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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간고등어/이언주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2박 3일 제주도에 간다. 그래 일요일 오전부터 미리 그 여행 중에 아침 글쓰기를 위한 밑그림을 그렸다. 한겨레 신문의 김은형 논설위원의 글을 보며, '늙는다'는 것에 대한 사유를 펼쳐 보았다. 마침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과 내 머리처럼 나무 우듬지가 비어가는 것을 보니, 늙어감과 죽음이 내 사유세계에 자주 걸려 든다.

첫 번째 주제는 '성장의 방식은 각자 다르지만 노화의 방향은 하나'라는 것이다. 차별이 만연한 세상에 단 하나 공평한 게 있다면 모두가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노화, 늙어가는 것이 '꽃 피고 열매 열리면 낙엽 지는 거'라며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우리가 체감하는 늙음과 몸의 근육이 빠짐은 "쌓이는 시간의 점진적 변화가 아니라 방심한 사이 어느 순간 이뤄지는 종의 전환에 가깝"(김은형)기 때문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에 의하면, '나이 듦'은 실체적 현상이라가 보다 "타인의 시선을 내재화한 자기 감정"이라 했다. 외모, 건강 등 물리적 조건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환경 안에서 우리는 나이들기 때문이다. 언제나 마음은 청춘이라고 매일 아침 복식호흡으로 외쳐도 "나이는 자기 마음대로 들지 않는다." 그러니 남 눈치 볼 것 없다.  

"변화하는 외모는 우리의 노화 과정을 생중계한다."(김은형) 아침에 샤워를 할 때마다, 이젠 팔의 근육 힘이 단단하지 못함을 느끼고, 빠진 머리를 거울로 보며 놀라고 씁쓸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피할 도리가 없이 찍히는 사진 속"의 나에게서 '나이 듦'을 보고 놀란다. 실제로 작가 도리스 레싱은 "대놓고 떠들진 않지만, 노년층 대부분은 몸뚱이 안의 내가 젊은 시절 그대로라고 느낀다. 나는 그대로인데 몸뚱이만 변해가는 것이다. 이것은 엄청나게 혼란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썼다. 이처럼 지난한 혼란 속에서 "노화에 대한 자각은 늘 연착하는 비둘기호 기차처럼 노화의 속도보다 뒤처진다."(김은형)

그래서 나의 노화는 나 자신보다 외부가 더 빨리 알아차린다.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은』에서 솔 레브모아가 쓴 것처럼, "이상적인 세상이라면 주름살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지혜와 유머와 사교성의 증거로 받아들여"지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지 못하다. 어쨌든 인정해야 할 것은 나의 늙음은 내가 제일 늦게 알아본다는 점이다.

이젠 우리들에게 좀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자. 미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블랜치파워 교수가 제시한 인생의 행복 곡선은 47-48살을 최저점 삼아 반등한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선진국의 경우는 47.2살, 개발도상국은 48.2살이다. 이미 여러 연구자료들도 40대에서 50대까지 걸치는 일정 시기를 생애주기 별 'U'자형 행복 곡선의 바닥으로 지목했다. 개인의 경험에 따라 예외는 있고, 처한 상황에 따라 바닥의 높이는 다를 수 있겠지만 평균적으로는 부와 건강,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이 시기의 불행감이 가장 크다고 한다. 'U'자형 행복곡선의 양쪽 끝에는 어떤 연령이 있을까? 통상적으로 왼쪽 끝에는 20 언저리가 놓이고, 오른쪽 끝에는 60대 중반부터 70대 초반을 아우르는 10여년이 있다.

왜 60대 중반부터 70대 초반일까? 노인의학 전문의인 후이즈 앤더슨은 자신의 저서, 『나이듦에 관하여』에서 시인 메리 루플을 인용한다. "(늙었다고 남들이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투명 인간이 되는 순간 눈앞에는 무한한 자유의 세상이 펼쳐진다. 내게 이래라저래라 할 만한 인물들은 다 사라진 지 오래다. 부모님도 이미 돌아가셨다. 부모의 죽음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해방의 결정적 계기이기도 하다." "이제 더 이상 나를 주목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객관적 인식, 스타나 벼락 부자나 석학의 꿈을 버려야 할 시점이 왔다는 냉철한 감각이 불행의 구렁텅이에서 중년을 구원한다는 말이다."(김은형)

이런 마음으로 3일 간의 제주도 여행을 할 생각이다. 이제까지 나는 살면서 제 속을 채우느라 너무 애썼다. 그러나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고등어는 속 비고 나니 돌아와 제 아낙 안고, 평생 애 끓던 아낙도 속 덜어 내고서야 굽은 등 편히 맡긴다. 죽기 전에 속을 비울 수는 없을까? I'm nothing(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이라고 하면, 남을 속이고 나를 속일 일 없을 것이라 믿는 아침이다.

등 짝에 파도 문신 새기고 기세 등등하던 지아비, 동해 바다 가르던 지느러미도 한 뼘 좌판 위에선 어째 다소곳하구나. 살아서 제 속 채우느라 애쓰다, 속 비고 나니 돌아와 제 아낙 안는구나. 평생 애 끓던 아낙도 속 덜어 내고야 굽은 등 편히 맡기는구나. 평생 무리 속에 사느라 둘이 담쏙 안아 보기도 우세스럽긴 했으리라. 이제 둘이서 눈도 깜박 않고 바라보는 곳은 살아온 길인가, 접어든 길인가? 소금 한 줌 더 뿌려도 이제 쓰리지 않다. 푸르딩딩한 날들, 짭조름한 날들 고스란히 바다에 두고 왔다. 살아 있는 그대들, 쓰리거나 사랑하거나! 간고등어처럼, 나도 지난 날들을 제주 바다에 두고 올 생각이다.

간고등어/이언주

어물전 한 편에 짝지어 누운
한물간 고등어
속 다 덜어내고 상처에
굵은 소금 한 줌 뿌려
서로의 고통 끌어안고 있다

무슨 연으로 먼 바다를 떠돌다
한 생이 끝나도록 저렇게 누웠을까
지아비 품 크게 벌려
아낙의 푸르딩딩한 등짝 안고,
빈 가슴으로 파고든 아낙
짭조름하게 삭아 간다

남세스러운 줄도 모르고
대낮부터 포개고 누워있는 저
부부
눈도 깜박 않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위의 시에서 나는 비움을 배운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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