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43.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6년 7월 11일)
1
어제는 모처럼 장마 비가 멈추고, 파란 하늘을 보였다. 그래 오후에 맨발 걷기를 했다. 얼마 전부터는 숲 길을 걷는다. 숲은 막 목욕을 끝낸 아이처럼 싱싱했다. 장미 비에 씻긴 초록이 눈부시다.
모든 것은 우주 전체의 조화로운 원리와 상호 관계에 따라 순리대로 되어갈 뿐이다. 우주에는 하나의 로고스가 있는데, 그게 조화롭다. 그런데 고지식하게 그 원리에 따라 우주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상호 관계가 있다. 거기서 관계론이 나온다. 그러니까 내가 어떤 '관계적' 태도로 하루를 사는가에 따라 일이 순리(順理)대로 가느냐 아니면 그 반대이다. 기분은 내가 선택할 수 없어도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태도(態度)는 곰(熊)의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헤아리는 마음이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그것을 마주한 인간의 역량을 측정하는 시험(試驗)이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은 가치 중립적이다. 그것들은 행운이고 동시에 불행이다. 그것들은 희망이며 절망이다. 그러나 내가 그 사건-사고에 대하는 태도에 따라, 그것이 행운이 되기도 하고 불행이 되기도 할 것이다. 오늘 시처럼, 장마로 불쾌지수가 높아도, "내 마음에 흐르는 냇물 하나"를 흐르게 하는 일이다.
장마/홍수희
내리는 저 비 쉽게 그칠 것 같지가 않습니다
고통 없이는 당신을 기억할 수 없는 것처럼
하지만 이제 나는 압니다
버틸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
가슴에 궂은 비 내리는 날은
함께 그 궂은 비에 젖어주는 일,
내 마음에 흐르는 냇물 하나 두었더니
궂은 비 그리로 흘러 바다로 갑니다
2
마키아벨리, 라고 하면 누구나 <<군주론>>을 떠올린다. 여러 도시국가들간 생존 경쟁이 치열했던 시대를 살아내려면 군주가 뱀과 같은 지혜를 지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간과 권력의 어두운 면을 '현실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러냈다. 그 때문에 마키아벨리는 오랫동안 비판 받았고, 그 비판 덕에 지금도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된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17세기 스페인 사람 발타자르 그라시안 또한 일종의 마키아벨리즘 설파자다. 예수회 신부이자 궁정 철학자이기도 했던 그는 치열한 암투가 이어지는 왕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법을 메모 형태로 썼고 이를 한데 묶어 책으로 냈다. 신부님 답지 않은 주제라는 이유로 책을 익명으로 냈으나 크게 화제를 모으면서 저자임이 드러나 고초를 겪기도 했다. 바르고 고운 이야기만 한 게 아니라 현실 세계 인간 관계를 다뤘다는 이유로 '유럽 최고의 지혜'라 격찬 받고 있는 책이다.
그라시안의 핵심 키워드는 프루던스(Prudence). 앞뒤좌우 전체적인 상황과 맥락을 읽고 적절하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판단력이나 사리분별 같은 걸 뜻하는 단어다. 그라시안은 이 능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글과 책을 남겼고, 그 명성에 어울리게 '속세의 지혜' '지혜의 기술' '세상을 읽는 지혜' 등 다양한 이름으로 그의 글이 번역 소개됐다. 우리말로 하면 신중(愼重)이다.
17세기 그라시안의 지혜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여전히 소구력(appeal power, 소송 청구에서 온 말로 태도나 어조 따위가 사람을 끄는 힘, 매력)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가 아닐까?
▪ 하나는 스스로를 보호하고 싶다는 욕망이다.
▪ 또 하나는 거리 둠이다.
▪ 마지막으론 단단한 자기 중심이다.
명예, 지위 등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곳이 궁정이다. 누군가는 음험하다 하겠지만, 누군가에겐 그게 현실이기도 하다. 그 경쟁 속에서 나를 잃고 싶지 않은 이들은 자기중심을 유지하면서 상대와 거리를 두는 방법을 고심할 수 밖에 없다. 그 방법을 일러주겠다는 게 그라시안의 포인트다.
