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팀 페리스의 책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의 원래 영어 제목은 『Tribe of Mentors』이다. 그런데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바뀐 것이다. 한국 출판사가 제목으로 정한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라는 말은 스티븐 핑거(Steven Pinker)가 한 것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 교수로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지성인이다. 그의 인생 좌우명인 이 말은 랍비 힐렐로부터 온 것이다. 나도 그의 말을 외우고 있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위할 것인가? 내가 나 자신을 위한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면, 나는 누구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랍비 힐렐,『선조들의 어록』 1장 14절) 나는 그 때가 아침 글 쓰는 시간이다. 그래 그 시간이 매일 매일 지겹지 않고, 나에게는 새롭다.
다음의 다섯가지는 스티븐 핑거가 팀 페리스 책에서 우리들에게 해주고 싶어하는 말들이었다.
1. 소수의 사람들은 지지하지만 아직 문화적인 유행이나 보편적인 통념으로 뿌리내리지 못한 새로운 주제나 영역 또는 새로운 관심사를 찾으라.
2. '결실이나 보상이 있는 행동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직관을 따르는 것이라'는 조언은 절대 무시하라. 결실이나 보상을 늘 확보하라.
3. 그리니까 자기만족에 그치는 행동이나 시도는 하지 마라.
4. 귀천을 따지는 것처럼 천한 것은 없다. 지성인은 인문이나 언어계열 등의 고상한 직업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상업이나 산업에도 신경을 쓰라는 말이다.
5. 세상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생각하라. 부와 명예는 사라지지만 우리의 기여는 언제나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티븐 핑거가 일상에서 늘 하는 습관들을 우리도 본받을 만 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지루하고 상투적이지만 필수적인 행동을 빼먹지 않고 하기. 재미로 읽는 것을 제외하고 글을 디지털화 해서 축적하기. 나도 가급적 중요한 책들을 전자 형태로 보관하려 한다. 전자 버전은 검색까지 가능하고, 환경이 '한계'에 이른 지금의 지구 상황에 매우 유익한 비물질적 생활에 참여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몇 년 전부터, 나도 그처럼 일상을 지배하면서, 삶의 내적 평화와 균형을 되찾았고, 원노트와 에버노트를 이용해 글들을 축적하고 있다. 이젠 종이 노트를 별로 쓰지 않는다.
끝으로 나도, 스티븐처럼, 남은 삶을 찬란한 한순간 한순간의 합으로 만들려 한다. 지금-여기, 내 자신에게 치중하는 삶을 살려고 한다. 나는 그런 삶을 '우아한 성실주의'라 표현한다. '우아한 성실주의자'는 일상을 지배하며, 단조로운 일상을 사는 사람이라고 나는 정의하고 싶다. 그런 사람은 과거와 미래로 분열되지 않고 오롯이 '지금-여기'에 존재하는 주체적이고,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이다. 그런 사람은 늘 충만한 삶을 산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분주하지 않다. 조급해 하거나 초조해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스스로의 가능성을 무한하게 확장하면서 점점 넓어지게, 더 깊어지게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2020년 새해가 막 시작되면서, 큰 일정이 없이 한가한 틈을 타서, 나는 그동안 써왔던 <사진 하나, 시 하나>를 프린트하여 다시 읽고 있다. 책으로 묶어 볼 생각이다. 출판사가 받아줄지는 잘 모르겠다. 어제는 창 넓은 카페에 앉아 몇 시간동안 작업을 했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그대에게" 바칠 생각이다.
작년 이맘 때부터 인문학자가 아니라, 인문운동가가 되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러면서 <사진 하나, 시 하나>를 썼던 것이다. 이런 마음이었다. 문학이 타인의 고통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문학을 업으로 삼는 작가에겐 생존만큼이나 치열한 고뇌와 각성을 필요로 하는 일임은 분명하다. 별 볼일 없는 내 문장들이 나와 무관한 자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미루지 말고 지금 바로 시작하는 새해의 두 번째 월요일이었으면 한다. 이 글을 읽는 우리 모두 다같이.
그대에게/안도현
괴로움으로 하여
그대는 울지 말라
마음이 괴로운 사람은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니
아무도 곁에 없는 겨울
홀로 춥다고 떨지 말라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리는 세상 속으로
언젠가 한 번은 가리라 했던
마침내 한 번은 가고야 말 길을
우리 같이 가자
모든 첫 만남은
설레임보다 두려움이 커서
그대의 귓불은 빨갛게 달아오르겠지만
떠난 다음에는
뒤를 돌아보지 말 일이다
걸어온 길보다
걸어갈 길이 더 많은 우리가
스스로 등불을 켜 들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있어
이 겨울 한 귀퉁이를
밝히려 하겠는가
가다 보면 어둠도 오고
그대와 나
그때 쓰러질 듯 피곤해지면
우리가
세상 속을 흩날리며
서로서로 어깨 끼고 내려오는
저 수많은 눈발 중의 하나인 것을
생각하자
부끄러운 것은 가려주고
더러운 것은 덮어주며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찬란한 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우리
가난하기 때문에
마음이 따뜻한 두 사람이 되자
괴로움으로 하여 울지 않는
사랑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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