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지난 금요일 새통사에서 서보광 교수님의 매우 좋은 강의와 이순석 부장의 그보다 더 잘 정리 한 강의 후기를 읽고,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여러 사유들을 정리하였다. 그걸 네 번에 걸쳐 공유할 생각이다. (1)
1. 시간과 시각
시간을 한자로 하면, 이렇다. 時間. 생각해 보지 않았다. 시간을 말 그대로 하면, '해의 상태를 알리는 신호의 간격'이다. 그런 빛의 상태를 개인에게로 옮겨 와 보면, 머리 속에서 뭔가 각인이 일어나는 사건의 간격이다. 이를 인문학적으로 말하면, 물리적 시간과 심리적 시간으로 나눈다. 전자가 물리적 시간이라면, 후자가 심리적 시간이다. 같은 시간도 때에 따라 빨리 가는 것 같기도 하고, 느리게 가는 것 같이 사건에 따라 다르다. 이를 이순석 부장은 "머리 속의 생각이 일어나는 간격이든, 외부로부터 각인되는 사건의 간격이 시간"이라고 말했다. 사건의 간격이 시간이다. 흥미로운 정의이다.
그렇게 보아, "어떤 사람은 촘촘한 시간 간격이고, 어떤 사람은 드문드문한 시간 간격을 가질 것"이라고 본다. "이런 시간의 차이는 동일한 시각이 어떤 이에게는 현재가, 어떤 이에게는 미래가 된다"는 것이다. 이를 인문학적으로 말하면, 크로노스적 시간과 카이로스적 시간으로 나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두 종류로 나누어 이해했다.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가 그것이다. 크로노스는 객관적·물리적 시간이라고 하고, 카이로스는 주관적·심리적 시간이라고 한다. 이 두 시간을 흐르는 방향의 차이로 설명할 수도 있다. 크로노스는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시간이다. 반대로 카이로스는 미래에서 현재로 거슬러 흐르는 시간이다. 미래의 어떤 특정한 시점에 서서 현재를 돌아보는 것이 카이로스 시간이다. 카이로스는 때가 오기를,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우리의 기원과 소망이 투사된 미래의 사건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그날이 언제 어떻게 올지 모르기 때문에 이 시간을 사는 사람들은 긴박하고도 간절한 삶을 산다.
카이로스적 시간은 나 자신의 철저한 의지, 개입 그리고 열정에 의해서만 가능한 시간이다. 다시 말하면, 흘러가는 양적인 시간을 그리스어로 크로노스(chronos)라 하고, 영원한 질적인 시간을 '카이로스(kairos)'시간이라 한다. 카이로스 시간은 질적인 시간, 한 번 밖에 일어나지 않지만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시간이다. '결정적 순간'이다. 결정해야 할 경계에 선 사람만이 이 카이로스 시간을 만난다. 카이로스는 기회의 여신이다. 비핸스 공동 창업자 중 하나인 스콧 벨스키(Scott Belsky)은 "가능성을 탐구하기 시작하면, 즉 없는 가능성을 만들어서라도 붙이겠다는 태도를 갖고 있으면, 기회가 눈 앞에 나타났을 때 놓치지 않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기회는 행운과 같은 것이다. 기회의 여신을, 고대 그리스에서는 '카이로스(Kairos)'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아침은 폴란드 시인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명품 시를 공유한다. 좀 길지만, 맨 마지막 연이 압권이다. "말하자면 모든 시작은/단지 '계속'의 연장일 뿐./사건이 기록된 책은/언제나 중간부터 펼쳐져 있다." 아침 사진은 길을 가다가 만난 석양이다. KAIST 앞에서 차를 세우고 찍은 것이다. 해의 상태로 우리는 저녁이라는 것을 안다.
첫눈에 반한 사랑/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갑작스러운 열정이 둘을 맺어주었다고
두 남녀는 확신한다.
그런 확신은 분명 아름답지만,
불신은 더욱더 아름다운 법이다.
예전에 서로를 알지 못했으므로
그들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래전에 스쳐 지날 수도 있었던
그때 그 거리나 계단, 복도는 어쩌란 말인가?
그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기억나지 않느냐고-
언젠가 회전문에서
마주쳤던 순간을?
인파 속에서 주고받던 "죄송합니다"란 인사를?
수화기 속에서 들려오던 "잘못 거셨어요"란 목소리를?
- 그러나 난 이미 그들의 답을 알고 있다.
아니오, 기억 나지 않아요.
이미 오래전부터
'우연'이 그들과 유희를 벌였다는 사실을 알면
그들은 분명 깜짝 놀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가 운명이 될 만큼
완벽하게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그렇기에 운명은 다가왔다가 멀어지곤 했다.
길에서 예고 없이 맞닥뜨리기도 하면서,
낄낄거리고 싶은 걸 간신히 억누르며,
옆으로 슬며시 그들을 비껴갔다.
신호도 있었고, 표지판도 있었지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제대로 읽지 못했음에야.
어쩌면 삼 년 전,
아니면 지난 화요일,
누군가의 어깨에서 다른 누군가의 어깨로
나뭇잎 하나가 펄럭이며 날아와 앉았다.
누군가가 잃어버린 것을 다른 누군가가 주웠다.
어린 시절 덤불 속으로 사라졌던
바로 그 공인지 누가 알겠는가.
누군가가 손대기 전에
이미 누군가가 만졌던
문고리와 손잡이가 있었다.
수화물 보관소엔 여행 가방들이 서로 나란히 놓여 있다.
어느 날 밤, 깨자 마자 희미해져 버리는
똑같은 꿈을 꾸다가 눈을 뜬 적도 있었다.
말하자면 모든 시작은
단지 '계속'의 연장일 뿐.
사건이 기록된 책은
언제나 중간부터 펼쳐져 있다.
이어지는 글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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