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 '현재 내 형편에서 내가 좋아 하는 그 일을 할 수 있는가?'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킬 때 비로소 나만의 ‘맞춤형 행복’이 만들어진다고 본다.
오늘 아침은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어제 나는 "맞춤형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생에서 주어진 의무는 아무 것도 없으며, 그저 행복 하라는 한 가지 의무 뿐이다." 이 문장은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헤르만 헤세의 말이다. 누구나 인생은 단 한 번 뿐이다. 그러면서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 꾸지만, 행복의 실체가 무엇인지,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는 평생 생각만 하다가 사라지는 존재는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는 아침이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요즈음 한국은 집, 아니 부동산 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언제부터 인가 우리들의 ‘집'이 돈 놓고 돈 먹기, 화나의 상품이 되어버렸다. 다시 말하면, 우리 몸을 맡기고, 가정을 꾸리고, 우리의 삶을 만들어주던 이 공간이 그저 소유와 거래의 의미만 갖게 되었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7년 째이다. 어쩌다 여기까지 와서 살게 된 지는 잘 모른다. 흘러 흘러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작년부터 이젠 정주(定住)를 생각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 내 삶은 ‘정주’가 아니라 ‘유목’이었다.
인간의 문화는 정주를 시작하면서 꽃을 피웠다. 삶의 기억과 경험이 세대를 통해 전수되고 문화로 형성되기 위해서는 한곳에 오래 거주하는 것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공간은 처음부터 저절로 존재하지 않는다. 땅에 경계를 그어 안팎을 표시하고 사람이 살면서 공간은 비로소 ‘탄생’한다. 그러면서 한 인간이 살면서 공간이 생겨났고 또 그 공간이 그 인간을 계속 살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의 자취와 때가 없는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며, 살 수 없는 공간이다. 그렇게 문화는 장소와 함께 사람이 숨 쉬는 공기가 되는 것이다.
조연경이라는 드라마 작가의 글에서 읽었다. 그녀에 의하면,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취미가 될 수 있는 것을 직업으로 삼으면 행복하다" 전제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특히 '제가 작품에서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자신을 이해하라, 그래야 행복할 수 있다." "정말 행복 하려면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모르고는 자신에게 맞는 '맞춤형 행복'을 만들 수 없다.
작가는 이런 예를 들어 주었다. "근사한 집에서 살면 행복할 것 같다. 그렇다면 내 형편이 근사한 집을 살 수 있나? 지금은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행복을 유보해야 하나? 우리는 유한한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오늘 당장 행복하게 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근사한 집을 살 수 없다면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나름 근사하게 꾸미면 된다. 햇빛이 잘 안 드는 창가에 색색의 팬지 화분을 쭉 올려 놓고 화사한 물방울무늬 커튼을 달아 본다. 그리고 향긋하고 고소한 커피 냄새로 눅눅한 주방을 카페로 만든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특히 나만의 '맞춤형 행복'이 필요하다. 나 자신을 알고 이해하고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누구나 '맞춤형 행복'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행복(幸福)은 마음의 상태이다. 행복이란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자기 자신이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때의 삶의 모습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될 수 있는 그 무엇이 되어야 만 하고, 그 때 우리는 행복하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사진 속의 풀들처럼 각자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고, 때가 되면 꽃을 피우는 것이다. 그러면서 베어지면, 풀들은 "향기"를 낸다. "베이는 순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지만/비명 대신 풀들은 향기를 지른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그물망은 우리들의 삶의 크나큰 전환을 요구한다. 집이 없고 돈이 없어서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사는 사람들, 충분히 잘살지만 차익을 위해 집을 사고 팔거나 떠나려는 사람들에게 집은 삶과 무관한 곳이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부동산(不動産)’이란 말이 오늘날 우리들의 집의 정체를 말해준다. 그것은 재산이자 상품일 뿐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곳이 아니다. 그래 어제부터 나는 "맞춤형 행복"을 생각했다. 아침 사진은 내가 산책 길에 만난 풀들이고, 풀꽃이다. 그래 아침 시도 "풀"을 택했다. 밖은 장맛비가 굵게 내린다.
풀/이재진
베어진 풀에서 향기가 난다
알고 보면 향기는 풀의 상처다
베이는 순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지만
비명 대신 풀들은 향기를 지른다
들판을 물들이는 초록의 상처
상처가 내뿜는 향기에 취해
나는 아픈 것도 잊는다
상처도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다.
