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7.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소설 쓰는 사람, 김연수는 소설 쓰기는 "펄펄 끓는 얼음 물"에 이르기라고 했다. 모든 글쓰기에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으로 사회가 위축되었는데, 여기 저기서 날 찾는 사람이 많아 3월이 시작되면, 엄청 바쁠 듯하다. 유학 생활을 하면서 공부를 더 하면, 나의 사회적 수명이 더 길어질 꺼라 믿었는데, 실제로 그렇다. 바쁘다. 만나자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래 오늘 아침은 좀 늦게 시와 글을 쓴다. 어제에 이어, 소설가 김연수가 말하는 "펄펄 끓는 얼음 물에 이르기 위한 5 단계"의 마지막 3 단계를 공유한다.
세번째는 서술어부터 시작해서 자기가 토해 놓은 걸 치운다. 이야기는 스스로 꿈꾸었으나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은 모든 꿈들의 기록이다. 글쓰기에서 한국어 문장은 서술어 부분이 한없이 애매하고 모호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심연에 정치적인 공포를 지니고 살기 때문이다. (주1) 한국어에서 정확한 문장을 쓰려면, 서술어 부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을 하다'는 모두 '~하다'로 바꾼다. '것'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면, '선물을 했던 것이다' 대신 '선물했다'로 줄여 써야 한다. 가능하면, 동사(혹은 형용사)와 시제만 남게 서술어 부분을 단순하게 만든다. 이렇게 서술어 부분을 최대한 간단하게 만들면 도대체 내가 무엇을 쓴 것인지 조금씩 명확 해진다. 더 정확히 말하면, 복잡한 서술 구조 때문에 가려졌던 빈약한 구조가 드러나면서, 내가 무엇을 쓰지 않았는지 알게 된다.
네번째는 문장들이 어느 정도 깨끗해 졌다면 감각적 정보로 문장을 바꾸되 귀찮아 죽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소설에 합당한 문장은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 맡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맛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단어들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소설을 읽는 일은 소설 속 캐릭터의 감각을 대신 맛보는 일이기도 하다. 소설의 플롯을 짜고 캐릭터를 완성시킬 때에는 물론 감정이입이 가장 중요하지만, 문장을 쓸 때는 감정이 아니라 감각이 이입 되어야 만 한다. 한 감각이 다른 유사한 감각으로 비유될 때, 문학적 문장은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소설은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질 수 있는 단어들로 문장을 쓰는 일이다. 생각이 아니라 감각이 필요하다. 소설가의 일은 장면이 바뀔 때마다 뭐가 보이고 들리고 맛아 나고 냄새가 나고 만져지는지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게 소설 문장의 시작이라면, 끝은 그렇게 알아낸 감각적 표현으로 치환하는 일이다. 이 치환을 좀더 능숙하게 하려면 평소에 감각하는 연습을 많이 해서 더 많은 감각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지금 뭐가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지, 어떤 냄새가 나고 어떤 맛이 나는지, 자신에 묻는 연습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어딘 가에 쓸 수 있다면, 그걸 문장으로 쓰는 것이다. 자기가 지금 뭘 보고 듣고 만지고, 또 어떤 냄새와 어떤 맛이 나는지 문장으로 써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봄에 대해 쓰려면, 봄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쓰지 말고, 무엇을 보고 듣고 맛보고 느꼈는지 쓰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언어로는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 우리가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건 오직 감각적인 것들 뿐이다.
다섯 번째로 소설을 쓰지 않을 때도 이 세계를 감각하라. 혁신의 본질은 늘 허기진 상태이다. 소설가에게 혁신이란 이전에는 쓰지 못한 문장을 쓰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소설가는 문장에 관한 한 허기진 상태여야만 한다. 비우면 혁신이 시작된다. 그리고 비운 것을 채우기 위해서는 두 개의 동사 '감각하다'와 '생각하다'가 필요하다. '감각하다'는 원고를 쓸 때 사용하고, '생각하다'는 교정할 때 사용한다. 감각해서 알아낸 단어와 표현으로 원고를 쓰고, 그 원고에 대해 생각하면서 새로운 단어와 표현으로 교정한다. 구체적으로 감각할 때는 본다, 듣는다, 만진다 등의 동사를, 생각할 때는 비유한다, 추론한다. 대조한다 등의 동사를 사용한다. 글을 쓰기 전에 소설가는 생각하지 않고 감각한다.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학술적으로 아무리 떠들어봐야 한 번 나를 안아주는 것만 못하다. 생각 속에서 물은 0도씨에서 응고돼 얼음이 되지만, 감각 안에서 얼음은 펄펄 끓고 있다.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소설가는 늘 이 감각적 세계에 안기기를 갈망해야만 할 일이다.
사람은/박수소리
사람은
완벽한 조건을 갖춘 사람보다 자신과 비슷하게 약점이 있어 보이는 사람,
뭔가 부족해 보이는 사람에게 더 호감을 느낀다.
사람은
그런 사람에게서 나를 압도하고 지배할 사람이 아니고,
내가 훈수를 둬줘야 할 대상으로 느낀다.
고의적으로, 아니 의도적으로 그런 사람을
우리는 '위대한 개인'이라고 한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위대한 개인'은 자기 자신이 틈을 만들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다.
새싹을 틔우는
봄 흙의 헐렁함처럼 빈 틈을 만드는 사람이다.
주1: 한반도에서 평화의 분위기가 없었다. 늘 전쟁의 분위가 맴돌았다. 그래서 한국 정치는 타협하지 못한다. 전쟁의 공포를 만나면 그저 죽이거나 도망치거나 둘 중의 하나 뿐이다, 타협은 없다. 그래 우리는 공포의 노예들이다. 다른 사람들의 제 혓바닥처럼 굴리기 위해서 공포를 이용하는 자들의 눈초리 앞에서, 이게 사는 길인지 죽는 길인지 몰라 스스로 자유를 헌납하는 민초들의 모습들이 공포의 노예이다. 정치가 없는 세상은 이런 공포가 사라진 세상이다. 타인이 강요하는 어떤 두려움에도 현혹되지 않고, 각자가 양심의 판단에 따라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은 꿈에서나 갈 수 있다. 그래서 이야기는 계속된다. 문학이 사라지지 않을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