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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에세이

오늘에 집중한다.

옳고 그름, 도덕성을 철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윤리학이다. 윤리학은 더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 윤리학보다 더 긴 역사를 지닌 종교는 윤리학의 범위를 넘어선 심원한 영역을 다른다. 종교는 옳고 그름만이 아니라 선악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모색한다. 그리고 종교는 '올바른 행동'을 이야기 한다. 종교(宗敎)를 말 그대로 하면 '으뜸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그 가르침을 받지 않은 사람은 어떤 목표도 세울 수 없다. 그러니까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할지 모르고, 어찌어찌 훌륭한 목표를 세웠더라도 목표를 이루는 법을 모른다. 그리고 목표로 정할 것이 없다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목표가 없으니 방향을 잃고 방황한다.

제대로 훈련 받은 사람은 적어도 잘 연마된 도구와 같다. 훈련이나 신념은 그 너머를 볼 수 있는 시각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도구는 목적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 목적이 없다면 쓸데 없는 도구이다. 목적을 결정하는 것은 시각이다. 이런 시각이 필요하다. <<도마 복음>>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말이다. "아버지의 나라가 온 땅에 뿌려져 있지만 사람들은 그 나라를 보지 못한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종교적 영향을 받았다.

어쨌든 인간이 가진 믿음에 대한 지식 중 일부가 문서로 기록되어 있다. 그것이 각 문화권의 근본적인 깨달음을 전하는 <<도덕경>>, <<베다>>, <<성경>>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인간의 집단적 상상력이 불가해한 힘에 이끌려 기나긴 시간 동안 깊은 심연에서 끌어올린 지혜의 보고서들이다. 주의 깊게 꼼꼼히 파헤치면, 우리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에 대한 근원적인 가르침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고전들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삶을 목표로 삼아 본다. 더 나은 삶이란 목표가 다른 사람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면 그 목표는 잘못된 것이다. 실제로 더 나은 삶을 목표를 정하면, 이제 눈길이 향하는 방향이 바뀌기 시작한다. 알게 모르게 자신을 짓누르던 한계 너머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자신의 삶에 새로운 가능성이 나타나고, 그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삶이 질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더 나은 삶이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되는 거다. 여기서 더 나은 사람이란 삶의 조건이 보편적으로 향상된 모든 인간의 삶을 의미한다. 이런 생각 끝에 이르면, 우리는 과감히 행동에 나선다.

그 행동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현재 내 주변을 둘러싼 물리적인 환경과 심리적인 환경에 집중하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하며 주목한다. 자신을 짜증나게 하는 게 뭔지. 신경 쓰이는 게 뭔지, 걱정거리가 뭔지 정확히 파악하라. 그리고 자신이 바로잡을 수 있는 것과 바로잡아야 할 것에 주목하라. 그리고 그런 것들을 손쉽게 찾게 하는 다음의 세 개 질문이 만들 수 있다.
(1) 이것이 지금 나를 짜증 나게 하는 것인가?
(2) 이것은 내가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인가?
(3) 정말 나는 이것을 바로잡을 의지가 있는가?

이 질문들 중 '아니요'라는 답이 하나라도 있으면 시선을 돌려야 한다. 목표를 낮춰도 좋다. 자신을 괴롭히는 것, 바로잡고 싶고,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 나올 때까지 찾아보고, 그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 하루면 충분하다. 무엇이든 처음에는 서툴러도 자꾸 하다 보면 능숙 해진다. 잘 안 되면, 오늘 하루 할 일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 본다. 그리고 자신에게 이것 만큼은 꼭 끝내자 하고 부탁해 본다. 한 동안 매일 이렇게 해본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이 습관을 유지해 본다. 그러면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이런 질문을 하면서 말이다. '내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할까?'

그러면서 오늘에 집중한다. 그래야 현재를 온전히 살 수 있고, 바로 눈 앞에 놓인 그 일에 완전하게 그리고 올바르게 힘을 쏟을 수 있다. 걱정할 필요 없다. <마태복음> 제6장 25절에서 34절을 공유한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26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28 그리고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 입지 못하였다.
30 오늘 서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31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현재에 집중한다. 다른 사람의 삶이 내 삶보다 더 낫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이제는 누구도 시기하지 않는다. 목표를 낮추고 인내하는 법을 알기에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는다. 자신이 누구이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도 깨달어 간다. 그래서 자신 앞에 놓인 수많은 문제에 대한 본인만의 해법을 발견해 간다. 자신이 해야 하 중요한 일이 많기에 남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남들 일에 간섭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현재의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어제의 자신과 비교하며 더 나은 삶을 위해 현재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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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_인문운동연구소 #복합와인문화공방_뱅샾62 #어제의_자신과_비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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