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인 명상 스승인 잭 콘필드와 그의 부인 트루디 굿맨 박사를 만난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조선일보의 김지수 기자가 한 인터뷰를 소개한 <유유자>란 분의 블로그를 통해서 읽게 되었다. "고요하게 있을 때 자신의 재능과 자질을 알아차릴 수 있어요. 한발짝 뒤로 물러나서 재능을 발견하고 한 발짝 나아가서 세상과 나누세요." 삶의 균형을 위해 좋은 말이다. 때에 따라서 뒤로 물러나서 고요한 시간을 갖고, 또 때가 되면 세상으로 나와 발견된 자신의 재능을 서로 나누어야 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엄청난 속도로 세상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와중 속에서 우리의 일상은 불안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마음껏 움직일 수도, 만날 수도 없도록 우리를 가두어 두었지만, 한편으로 나 자신과 친구가 될 기회도 열어 주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질문해 본다. 앞으로의 세상은 어떨까?
좋은 질문이 좋은 세상을 만든다. 뉴턴의 질문은 중력의 원리를 밝혀냈고, 루소의 문제 제기는 복지국가 이론의 단초가 됐다. 종교의 경전들도 질문으로 진리의 삶을 이끈다. 반대로 나쁜 질문은 개인과 국가, 인류를 위기에 빠뜨린다. 예를 들면 "독일 민족은 선택 받은 아리아인이 아니냐"던 히틀러의 우문은 유대인 학살과 참혹한 전쟁으로 이어졌다. 좋은 질문은 축적된 지식과 깊은 통찰에서 나온다. 그러려면 세밀한 관찰로 문제를 발견하고, 검증할 수 있는 객관적 가설을 세워야 한다. 좋은 질문은 사안의 핵심을 파고드는 통찰이며, 인공지능이 따라 할 수 없는 창의적 직관이다. 그렇기에 슬라보이 지제크는 "자판기처럼 해결책을 내놓는 전문가는 많지만, 본질을 탐구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지식인은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양자택일을 강요하며, 관용이 부족한 질문으로 다양성이 막힌 채 갈등을 겪고 있다. 라파엘로가 묘사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에 발을 디딘 채 눈은 미래를 향하며 묻는다. 더 이상 과거로 침잠 하는 구시대의 질문을 반복해선 안 된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현재의 문제를 풀 수 없다"던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새롭게 본질을 향하는 질문이 필요하다. 우연히 침대에서 읽게 된 중앙일보 창간기획 기사의 이야기이다. 질문해야 한다는 좋은 설명은 받아들이겠는데, 정작 기자가 하는 질문은 나쁘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다시 나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질문은 '코로나-19가 만들어 내는 불학실성만이 확실한 세상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고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이다. 참고로 10월 3일 그 부부는 온라인으로 한국인을 위해 강의를 한다고 한다. 그가 인터뷰에서 했던 몇 가지 말을 오늘 아침 공유한다. 이어지는 글은 너무 길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연휴에 시간을 내 천천히 읽으면 마음의 균형을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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