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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글쓰기가 주는 마력

우리는 내가 누군인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어 한다. 문제는 알면 알수록 모르는 영역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그러나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곧 구원이다. 왜냐하면 앎은 무지를 알아차리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위험한 것은 질문이 없고 이미 답이 정해져 있다고 여기는 태도이다. 지난 20세기가 그랬다. 지난 20세기는 이분법이 지배한 시대이다. 선과 악, 남성과 여성, 진보와 보수 등으로 이분법이 지배한 세기이다. 그리고 인생은 노동, 화폐, 가족이라는 트라이앵글만 잘 지키면 된다고 여긴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디지털 혁명과 함께 낯설고 기이한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지금은 스마트폰 세상이다. 그 안에 온갖 지식과 정보가 그득하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잘 모르고 있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도래하면서 기술과 자본이 혁명을 주도하며, 인공지능의 시대라는 4차산업혁명이 진행중이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만큼 그 기술을 활용하는 인식의 힘 역시 고양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인식의 힘이 고양되려면, 생명력인 욕망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에로스의 충동에 로고스의 비전을 부과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에로스에서 로고스로 변주되어야 한다. 그 때 좋은 방법이 글쓰기이다.

그 글쓰기가 욕망의 방향을 바꾸어 주는 이유는 여럿이다. 첫 번째, 글을 쓰려면 사유가 명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려면 생각이 명료하고 맑아야 한다. 그래야 언어가 생성되고 논리가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투명한 언어, 논리적 일관성을 지향하게 되면 욕망의 불꽃은 저절로 사그라진다. 두 번째 글을 쓰려면 집중력이 필요하다. 집중을 하려면, 생리 구조가 수승화강(水丞火降)의 상태가 되어야한다. 수승화강은 평정의 다른 이름이다. 세 번째, 글쓰기에는 어떤 노동이나 운동보다 고강도의 에너지가 소모된다. 욕망을 잠시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방향으로 투여한다는 뜻이다. 네 번째, 글이 생산될 때의 성취감은 짜릿한 쾌락과는 클라스가 다르다. 가치를 창조하는 기쁨의 파동은 온 몸을 촉촉히 젹셔 준다. 이게 글쓰기가 주는 마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