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와인을 마실 때 외치는 건배사를 바꾸었다. "빈체로"이다. 이 말은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Turandot)> 속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 아무도 잠들지 마라로 번역되기도 한다. 영어로는 None shall sleep)"에서 얻은 말이다. 아리아 <네순 로르마>는 이렇게 시작하고, 끝난다.
"Nseeun Dorma, Nessun Dorma!(아무도 잠들지 말라, 아무도 잠들지 말라)
Tu pure, o Principessa(당신도, 공주여)
(중략)
All'albe vincero!(새벽이 오면 나는 승리하리!)
Vincero, vincero!(승리, 승리)"
건배사 'Vincero!'가 여기서 나온 말이다. 그 이유는 승리를 위해서 나를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빈 채로 세상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삶은 '혼자'가 아닌 '함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하여, 승리하리라." 이런 의미에서 "빈체로!'하는 것이다. 이것은 제이비드 부룩스가 말하는 '두 번째 산"을 오르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나를 독려한다. 두 번째 산에서 승리하리라. 그러려면 먼저 나를 버리는 일이다. 나를 버리리라.
아침마다 글 쓰는 이유는 두 번째 산에 오르는 방법이다. 나를 자랑하는 일이 아니다. 나는 아침에 출근할 곳이 없다. 그래 아침 시간이 많다. 나는 챙겨야 할 가족이 없다. 나만 챙기면 된다. 그래 아침 시간이 많다. 그러나 그 많은 시간을 따뜻한 이불 속에서 보내고 싶지 않다. 정신없이 달리기만 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사람을, 삶을 생각하게 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쓰고, 내가 찍은 사진을, 내가 고른 시를 공유한다. 그렇게 소통한다. 소통이 이루어져야 우리 사회가 야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야만은 한마디로 소통이 부재한 상태이거나, 혹은 소통을 유지할 정도로 남들에게 관심이 없는 상태이다. 그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동체이다. 공동체는 내가 원하는 욕심과 타인이 원하는 욕심을 중재하는 매개체이다. 공동체가 없거나 공동체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매개체가 없어 소통이 부족하다.
어제에 이어 지난 금요일 우리들의 공동체 <새통사>에서 서보광 교수님의 매우 좋은 강의와 이순석 부장의 그보다 더 잘 정리 한 강의 후기를 읽고,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여러 사유들을 정리하였다. 그걸 네 번에 걸쳐 공유하고 있는데, 오늘은 그 두 번째이다. (2)
2. 소통(communication)
소통이란 '소'를 극복(通)하는 것이다. 소통이라는 말에서 '통'에 방점을 찍기보다 '소'에 찍어야 하는 이유이다. 왜냐하면 소통이란 소외의 구조에 저항하며, 통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의 뜻이 '틈이 벌어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소외는 벌어지거나 벌어진 틈을 막는 것이고, 소통은 그 틈을 더 벌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소통을 잘 하려면 나를 버려야 한다. 우선 내가 망가져야 한다.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포용하지 않은 채, 나만이 옳다며 자기 원칙만을 고집할 경우 애초부터 소통은 불가능해 진다.
후기는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살면서 소리로 몸짓으로 그림으로 말로 문자로 그 소통의 섬세함을 더해 왔다. 그런 소통을 통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시각을 배우며 더해 갈 수 있었다." 정말 소통이 중요하다. 그 소통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점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결론, 그래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르다. 사람마다 살아온 경력이 다르니까. 그러니, 누군가에게 자신의 생각을 설득하거나 주입하려 하면 안 된다. 그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이 걸어온 인생의 결론이니까. 이런 가운데,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우린 그를 매우 반갑게 생각하고, 그와 음모를 꾸민다.
에피쿠로스는 우정이란 '음모(陰謀, 몰래 꾸미는 일)'라고 말했다. 이 음모의 시작은 서로 공감(共感)하는 것이다. “아 당신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하며, 뭉클한 위로를 받을 때가 공감하는 순간이다. 음모를 한국어 사전에서는 "나쁜 목적으로 몰래 흉악한 일을 꾸밈 또는 그런 꾀"로 정의하지만, 신영복 선생은 음모는 "현실에서 든든한 공감의 진지(陣地)"라고 말하면서, 음모란 우정이라는 에피쿠로스의 정의를 소개하였다. 소통을 통해 모든 사람의 말을 다 공감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래서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즐거운 것이다. 그래 우리는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친구로 삼는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소통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이런 류의 리스트는 나 자신의 소통 능력을 키워준다. 우리는 가끔씩 이 리스트를 읽어가며 나의 버릇을 점검해야 한다.
