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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가슴 조이며 살지 말자.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1월 15일)

어제 공유했던 디오게네스처럼, 나는 '가슴 조이며 살지' 않기로 했다. 콩깍지 삶아 먹는 것만 배우면 된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조바심'이다. '바심'은 '타작'을 뜻한다. 즉 곡식의 이삭을 떨어서 낱알을 거두는 일이다. '조바심'은 말 그대로 '조를 타작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조는 질겨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즉 타작하기가 쉽지 않다. 생각대로 잘 되지 않으니 마음이 급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바라는 대로 일이 안 되면 어떨까'하며 조마조마하게 마음 졸인다는 의미가 생겼다.  조바심을 없애려면 '시시하게 살면,' 된다. 그런데, '시시하게 살면' 행복해진다.

'시시하다'라는 말은 '산통한 데가 없고 하찮다' 또는 '좀스럽고 째째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대체적은 시시란 것은 한가로운 것이다. 비록 몸은 부지런해도 잠재의식이 한가롭다면 시시할 수 있다. 이때 잠재의식이 한가로우려면, 우리의 행동이 단순하고 소박해야 한다. 기대하고 바라는 게 적어야 한다. 사실 부지런하지 않으면서 한가로운 것이 행복의 원천이다. 몸이든, 의식이든, 행동이든 모두가 한가해야 행복해진다. 그러니까 시시하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한가로우면 행복해진다. 우리가 지금 힘든 것은 다들 바쁘고 여유가 없는 탓이다. 시시하고 싱겁고 재미없는 것을 좋아해야 한다. 시시하고 특별한 것이라곤 하나 없는 일상(日常)이 감사의 기본이다. 일상의 지루함을 탈출하기 위해 일탈(逸脫)을 꿈꾸지만, 일상이 깨지는 상황을 상상해 보면, 그건 불행이다. 시시하다고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반복적이다 보니 파격적이지 못할 뿐이다. 일상은 시시하다 그리고 식상하다.  그러나 시시하고 식상한 것은 보통 우리 곁에 있다. 왜냐하면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 최경규 심리상담사의 글을 읽었다. "가슴 조이며 살지 말자. 바람보다 더 빠른 세상 움켜잡으려 할수록 손가락 사이로 세월은 빨리 도망간다. 진심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보자.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오늘.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에게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 보자. 단순하게 살수록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이 행복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는 지금 대량 소비와 속도, 경쟁의 악순환 속에서 출세, 성공 그리고 돈의 가치가 정신을 빼앗아 간 것도 모르고 바쁘다는 것을 무슨 깃발처럼 흔들며 살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자연은 파괴되고 생명 본래의 단순한 삶, 절제와 고요함의 가치는 산만함 속으로 파묻혀 갔다. 그러니 이젠 멈추어야 한다.

단순하게 사는 것이란 생각은 깊이 하되, 쓸데없는 생각들 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며 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고, 내 것이 아닌 것을 가지려 복잡함 속에 자신을 내버려 두지 않는 거다. 내 힘으로 조절할 수 없는 것은 그대로 흘러가게 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무엇이든 잘하고 싶고,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싶다면 내일에 무게중심을 두지 말고 오늘을 제대로 살면 된다. 오늘을 잘 사는 비결이 있다면 바로 '진심으로' 살아가는 거다.

나는 '흠'이나 '틈'을 좋아한다. 불완전한 자극을 서로 연결시켜 완전한 형태로 만들려고 하는 인간의 본능적 경향을 의미하는 게스탈트 심리학 명제가 있다. 인간은 불완전한 정보 자체를 못 견뎌 한다. 그래 사람들은 완벽하게 보이는 것보다 뭔가 틈이나 흠을 보고, 자기가 이야기를 완벽하게 만들면서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너무 완벽하면 싫어한다.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부분의 단순한 합이 전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각각의 부분이 합쳐지면 부분의 특징들은 사라지고, 전체적으로 전혀 다른 형태, 즉 게스탈트(Gestalt)가 만들어진다. "슬쩍 기울어져", 나를 바꾸는 이야기를 오늘 저녁에 만들어 보자.

완벽한 것보다 흠이 있는 것이 더 아름답다. 이란에서는 아름답고 섬세하게 짠 카펫에 의도적으로 흠을 하나 남겨 놓는다. 그것을 '페르시아의 흠'이라고 부른다. 흠이 오히려 친숙하게 한다. 삶이라는 카펫도 더러 흠이 섞여 있기에 더욱 친숙하고 아름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기울어짐에 대하여/문숙

친구에게 세상 살맛이 없다고 하자
사는 일이 채우고 비우기 아니냐며
조금만 기울어져 보란다
생각해보니 옳은 말이다

노처녀였던 그 친구도 폭탄주를 마시고
한 남자 어깨 위로 기울어져 짝을 만들었고
내가 두 아이 엄마가 된 것도
뻣뻣하던 내 몸이 남편에게 슬쩍 기울어져 생긴 일이다
체 게바라도 김지하도
삐딱하게 세상을 보다 혁명을 하였고
어릴 때부터 엉뚱했던 빌게이츠는
컴퓨터 신화를 이뤘다
꽃을 삐딱하게 바라본 보들레르는
악의 꽃으로 세계적인 시인이고
노인들도 중심을 구부려
지갑을 열 듯 자신을 비워간다
'
시도 돈도 연애도 안 되는 날에는
소주 한 병 마시고 그 도수만큼
슬쩍 기울어져 볼 일이다

행운을 부르는 일상의 기품이 있다. 자신의 가치를 잘 아는 사람은 다음 세 가지 원칙이 있다. 고마운 사람에게 인사하고, 미안한 사람에게 고개 숙이고, 소중한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다. 인사하지 않는 이유는 부끄럽기 때문이 아니라, 매너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수를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고개 숙이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화만 시작하면 다투는 사람은 말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듣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배웠지만, 여전히 인사하지 않고,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대화에 미숙한 사람은,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 가치를 제대로 실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고마운 사람에게 인사하고, 자신의 실수에 고개 숙이고, 상대의 말을 마음을 다해 듣는 사람은 인간의 품격과 가치를 가진 사람이다.

다른 글들은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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