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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고대 페르시아 제국 이야기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우리는 각종 테러와 전쟁 때문에 중동 전체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메소포타미아 미술을 공유하던 첫날 말했던 것처럼,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미술을 자신을 지키는 방패이자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무기로 사용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나에게는 새롭게 중동을 이해하는 좋은 계기였다. 주변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젠 고대 그리스 비극의 시작인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인>을 더 잘 이해할 것 같다. 알게 하는 것과 사랑하게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가령 역사적 사실을 가르쳐 알게 하는 것은 역사교육이지만, 역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게 하는 것은 문화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것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갖지 않는 문화이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도 인문지식을 배우고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인문정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게 하는 문화가 중요하다. 인문운동가의 역할은 다른 것에 대해 무관심한 문화에 대한 각성을 요구하는 일이다. 나 자신의 존재만을 위해, 나만 잘 살려고, 내 존재만 풍성하려고, 공부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세계 역사상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은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된 것이 아니라 호기심에서 나온 경우가 많다. 이런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폴리메스(polymath, 박식한 사람)"라 한다. 예컨대,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현대의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 같은 이들이다.

어제 우리는 몇몇의 수고로 '인문적인', '동사적인' 송년회를 보냈다. 일년 간 고민했던, 인문정신을 일상의 삶에 적용해 본  송년회였다. 함께하는 연대의 힘, 바자회에 보인 물건에 탐내려는 나의 욕심을 비우는 일, 나누는 일이 더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체험하는 일이었다. 고생하신 분들의 "안부"를 묻는 아침이다. 나는 송년회 후, 서울 강의를 하고 밤 늦게 내려왔는데, 춥고 배가 고팠지만 그 따뜻했던 송년회의 힘으로 잘 견디었다. 즐겁고, 행복하게.

오늘로 메소포타미아 미술 이야기를 마친다. 나는 석사논문으로 우리에게 삼권분립에 대해 최초로 이야기 한 『법의 정신』으로 알려진 몽테스키외의 풍자 소설인 『페르시아인의 편지 』를 분석하였다. 고백하는데, 논문을 쓰면서, 나는 고대 페르시아 제국을 잘못 알고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미술을 이야기하면서, 이제 마지막으로 고대 페르시아 제국 이야기를 한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진정한 승자가 페르시아 제국이었다. 지금의 이란 지역에서 시작된 조그만 나라 페르시아가 오랫동안 그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했다. 놀라운 정치력의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예전의 제국들은 모두 무력으로 다른 민족을 억압하며 힘겹게 국가를 유지하는 데 그쳤기에 힘이 약해지는 순간 와르르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페르시아는 다양한 민족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문화적 기틀을 세워 제국 내부의 갈등을 최소화했고, 그 결과 오랫동안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평화의 힘이고, 그 평화는 힘이나 무력이 아니라, 온유와 문화의 힘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 한반도에도 시사점이 있는 내용이다. 위대함은 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페르시아라는 이름으로 묶인 왕조들 중 제 1왕조가 아케메데스 왕조이다. 기원전 550년에서 기원전 330년까지 이어졌고, 그 기틀을 잡은 왕이 키루스 2세였다. 그는 무력이 아닌 덕, 즉 유화적인 정책으로 제국을 통치했다. 반항할 거리를 주지 않으니 저항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만큼 제국을 다스리는 일이 수월했던 것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다른 나라들이 반란을 평정하는 데 국력을 소진했다면, 페르시아는 그 힘을 아껴 놓았다가 제국을 성장시키는 데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 내부의 갈등으로 국력이 소진되고 있다.

그 후, 다리우스 1세와 크세르크세르 왕의 시대를 거치며 엄청난 대제국이 된다. 우리의 관심은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이다. 이곳이 메소포타미아 도시 건축의 결정판이기 때문이다. 좀 자세하게 묘사해 본다. 기회가 되면 구글에서 사진을 보시면 좋을 것 같다.
▫ 만국의 문: 주 출입구 양 옆으로 계단이 지그재그로 설치되어 있다. 111개씩 2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222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그러나 계단의 경사가 완만해 산책하듯 어렵지 않게 올라 갈 수 있다. 말을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계단의 높이가 낮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크세르크세스 왕'의 문으로도 불리는데,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상징인 라마수가 이 문을 지키고 있다.
▫ 접견실: '아파다나'라 불렸다. 이 말은 원래 거대한 기둥이 늘어선 건물을 일컫는 용어이다. 한 면의 길이가 60m인 사각형 모양의 건축물인데 기둥 높이가 21m에 이른다. 현재는 13개의 기둥이 남아 있지만 원래는 36개였다고 한다. 21m이면, 오늘날 건물의 7층 높이이다. 건물의 규모 뿐만 아니라 곳곳에 새겨진 조각들 역시 페르시아 제국의 위엄을 드러낸다. 대접견실의 기단 부조에는 각지의 사신들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대접견실로 향하는 계단 옆 벽에는 페르시아 근위병들의 모습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 100개의 기둥이 있는 궁전: 가로세로 70m의 규모이다. 이 건물은 초기에 각 지역의 대표자들이나 사령관들이 모여 제국의 통치에 대해 의논하는 일종의 회의실 또는 연회실이었지만, 나중에는 각지의 진귀한 물건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처럼 사용했다. 페르세폴리스는 이집트의 신전 카르나크 대신전의 건축에서 모티브를 얻어 지은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정복지의 문화를 흡수해 자기 식으로 소화해 내는 페르시아 문화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페르시아인들은 광활한 제국의 영토 곳곳에서 다양한 전통을 수집해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뒤섞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냈다. 그래 페르시아 미술의 장점은 연출력이었다. 뭔가 새로운 걸 창조해내기보다는 이미 있는 좋은 것들을 가져와 한데 어우러지도록 연출하는 능력이 있었다. 아시라이 같은 나라의 미술 작품은 폭력적이고 잔인한 면이 많은데 페르시아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 페르시아가 남긴 거대 도시의 흔적들은 지금 거의 파괴된 상태이다. 대제국의 영광은 그저 상상하는 수밖에 없다. 페르시아의 도시들을 파괴한 범인으로 사람들은 알렉산더 대왕을 지적한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알렉산더가 꺾은 제국은 페르시아 하나뿐이다. 페르시아가 먼저 거대 제국을 건설했고, 알렉산더 대왕이 그 제국을 삼켰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리고 속상한 것은 알렉산더 대왕이 실수로 화제를 일으킨 것으로 주장하지만, 그가 의도적으로 파괴한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페르시아라는 위대한 왕국을 입증하는 거대한 도시를 불태우지 않으면 새로운 질서를 확립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안부/배귀선

잘 지내고 있나요
당신의 하루는 어떤가요
여전히 햇살은 빛나고
수채화 빛 눈부신 아침
나의 오늘은 당신으로 인해 숨을 쉽니다

편안한가요
당신의 시간은 어떤가요
계절 색 더해지는
짙은 커피향의 오후
나의 상념은 당신으로 인해 깊어갑니다

무릎담요 꺼내 놓은 날
당신의 어느 하루가 궁금합니다

아프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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