자신이 되지 못하게 하는 상황에 놓이면, 우리는 불행하다고 느낀다. 실제로 자기 자신이 될 수 없게 되면 우리는 불행하다. 그리고 자신이고 싶은 자신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안다 할지라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의 삶, 아니 자신의 인생이 있을 수 없다. 외부의 자극이나 환경에 의해 나의 행복이 영향을 받는다면, 나는 불행하다. 그러니까 불행이란 자신의 행복을 유지할 수 없고 휘둘리는 상태이다. 나만의 '맞춤형 행복'이 필요하다. 만일 행복을 내가 조절할 수 없고, 내가 개선할 수 없는 외부에 있다면, 나는 영원히 불안과 초조 안에서 헤매며 살게 될 것이다.
행복은 풍선 같으면 안 된다. 행복은 비바람이 도달할 수 없는 내 마음 속에 고요히 존재한다. 삶 속에서는 항상 문제의 연속이다. 이 연속적인 사건들에 일희일비하는 경솔한 마음과 반응이 불행이다. 행복은 내가 조절할 수 없는 것에 기대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짧은 인생동안 반드시 성취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고 그것에 온전히 몰입하는 일상의 수련이 행복이다.
행복은 들판의 풀들과 같다. 들꽃은 그냥 핀 것이다. 그게 자기 실현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고통과 쾌락을 자신에게 똑같은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짧은 인생동안 성취해야 할 임무에 몰입되어 있는 사람에게, 자신이 속한 사회라는 공동체가 부여한 명예나 불명예, 비난이나 찬양은 그에게 한번 스쳐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다. 그 경계가 사라진다. 모든 것은 잔물결일 뿐이다. 자신을 위해 무엇을 인위적으로 시도하여 이익을 취하려 시도하지 않는다. 그냥 계절, 아니 때에 맞춰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조심해야 할 일은 행복을 환경이 가져다 주는 상품만으로 본다면, 불행하다. 자신의 행복을 방해하는 존재는 제거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자신이 해야 할 한 가지를 숙고를 통해 발견하는 자는 언제나 부자이다. 그는 미래에 이룰 자신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신을 숙고(熟考)한 적이 없고, 행복을 자신이 아닌 외부에서 찾아 경쟁에 몰두하는 사람은 항상 가난하다. 그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자신의 소유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가난하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을 독립적이고 고유한 존재로 보지 않고, 타인과의 가치를 비교한다. 그런 사람은 늘 타인을 부러워 한다. 부러움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할 때,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헛된 바램으로 정의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부러움이 시간이 흐르면, 시기(猜忌)로 변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고유함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행위가 대개 시기이다. 시기하는 사람은 자신이 내뿜는 나쁜 기운으로 자신도 죽게 된다. 그건 풀의 향기와 다르다.
살면서 나만의 "맞춤형 행복"을 만들 필요가 있다. 조연경 작가가 든 예는 이런 식이다.
"음향 시스템이 완벽한 대극장에서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을 감상할 때 행복하다. 그런데 현실은 육아와 살림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가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아직 미혼으로 나이에 맞는 자유를 누리는 친구를 보며 너무 일찍 결혼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우울증에 걸릴 것인가? 집에서 오디오로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을 들으면 된다. 오디오를 살 때 좋은 소리를 위해 조금 호사를 부려도 괜찮다." 나도 그렇게 산다. 최근 Youtube로 원하는 음악을 거의 다 들을 수 있어 행복하다.
"하필이면 아르바이트를 이름 있는 리조트 앞 편의점에서 하게 되었다. 또래들이 신나게 여름휴가를 즐기는 걸 바라보며 삼각김밥과 우유로 점심을 때우고 있다. 왠지 자신의 처지가 참 서글프다. 행복의 가장 큰 방해물은 상대적 위화감이다. 어느 날 친구가 잘 익은 김치를 갖고 왔다. 삼각김밥에 김치 한 조각을 얹어 먹는데 너무 맛있어 갑자기 행복해진다. 행복이 이렇게 쉬운 것이었나? 마음을 바꿔 먹는다. 리조트 출입문을 바라보지 않고 편의점 안에서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기로 한다." 내 딸이 이런 생각을 해 늘 행복해 한다. 불행의 시작은 남과 비교하는 데서 시작된다.
"자식들이 손자손녀를 앞세우고 내 집에 와서 함께 저녁식사를 할 때 행복하다. 그런데 자주 오지 않아 서운하고 괘씸하다. 행복을 위협하는 것 중 하나가 다른 사람 손에 내 행복이 달려 있을 때다.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데 하물며 타인의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겠는가? 자식도 타인이다." 늘 불평 불만하는 내 친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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