1.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은 뒤에서도 하지 마라.
2. 말을 독점하면, 적이 많아진다.
3. 목소리의 톤이 높아질수록 뜻은 왜곡 된다.
4. 귀를 훔치지 말고, 가슴을 흔드는 말을 하라.
5. 내가 하고싶은 말보다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해라.
6. 칭찬에 발이 달려 있다면, 험담에는 날개가 달려 있다.
7. 뻔한 이야기보다 펀(fun)한 이야기를 해라.
8. 혀로만 말하지 말고 눈과 표정으로 해라.
9. 입술에 30초가 가슴에 30 년이 된다.
10. 혀를 다스리는 것은 나지만 내뱉아진 말이 나를 다스린다.
나의 '실제적인' 소통 기술은 위의 기술에 다음이 덧붙여진다. 언젠가 내가 쓴 <소통>이란 시와 같다. 오늘 아침은 그걸 공유한다. 사진은 제주도에 갈 때마다 소통을 배우게 하는 제주도식 담장이다.
소통/박수소리
'욱'하지 마세요,
발끈하지 마세요.
그건 힘이 없다는 증거예요.
그럼.
어젠, 바에서
난 '욱'하지 않고,
자기 생각과 다른 '꼰대'를 다루는
기술을 엿봤다.
팩트만,
본질만,
이야기 하고,
많이 듣다가,
계속 했던 말을 반복하더군요.
상대의 말을 판단하지 않고,
내 생각만 이야기 하더군요.
느낌은 피하더군요.
내 호가 나무로 만든 닭, '목계'인데,
난, 아닌 이야기를 들으면, 아직도
'욱'한다.
이어지는 글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_디지털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박수소리 #복합와인문화공방_뱅샾62
후기는 "그렇지만 시, 공간의 제약을 탈출할 수 있는 기회는 누구나 같지 않다. 시각의 차이가 새로운 가치 발견의 속도 차이를 낳고 미래의 선점을 통한 부의 축적의 차이를 낳는다. 그렇게 부의 불균형은 시작되었다. 부의 불균형은 인류의 미래를 소수의 사람들에게 의존하게 되는 상황으로 몰아간다"고 쓰고 있다. 가치 판단이 아니라 사실 판단이다. 문제는 축적된 부의 잉여가 문제이다. 나는 단순히 물질적인 부의 문제보다, 부와 함께 축적한 그런 사람들의 '플랫폼'의 크기에 주목하고 싶다. 비록 부를 이루지 못했지만, 후손들이 딛고 일어날 수 있도록 많이 축적된 '다양한'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잉여가 존재하는 사람만이 지금 현재 아무런 의미가 없는 새로운 분별의 행위를 할 수 있다"는 문제는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잉여가 존재하는 사람은 다음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지금-여기서 쓸데 없어 보이는,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하는 질문을 해야 한다. "새로운 분별은 엉뚱하고 생뚱 맞는 질문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은 잉여가 없는 사람들에게 존재할 수 없다. 또한 그 질문에 대한 분별을 해내기 위해 장시간 지난한 노력이 수반되지 않은 사람에게도 존재할 수 없다." 동의한다.
이건 문화의 차원이다. 축적하여 나만, 내 가족만 잘 살자는 문화에서는 불가능하다. 후기를 보면,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실리콘 밸리의 다양한 문화를 가진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 대덕 연구단지 문화는 어떤 가?
- 반론이 허용되는 Counter 문화
- 자유정신을 대표하는 burining man 문화
- 도전의 hecker way 문화
- Digital goldrush 문화
- Pay it forward 문화: 내가 받은 혜택을 다시 혜택을 준 사람에게 pay it back을 하지 않고, 뒤따르는 후세들이나 후배들에게 베푸는 pay it forward 문화는 인류의 다양성을 실현하기 위한 지속가능한 생태계 조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문화란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후기는 이렇게 쓰고 있다. 동의한다. "시골 동네의 정자와 같이 모두를 품어줄 수 있는 생태계의 조성이 결국 미래를 준비하는 최선의 길"이다. 이러한 생태계를 만들려면 여럿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자 자신의 '틈'을 벌리고, 다름을 틀림이 아니라 차이로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자기를 버리고, 자신의 것을 넘겨줄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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