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습니다. 한 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습니다.
치자꽃 설화/박규리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법당문 하나만 열어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인지
목탁소리만 저 홀로 바닥을 뒹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더니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 듣는 소리와
짝을 찾는 쑥국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 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더 섧게만 보이는
잿빛 등도 저물도록 독경소리 그치지 않는
산중도 그만 싫어,
나는 괜시리 내가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
#인문운동가박한표 #사진하나시하나 #박규리 #와인바뱅샾62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건들대 봐/김형영 (2) | 2023.04.18 |
|---|---|
|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에게 배웠다/박수소리 (0) | 2023.04.18 |
| 강이 풀리면/김동환 (0) | 2023.04.18 |
| 복사꽃/송찬호 (0) | 2023.04.17 |
| 뼈의 노래/문정희 (0) | 2023.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