17세기 궁정 생존법에 담긴 처세술을 요약하면 “약점을 보이지 마라, 그리고 침묵하라" 이다. 그가 들려주는 비밀을 열가지로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한국일보> 조태성 기자의 글을 갈무리한 것이다.
▪ 손잡이 없는 인간이 되라. 컵이나 칼에 달린 손잡이는 상대가 쥐고 흔들기 위함이다. 그러니 상대에게 흔들리지 않으려면 손잡이 없는 인간이 돼야 한다. 내 패를 함부로 까 보이지 말라. 약점을 보여주지 말라. 화나거나 기쁜 순간에도 신중한 침묵을 유지하라. 그 침묵의 깊이가 당신의 품격을 만든다.
▪ 좋은 태도를 유지하라.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화려한 보석, 업적, 실력 같은 게 아니다. 그보다는 좋은 태도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스스로 좋은 태도를 갖출 수 있어야 한다. 길바닥에 떨어진 돈을 줍지 않는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 가 아니라 그런 나 자신이 싫기 때문이다. 좋은 태도는 거기서 나온다.
▪ 능력을 과시하지 말라. 애써 노력해서 큰 공 들인 일일수록 그에 들인 수고를 철저히 감추라. 그래서 저절로 우러나온 숨결처럼 자연스럽게 이뤄낸 것처럼 보일 수 있도록 하라. 능력을 한꺼번에 드러내기 보다는 필요한 만큼만 써라.
▪ 침묵하고 또 침묵하라. 유창하게 말하기보다는 상대 말을 잘 들어야 한다. 남의 말을 이해 못하는 자는 자기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굳이 말해야 한다면 입이 아닌 행동으로 말하라.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내 뜻은 타인이 이야기할 몫이다. 내면이 견고한 사람만이 깊은 비밀을 간직할 수 있다.
▪ 실력을 쌓아가라. 하루하루 소처럼 묵묵하게 자신을 채워가라. 그 하루가 쌓여 일생이 된다. 스스로 안다 하는 순간 지혜의 샘은 말라간다. 진짜 지혜는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는 즐거움에서 온다. 자기 신념이란 감옥에 갇혀 타인을 심판하는 똑똑한 바보가 되지 말라.
▪ 평가에 연연하지 말라. 타인의 박수 혹은 비난에 일희일비하지 말라.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자기 자신 뿐이다. 밖에서 오는 행운을 기다리지 말고, 불행에 슬퍼하지 말고 자신 안에 있는 내면의 빛을 밝히는 게 우선이다. 스스로 깨어난 영혼은 그 어느 누구도 다시 잠재울 수 없는 법이다.
▪ 비극에 낙담하지 말라. 세상이 당신을 흔드는 것은 당신을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 안의 수평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거센 파도도 결국 평온한 수평선으로 돌아간다. 인생의 혼돈을 만났을 때 그것을 파멸의 징조로 보지 말고 영혼이 되돌아가야 할 이정표로 삼아라.
▪ 제 할 일을 하라. 비겁한 중상모략 속에서도 다시 의관을 정제하고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것, 비록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린 날일지라도 묵묵히 쟁기를 잡고 밭을 가는 그 정직함 속에 인간의 진짜 존엄이 깃들어 있다. 당신이 버텨낸 오늘의 하루는 그 자체로 불멸의 승리다.
▪ 상대를 용서하라. 용서 못하는 마음은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감옥에 가두는 일이다. 상대가 용서받을 자격이 있어서 가 아니라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용서하라. 증오는 자신이 독약을 마신 채 상대가 죽기를 바라는 어리석음과 같다.
▪ 명예로운 자들과 거래하라. 정신의 성숙함은 느린 믿음에서 온다. 쉽게 남의 말에 이끌려가지 말라. 판단을 유보하라. 오직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자들과 만 거래하라. 그들의 명예심이야 말로 최악의 상황에서도 당신을 배신하지 않을 유일한 보증수표다.
3
신중한 사람을 우리는 사려가 깊다고 말한다. 사려가 깊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감정과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려 깊은 사람은 항상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염두에 두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은 좋아하지 않는 지에 대해서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다. 또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을 한다. 그게 바로 칭찬과 격려, 이해와 배려이다.
