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산책

대답은 이미 있는 이론과 지식을 그대로 먹어서 누가 요구할 때 뱉아내는 일이다. 이때 가장 중시되는 일은 누가 더 빨리, 누가 더 많이, 누가 더 '원래 모습' 그대로 뱉아내는가 이다. 예컨대, 대답이라는 활동이 가장 높은 단계에서 제도적으로 운용된 것이 고시(高試)일 것이다. 여기서 '원래 모습'이란 말이 가장 큰 문제이다. '원래 모습대로'의 대답은 어쩔 수 없이 과거를 어루만지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답에 익숙하도록 훈련된 사람들은 미래보다는 과거를 살게 된다. 또 '원래 모습'은 기준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 기준이 작동하면 선악 논쟁이 된다. 기준에 맞으면 선이고, 기준에 맞지 않으면 악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진위(眞僞) 논쟁을 한다. 오구라 기조가 지적한 것처럼,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명분에 죽고 산다. 우리가 이렇게 도덕, 철학 등 명분에 갇힌 이유도 질문보다는 대답에 익숙한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원래 모습'이 기준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원래 모습'이 기준으로 작동하여 그것에 맞으면 참(眞)이고, 맞지 않으면 거짓(僞)이다.
당연히 우리 사회의 기득권자들은 대답에 익숙하도록 훈련된 인재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야 자리를 쉽게 차지 하기 때문이다. 나처럼, 모든 권위, 기준에 저항하는 것에 몸이 밴, 재야 인문운동가들의 말은 듣지 않는다. 대답에 익숙하도록 훈련된 인재들로 채워진 사회의 거의 모든 논쟁들은 '옳으냐, 그르냐'를 제일 중요한 위치에 놓고 따지는 진위(眞僞) 논쟁으로 흐른다. 기준을 제일 중요한 가치로 놓는다. 각자 자기만의 정의에 갇혀서 상대방을 적대시하며 극단적인 분열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런 이유이다.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논쟁이 진위 논쟁이자, 선악 논쟁이며, 총체적으로 과거 논쟁인 이유는 우리가 대답으로만 양성되었기 때문이다.
'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유발 하라리 (0) | 2021.08.03 |
|---|---|
| 인문운동가의 무더위를 이기는 방법: (3) '적정 거리'를 유지한다. (0) | 2021.08.03 |
| 인문운동가가 무더위 이기는 방법: (2) '3 통' 한다. (0) | 2021.08.02 |
| 인문운동가가 무더위 이기는 방법: 오상아(吾喪我) (1) (0) | 2021.08.02 |
| 사진 하나, 문장 하나 (0) | 2021.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