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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눈이 아주 탐스럽게 내렸던 어젠, 윤동주의 시와 슈베르트의 가곡을 남성 성악가 베이스 전승현 교수가 혼자 부르는 음악회에 다녀왔다. 후원하고 있는 대전챔버오케스트라 제9회 정기연주회 <윤동주와 슈베르트>였다. 노래를 들으며, 나는 할 수 있으되 하지 않을 수 있는 절제가 '멋'이고 '격'이라고 생각했다.  베이스의 '격'있는 노래를 들은 후에, 나는 바로 와인 소믈리에로 일하며, 추운 밤을 따뜻하게 보냈다.

오늘도 공유할 시는 김기택 시인의 <명태>이다. 명태는 검푸른 바다 밑에 있을 때만 명태이다. 바다 밖으로 나오면 이름이 바뀐다. 얼리거나 말리지 않으면 생태, 얼리면 동태, 반건조하면 코다리, 말리면 북어, 추운 겨울 얼렸다 녹였다 하면서 말리면 황태, 너무 추워 하얗게 되면 백태, 겨울 날씨가 따뜻해서 검게 되면 먹태, 소금에 절여 말리면 짝태, 술안주로 사랑받는 명태의 새끼를 노가리라 한다. 나도 명태처럼, 여러 자아를 키워, A를 만나면 A가 되고, B를 만나면 B가 되는 멀티 자아로 세상을 즐긴다. 나는 나다. I am who I am. 신분증이 없다고, 주눅들지 않는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처럼,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 명태처럼.


명태/김기택

모두가 입을 벌리고 있다
모두가 머리보다 크게 입을 벌리고 있다
벌어진 입으로 쉬지 않고 공기가 들어가지만
명태들은 공기를 마시지 않고 입만 벌리고 있다
모두가 악쓰고 있는 것 같은데 다만 입만 벌리고 있다

그물에 걸려 한 모금이라도 더 마시려고 입을 벌렸을 때
공기는 오히려 밧줄처럼 명태의 목을 졸랐을 것이다
헐떡거리는 목구멍을 틀어막았을 것이다
숨구멍 막는 공기를 마시려고 입은 더욱 벌어지고
입이 벌어질수록 공기는 더 세게 목구멍을 막았을 것이다

명태들은 필사적으로 벌렸다가 끝내 다물지 못한 입을
다시는 다물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끝끝내 다물지 않기 위해
입들은 시멘트처럼 단단하고 단호하게 굳어져 있다
억지로 다물게 하려면 입을 부숴버리거나
아예 머리를 통째로 뽑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말린 명태들은 간신히 물고기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물고기보다는 막대기에 더 가까운 몸이 되어 있다
모두가 아직도 악쓰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입은 그 막대기에 남아 있는 커다란 옹이일 뿐이다
옹이 주변에서 나이테는 유난히 심하게 뒤틀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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