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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인간은 언제 완성될까?

완성된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이다. 그건 신의 영역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신에게로의 초월을 꿈꾼다. 초월은 내 담벼락을 허물고 지평을 확장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신의 경지까지 다가가려고 애쓰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다만 현재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인간이 되려 한다. 그러려면 내 생각으로 사람은 끊임없이 외부와 접촉해야 한다. 홀로 동굴 안에 있으면 안 된다. 사람이 인간이 되려면, 동굴을 나가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래야 인간이 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동물이 된다. 현생 인류는 타인과 무리를 이뤄 살아가는 방식에 최적화되어 있다. 지금까지 우리 인간은 날마다 누군가를 만나고 대화하며 생각을 교류하고 감정을 나누며 살아 왔다. 우리는 지금도 나름대로 사람들과 접촉하며 하루 또 하루를 살아간다. 각자의 네트워크 속에서 다양한 캐릭터들을 만나면서 미지의 어떤 세계에 대해 눈을 뜨고, 배우고 사유하며, 불현듯 또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을 거듭하며 자아를 점점 확장한다. ‘껍데기'를 깨기 위해서는 계속 접촉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심지어 살면서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가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인생'이라는 말도 있다. 그가 지금 만나는 사람들을 알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사람과 사람은 만나야 한다. 그때부터 인간이 된다.

난 저녁마다 복합와인문화공간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데 거리로 나가면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난다는 것은 얼굴을 마주 보고, 눈을 맞추는 일이다. 그런데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서로 피해 간다. 아마 그가 나를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실제로 나도 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누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타자 윤리학"을 말하는 프랑스 철학자 엠마뉴엘 레비나스는 이런 말을 했다. "타자는 나에게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얼굴로 나타내는 현현(顯顯)에 의해 나에게 의무를 지운다." 이러한 의무에 따라 타자로 향한 정향성으로 말미암아 인간 간의 유대와 연대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 레비나스의 주장이다. 그는 "제대로 된 정의는 타자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동양 철학에서도 타자 없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라는 존재는 타인과 맺고 있는 관계의 넓이와 폭이 말해준다고 말한다.

"보는 것은 주체이고 정신이다. 보이는 것은 객체이고 사물이다. 내가 타인을 단순히 보고 있는 한 타인은 단순하 사물이다." (미와 마사시, 『신체의 철학』) 우리는 타인을 사물로 바라보지 말고,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여야 한다. 그래 우리는 얼굴 대 얼굴로 만나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무한(레비나스 용어, 네가 쌓은 경계의 담벼락이 무너지면서)'으로 나아갈 수 있다. 얼굴로 나타나는 현현을 통해서, 우리는 주체성을 가지고 타인과 시선을 교류하는 건강한 사이가 된다. 특히 눈과 눈의 마주침이 중요하다. 이런 식으로 당당하게 시선을 교류하는 사이가 되어야 책임지는 윤리적 주체가 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연대에 기초를 두고 자유와 독립을 유지하며 공동체로 살아가려는 개인들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사회 시스템도 그런 식으로 발전했으면 한다. 오늘은 여기서 그친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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