서 사유 거리를 얻은 거다.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호흡도 빨라지며 혈압이 상승한다. 면역반응이 억제되고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급증한다. 만병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긍정적인 반응을 선택하면 우리의 뇌와 몸은 균형을 되찾는다. 긍정 감정은 품격 있는 삶도 살게 한다. 인간의 도덕성을 연구하는 뉴욕대 조너선 하이트 교수(사회심리학자)에 의하면, 긍정적인 생각과 감정은 도덕적이고 선한 행동을 하고 싶어 하는 욕구를 증가시켜서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품격 있는 사람이 되도록 이끈다는 거다.

박상미 교수에 따르면, 마음은 뇌에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균형 잡힌 뇌가 행복한 뇌라는 거다. 여기서 균형 잡힌 뇌란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면서 또 다른 긍정을 창조하는 뇌다. '무조건 행복을 외치자'는 말이 아니라는 거다. 과도한 행복감도 뇌는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울하고 슬픈 감정, 좌절과 실패가 무조건 행복과 반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뇌는 실수와 실패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부정 감정을 슬기롭게 조율하며 긍정 감정을 선택하는 습관을 만들어 나갈 때 행복을 느낀다는 거다.

심리학과 뇌과학은 행복한 마음도, 불행한 마음도 습관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긍정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소한 행동이 습관이 되도록 자주 반복하면 뇌가 바뀐다는 거다. 예컨대,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으면 뇌가 활성화되면서 긍정적인 감정이 생기기 때문에, 스트레스로 인한 통증과 불쾌하고 부정적인 감정이 완화되는 것이다.

행복 이야기만 나오면,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행복하기 위해 물질적 풍요가 필요하고, 이것을 위해서는 사회에서의 성공이 필요하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에 대해 자동으로 반응할 뿐, 이 공식의 원래 목표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물신주의'와 '성공 지상주의'에 빠져 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어느덧  '행복'이라는 시작은 사라지고, 물질적 풍요와 세속적 성공만 남아 있다. '물신주의' 라는 말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나온 것이다. 노동의 산물인 상품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신비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생활의 수단인 상품이, 교환가치의 척도인 화폐가 '물신(物神)'으로 승격하였다. 수단이 목적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행복을 위한 풍요, 풍요를 위한 성공이 변해서 물질적 성공만이 삶에서 추구해야 할 전부가 되어 버렸다. 이런 물신주의는 현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더 단단해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지본주의는 속도와 완급, 복지를 절충해가면서 도입한 자본주의가 아니다. 식민지였기에 자본주의는 더욱 야만적이었다. 게다가 해방 이후 본격화한 경제 발전은 공동체를 해체하는 자본주의적 확산을 의미했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 발전 역시 공산주의에 대한 사전 예방적 의미의 작업이었다. 우리 내부의 행복 증진이 아니라, 체제 대결에서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써 경제 발전이었다. 6·70년대 질주하던 북한 경제를 따라잡기 위해 남한은 수출에 사활을 걸었다. 이런 천민적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다르게 살려고 해야 한다. 자신의 잘난 점을 과시하고 남의 약점을 발견해 짓밟으면서 상대를 이겨 출세하는 식의 자본주의 방식과 다르게 살아보아야 한다.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은, 청년에게도 좋고 노년층한테도 좋은 그런 활동을 찾아야 한다. 탈주하여 방향을 바꾸고, 배치를 다르게 하는 변화를 시도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빛이 보인다. 그게 우주의 원리라 고미숙은 말하였다. 내가 원하지 않는데, 길이 열리는 편은 없다. 탈주하여 방향을 바꾸고, 배치를 다르게 하는 변화의 길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유데모니아(eudaimonia) 아닐까? 이 말은 좋은 삶(good life)로 번역 될 수 있다. 이 말은 삶의 의미와 가치에 주목하는 개념으로, 단순히 삶에 대한 평가나 감정 상태보다 더 넓은 의미이다.

OECD에서 정의하는 행복이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영위하면서 자신의 경험에 대한 정서적인 반응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다양한 평가를 포함하는 건강한 정신 상태"라 말한다. 그리고 행복에 대한 측정은 인지적 평가인 '삶에 대한 만족도', 정서적인 측면인 긍정적, 부정적 정서감, 마지막으로 미래적인 관점에서 삶의 목적이나 의미, 가치를 측정하는 유데모니아 항목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내일로 넘긴다.

행복/방민호

우리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을 때
옷 없는 짐승들처럼 골목 깊은 곳에 단둘이 살 때
우리는 가난했지만 슬픔을 몰랐다
가을이 오면 양철 지붕 위로 감나무 주홍 낙엽이 쌓이고
겨울이 와서 비가 내리면 나 당신 위해 파뿌리를 삶았다
그때 당신은 내 세상에 하나뿐인 이슬 진주
하지만 행복은 석양처럼 짧았다
내가 흐느적거리는 도시 불빛에 익숙해지자
당신은 폐에 독한 병이 들어 내 가슴속에 누웠다
지금 나는 거울에 비친 내 얼굴에 침을 뱉는다
시간이 물살처럼 흐르는 사이
당신을 잃어버린 내게 남은 건
상한 간과 후회뿐
그때 우린 얼마나 젊고 아름다웠나
우리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을 때
백열등 하나가 우리 캄캄한 밤을 지켜주던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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