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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상처를 가진 자가 활도 가진다."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2년 1월 27일)

오늘도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삶과 죽음에 대한 그 빛나는 이야기"란 부제를 단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읽기를 이어간다. 오늘도 어제 다 못한 제10장 "고통에 대해서 듣고 싶나"를 읽고 여러 가지 사유를 해 본다.  특히 '상처를 가진 자가 활도 가진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필록테테스라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 이야기를 한다. 이건 소포클레스가 그리스 비극 <필록테테스>라는 이름의 작품으로 쓴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리스 비극 이야기를 좀 한다. 지난 1월 25일 <인문 일기>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마을 공동체란 언제나 분쟁소지가 있는 다양성의 활동공간이다. A라는 주민과 B라는 주민의 이해관계가 다를 때. 혹은 도시 전체의 중요한 사항을 결정할 때, 사적인 문제와 공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 그 중재자가 지도자, 즉 리더이며, 그런 문제를 판결하는 장치가 법이고, 그 법을 만드는 곳이 입법부이고, 그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 사업부이다. 그런 것을 가르치는 곳이 학교이고, 교육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 시스템이 무너졌다. 그래 오늘 아침 시처럼, "지금" 말해야 한다. 이번 선거를 통해 그 시스템이 회복되어야 한다. 최근 사법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렇다.

고대 그리스의 경우, 개인 간 혹은 집단 간의 문제를 공동체가 인정한 법정에서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주민들은 마을 전체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표를 통한 다수결 원칙을 따랐다. 고대 그리스에서 아테네 시민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었다. 아테네라는 도시 공동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운영해야 하는 지도자들은, 아테네가 민주주의라는 정원을 잘 가꾸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시민 교육'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들은 철인(哲人) 통치자가 국가의 리더가 되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한 사람의 훌륭한 리더가 도시 공동체라는 정체를 유지하는 가장 효율적인 체계라고 판단하여 아테네 아르카디아 평원에 ‘아카데미'를 세워 국가의 미래 리더들을 양육하였다.

이상적인 아테네를 건설하기 위해, 이 철학자들과는 달리, 새로운 도시국가 운영의 핵심을 간파한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부패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였다. 거대한 국가 조직이 한 사람에게 과중하게 집중되면, 그는 오만할 수밖에 없고,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는 아둔의 상태로 진입하여,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치리(治理)하는 공동체에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소포클레스는 소수의 철학이 아니라 자신을 성찰하도록 만들어 주는 ‘문학(文學)’을 통한 시민교육이 아테네 민주주의의 꽃을 피울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소포클레스는 시민 한 명 한 명을 ‘문명화된 인간'으로 개조하기 위해 그리스 비극공연이라는 대중 엔터테인먼트를 시작하였다. 배철현 교수의 <묵상>에서 얻어온 거다. 나도 개인적으로 동의한다. 그리스 비극의 출발이 이런 거다. 이 이야기는 블로그로 옮긴다. 오늘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이야기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상처를 가진 자가 활도 가진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스승 이어령은 소포클레스의 비극 <<필록테테스>를 예로 설명하셨다. 이 비극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서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이 다 배를 타고 트로이 전쟁터로 떠났다. 그 연합군 중에 필록테테스라는 왕이 있었다. 그도 배를 타고 트로이로 가다 잠시 섬에 들어가 신전에서 운을 빌었다. 그런데 거기서 재수 없게 독사에 물린다. 온 몸에 독이 올라 고통으로 소리 지르고, 상처에서는 악취가 진동했다. 결국 그리스군은 악취와 소음을 견디지 못하고 필록테테스를 렘노스 섬에 버렸다.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홀로 버려진 거다. 이 이야기는 집단과 개인 사이에 벌어지는 기가 막힌 사건이다. 육체적 고통은 발작적으로 반복되었다. 필록테테스는 비명을 지르다 통증이 멈추면 열매를 따먹으며 10년을 지냈다. 병과 함께 외롭게 10년을 보낸 거다.

트로이 전쟁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신탁은 '아킬레우스 같은 영웅이 있어도 못 이긴다. 이기려면 헤라클레스의 활이 있어야 한다'고 예언했다. 그 헤라클레스의 활을 가지고 있는 자가 바로 클록테테스였다. 그는 헤라클레스가 죽을 때 그를 도운 대가로 아폴로의 신궁인 그 활을 받았던 거다. 그 이야기를 나는 매우 좋아한다. '웰 -다잉' 이야기를 할 때 내가 인용하는 이야기이다.

