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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내가 사랑하는 계절/나태주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어디선가 서리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겠습니다."(나태주, <11월>) 나태주 시인은 우리 동네 어른이시다. 그리고 시인의 모습과 내 모습이 거의 비슷하여, 사람들은 나보고 "나 시인님" 하면서 인사하는 경우도 있다. 더 웃기는 것은 나태주 시인님과 함께 찍은 사진이 페이스 북에 오르면, 내 포스팅에 올라와 어제 함께 하신 사진이라고 뜬다. 11월이다. 시인은 11월을 "내가 사랑하는 계절"이라고 하신다. 그래 오늘 아침은 시부터 공유한다.  사진은 우리 동네 '유림공원'에서 찍은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계절/나태주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11월이다
더 여유 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
나무들이 깨금발을 딛고 선 등성이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황토 흙의 알몸을
좋아하는 것이다

황토 흙 속에는
시제時祭 지내러 갔다가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
콧노래 함께 돌아오는
아버지의 비틀걸음이 들어 있다

어린 형제들이랑
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가
가져오는 봉송封送 꾸러미를 기다리던
해 저물녘 한 때의 굴품한 시간들이
숨쉬고 있다

아니다 황토 흙 속에는
끼니 대신으로 어머니가
무쇠솥에 찌는 고구마의
구수한 내음새 아스므레
아지랑이가 스며 있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낙엽 져 나무 밑동까지 드러나 보이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오늘은 11월 첫날 만성절이지만 일요일이다. 매주 일요일처럼, 오늘도 일주일동안 만났던 짧지만 긴 여운의 글들을 공유한다. 인문운동가의 시선에 잡힌 인문정신을 고양시키는 글들이다. 그리고 이런 글들은 책을 한 권 읽은 것과 같다. 이런 글들은 나태하게 반복되는 깊은 잠에서 우리들을 깨어나도록 자극을 준다. 그리고 내 영혼에 물을 주며, 생각의 근육을 키워준다.

1. 11월이면 또 생각나는 시가 또 있다.
괜히 11월일까
마음 가난한 사람들끼리
따뜻한 눈빛 나누라고
언덕 오를 때 끌고 밀어주라고
서로 안아 심장 데우라고
같은 곳 바라보며 웃으라고
끝내 사랑하라고
당신과 나 똑같은 키로
11
나란히 세워 세워놓은 게지 (11월/이호준 (<티그리스강에는 샤가 산다?, 2018, 천년의 시작)

2. 지난 주에 유명을 달리한 고 이건희 회장 이야기를 한 번 더 한다. 그가 2104년에 했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담론이다. "지난 20년 동안 양에서 질로 대전환을 이뤘듯이 이제부터는 질을 넘어 제품과 서비스, 사업의 품격과 가치를 높여 나갑시다. 우리의 더 높은 목표와 이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갑시다." 지금 가치와 격(格)이 필요하다. 격이란 사람이 처한 환경 또는 처지에 어울리는 그것이다. '격'이란 말이 나오면, <대학>에 나오는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말을 이해 하여야 한다. "물건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사리를 통하여 그 먼저 할 것과 뒤에 할 것을 알면, 도(道, 머리를 밝혀가는 중에 만나는 그 길, 지혜)에 가까워진다." 중심과 부분, 근본과 말단, 일의 시작과 끝을 정확히 아는 것이 격물(格物)이고, 이러한 격물을 통하여, 먼저 할 것(先)과 뒤에 할 것(後)을 정확히 하는 것이 치지(致知)이다. 여기에 격자가 나온다. 품격, 쉽게 할 수 있는 일인데, 고민하여, 격물치지를 이루며 일을 할 때 '격'이 나온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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