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아침도 공지영 작가의 최근 산문 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한다.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 내 삶에 대해 전반적으로 되 돌아 보다가 만난 책인데, 많은 통찰을 얻었다. 오늘 아침은 "살다 보면, 하나의 오래된 단계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것부터 사유를 시작한다. 우리는 계속 건너 가야 한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사랑을 끝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이어 가기 위해서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때 사랑은 붙어 있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성숙해지려, 시선을 끌어 올리려는 우리는 떨어져서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이란 상대방의 성장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려는 의지"라는 정의를 공지영 작가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릴케가 말하는 사랑의 정의도 소개했다. 조금 공유한다.
"[젊은 초보자는] 온 존재를 걸고, 그들의 고독하고 불안하며 위를 향하여 맥박치는 심장의 주위에 집중된 모든 힘을 다하여 그들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 사랑한다는 것은 개개인에게 있어서 성숙하려는, 자신의 내부에서 무엇이 되려는, 세계가 되려는 숭고한 동기입니다. 개개인에 대한 크고 엄청난 요구입니다. 한 개인을 선택하여 광대한 것으로 초빙해 가는 그 무엇입니다."
사랑은 '멋진' 건너 가기가 될 수 있다. 공지영 작가는 어떤 신부님이 내리신 사랑의 정의도 소개했다. "사랑이란 홀로 있기를 가장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자신의 일부를 다른 이를 위해 내어주는 것이다. 함께 성장하기 위하여." 여기서 나는 "홀로 있기를 좋아하는"에 방점을 찍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사랑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수많은 고통이 목격된다. 사랑을 하는 이유가, 외로워서, 욕정을 풀기 위해, 돈이 없으니까, 먹고 살기 어려워서, 남이 얕보니까, 집안일을 위해, 허전하니까,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네가 필요하니까 등등 무수히 많다. 위에서 말했던 그 신부님이 "사랑의 반대말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한다. 그 대답은 "사랑의 반대말은 미워하는 것도 아니고, 무관심한 것도 아니고, '이용한다'"라 하셨다 한다. 이 걸 읽고 고개를 크게 나는 끄덕였다. 흔히 사랑한다며 보여주는 우리들의 관심은 자신의 성장, 서로의 성장이 아니다. 우리들의 관심은 스스로의 이기적인 감각일 때가 많다. 설사 내가 아프더라도, 설사 내가 이렇게 손해를 보더라도, 네가 성장하는 길이라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진실한 사랑에 도달한 것이라는 말이다.
공지영 작가의 다음 지적에 난 또 커다란 지혜를 얻었다. "사랑은 강한 사람이 한다. 사랑과 희생은 어머니가 아기에게 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몸으로 사랑을 가르쳐 주셨는데 우리가 잊거나 모르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약한 자가 희생한다는 것은 그저 희생물이 되는 것뿐"(공지영)이다. 사랑의 희생은 전적으로 자발적으로, 전적으로 더 강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랑의 정점에 전지전능한 신이 있다는 것이 그래서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렇구나", 혼잣말 하면서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랑은 아픔을 허락하는 것이다."(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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