내가 좋아하는 헤라클레스는 그냥 죽음을 기다리지 않았다.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웰-다잉(Well-dying)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헤라클레스는 장작더미에 올라 불타 죽는 것으로 '떠밀리는' 죽음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온몸에 히드라의 도이 올라 괴로워 하던 헤라클레스는 장작을 쌓게 하고는 몸소 직접 그 위로 올라가서 이렇게 말한다. “이 장작더미 밑에는 내가 쌓아 놓은 불쏘시개가 있다. 그러나 내가 그대들에게 불질러줄 것을 청하여도, 그대들은 불을 지르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나를 모르는 사람이 이곳을 지나게 되면, 내가 쓰던 이 활을 주고, 그 대가로 불을 질러 달라고 부탁해라.” 한 이방인이 나타나자, 신관들이 헤라클레스의 뜻을 전하자, 헤라클레스가 누구인지 모르니까, 별 어려움 없이 불방망이를 장작더미 밑에 던지고, 헤라클레스의 활을 받아 가지고 사라졌다. 그가 필록테테스이다. 그리고 올림포스 신들은 헤라클레스가 땅 위의 삶을 마감하는 광경을 슬프게 내려 보고 있었다. 그 때, 제우스는 헤라클레스를 올림포스로 불러들인다. 그래서 헤라클레스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인간의 몸에서 태어났지만, 죽지 않는 신이 되어 올림포스로 올라 간 영웅이 된다.

헤라클레스를 불 지르고 그 활을 받은 자가 필록테테스이다. 독사에 물려 상처는 있지만, 아폴로의 신궁을 가지고 있었던 거다. 그런 그를 연합군대는 상처때에 버린 거다.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들이 버린 필록테테스를 찾아갔다. 오디세우스와 아킬레우스의 아들인 소년 네오프톨레모스가 그 섬에 와보니 땅끝까지 땋는 긴 머리를 한 사람이 달빛 아래서 짐승처럼 울부짖고 있었던 거다. 골짜기에 신음 소리가 흘러 넘쳤다.그런데 그 모습에서 소년은 고귀함을 봥ㅆ다. 10년 동안 외로운 섬에서 고통과 싸우며 죽음과 대면한 사람, 그 사람의 영혼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을 본 거다.

아킬레우스의 아들은 필록테테스에게 말한다. "활을 훔치러 왔지만, 당신을 여기 두고 활만 가지고 갈 수는 없어요, 활은 당신의 상처이고 상처는 당신의 활입니다." 결국 필록테테스는 자기를 버린 민족과 동지들을 용서하고 그 섬을 떠나 활과 함께 트로이의 전쟁터로 간다. 대장장이가 두드릴수록 강철은 더욱 강해지고, 보리밭은 밟힐수록 더욱 보리 알이 더 단단해 진다.

아침에 페이스북에서 만난 문장이다. 한 줌의 소금은 작은 물컵에 넣으면 매우 짜지만, 넓은 호수에 넣으면 짠맛을 모르듯, 인생의 고통도 소금과 같으니 작은 물컵이 되지 말고 큰 호수가 되는 거다. 자신의 그릇을 키워야 할 이유이다. 음식은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사람은 마음으로 맞추는 것이다. 마음의 크기를 키우는 거다. 고통을 피할 수는 없다. 삶의 고통은 피해가는 게 아니라, 정면에서 맞이해야 한다. 고통은 절대 남이 대신할 수 없다. 오롯이 자기 것이다. 그러나 나이 고통을 통해 타인의 고통도 공감하는 마음을 키워야 한다.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의 윤리'가 필요하다. 타자의 자리, 그 절대성을 인정하는 게 사랑이다. 그 자리가 윤리의 출발점이다. 타자의 고통을 내 시야에서 단정 내리면, 모든 그림이 단순해지고 왜곡이 생긴다. 타자의 고통을 알려면 골방에서 나와야 한다. 필록테테스처럼 말이다. 아마도 무인도에 있었다면, 전쟁에서 이기는 승리의 의미를 몰랐을 것이다.

상처와 활을 동시에 가지는 사람이 사회가 건강하다.  다양성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게 카오스를 허용한 사회의 에너지인데, 그게 상처의 에너지이다.  통제 사회, 무균 사회는 상처를 포용할 힘이 없다. 그 힘은 영혼의 생명력이다. 그 상처로부터 강한 자아가 생기는 거다. 그리고 그런 강한 자아가 타자의 고통을 공감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류시화 시인의 <소금>을 공유한다.

소금/류시화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이
바다의 아픔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 위에서
흰 눈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릴 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눈물이 있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다는 것을

나머지 이어지는 글이 궁금하시면, 나의 블로그로 따라 오시기 바란다.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이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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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