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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단풍/박숙이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벌써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나태주 시인이 말씀하신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인 11월이 이젠 시작된다. 법륜 스님은 '잘 늙음'이 청춘보다 좋을 수 있는 이유를 단풍에 빗대어 말했다. "꽃은 떨어지면 지저분하게 변색되지만 단풍은 길을 융단같이 덮습니다. 책갈피에 넣어 쓸 수도 있고요."

단풍은 자신을 공격할지도 모르는 해충에 대한 나무의 경고라고 한다. 진딧물 같은 곤충을 향해 겨울을 나야 하는 자신의 서러움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몸에 있는 것을 전부 떨구고, 색 전체를 바꾸는 행위에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는 것일 게다. 그러므로 또렷한 가을빛을 내는 나무는 주위의 그 어떤 나무보다 더 건강한 것이다. 나무의 겨울나기는 먹을 것을 극한까지 비축해 견디는 동물의 그것과 정반대로 이루어진다. 즉 축적은 나무의 생존 방식이 아닌 것이다. 나무는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버리는 것으로 혹독한 겨울 준비를 마친다.

천국은 따분하다는 말을 들으면, 귀찮고 힘든 일상이 짓누르는 어려움에 오히려 감사해야 할 것 같다. 최근에 간신히 기억하고 있는 좋은 기도 문장 하나 공유한다. "기복이나 행운을 빌기보다는 감사해 하며 살고 싶어요. 대박을 원하기 보다 자족, 가진 것에 만족해 하며 살고 싶어요. 기적보다는 일상에 더 치중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가을 단풍이 서로 부러워하지 않으면서 뽐내는 것처럼, 기복보다는 감사, 대박보다는 자족, 기적보다는 일상에 충실한 삶을 살자는 것이다. "그러니 대책 없이 건드린 죄/네가 다 책임져라!" 네 속도 너처럼 붉다.

단풍/박숙이

그가 물었다
나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오랜 고심 끝에 나는 대답했다
마음에 담아본 적이 없다고

그랬더니, 며칠 만에 쓸쓸히 찾아온 그
짐승처럼 저돌적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어쨌든 속수무책으로 서로의 본능을 다 태웠다

아 나의 저항이 오히려
그의 태도를 확실히 불붙도록 만든 셈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대책 없이 건드린 죄여
네가 다 책임져라!

#인문운동가_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_시하나 #박숙이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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