사려 깊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감정과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존중 해줘야 하고,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도 내가 필요로 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 '역지사지'가 중요 하다는 것은 알지만, 우리는 이기적인 '역지사지' 즉, 내가 필요할 때만 '역지사지'를 한다. 사려 깊은 마음 씀씀이로 이기적이 '역지사지'가 아닌 이타적인 '역지사지'가 필요하다.
노자는 자연 속에서 발견되는 가장 단순한 현상들 속에서 우리의 삶의 원리를 읽어냈다. "아름드리 큰 나무도 작은 싹에서 나오고, 아홉 층 누대도 한 줌의 흙에서 쌀이며, 천 리의 먼 길도 한걸음에서 시작된다." <<도덕경>> 제64장에 나오는 말들이다.
"合抱之木(합포지목) 生於毫末(생어호말): 한 아름드리 나무도, 털끝 같은 작은 싹에서 나오고
九層之臺(구층지대) 起於累土(기어루토) : 구층 누각도 한 줌 흙이 쌓여 올라가고
千里之行(천리지행) 始於足下(시어족하):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
단순한 삶의 교훈을 넘어 세계의 생성의 원리를 설명하는 철학적 통찰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미한 시작이 시간을 흐르며 점차 커지고 깊어져 마침내 거대한 결과로 나타난다. 숲을 이루는 거목도 처음에는 땅 속에서 막 돋아난 작은 싹이었다. 웅장한 궁전도 처음에는 흙 한 줌을 쌓는 일에서 시작되었다. 인간의 인생 역시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위대한 업적이나 큰 성공을 이야기할 때 그 결과만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 결과 뒤에는 수없이 반복된 작은 선택과 작은 행동들이 축적된 시간이 존재한다.
오늘 아침도 작은 선택의 지속적인 반복을 위해 일상을 배치하였다. 노자가 말한 "한 걸음"은 단순한 물리적 걸음이 아니다. 그것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첫 번째 의지와 행동을 뜻한다. 그래 제64장 다음 구절이 중요하다. "爲者敗之(위자패지) 執者失之(집자실지): 억지로 하면 실패하고, 집착하면 잃는다. 愼終如始(신종여시) 則無敗事(즉무패사): 시작할 때처럼 끝까지 신중하면, 실패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실패하는 이유는 '억지로 하면 일을 망치고, 집착하면 그것을 읽는다'는 거다. 억지로, 일부러 하는 일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자연에서 배워야 한다. 강물은 바위를 밀어내기 위해 힘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흐르다 보면 단단한 바위조차 서서히 깎이어 길이 된다. 나무 역사 억지로 자라지 않는다. 그저 계절의 흐름을 따라 조금씩 자라나 어는 순간 숲을 이룬다.
노자가 보기에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억지로 밀어붙일수록 균형은 깨지고, 지나친 집착은 오히려 소중한 것을 읽게 만든다. 이를 난는 노자의 "무위(無爲)의 정신"이라 부른다. 노자 사상의 핵심이 아닐까? 무위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삶의 태도이다. 인생에서 가장 깊은 성취는 종종 힘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난 지난 해 장자가 말한 "승물유심(乘物遊心)"을 마음에 새기며 살았다. 이 말은 '일과 사물에서 멀어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타고 넘어 자유로운 마음에 노니는 삶'을 뜻한다. '실패든 성공이든 인정하고 그것을 즐기라'는 거다. 더 멋진 해석은 '흐르는 물처럼 상황을 타고 노닐어라'는 거다. 원문은 이렇다. "乘物以遊心(승물이유심) 託不得已以養中至矣(탁부득이이양중지의) 何作爲報也(하작위보야) 莫若爲致命(막약위치명)" '마음이 사물의 흐름을 타고 자유롭게 노닐(遊心)도록 하십시오. 부득이한 일은 그대로 맡겨 두고(託不得已), 중심을 기는 데(養中) 전념하십시오. 무엇을 더 꾸며서 보고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저 그대로 명을 받는 것"만 하면 된다는 거다. '노니는 마음으로 세상사(世上事)의 파도를 타라'는 말이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것에 자신의 마음을 맡기며 자신이 걷는 길을 풍요롭게 가꾸라'는 말이다.
4
다산 정약용은 열 여덟 해 유배 기간 중 강진읍 동문 밖 주막에서 네 해를 머물며 그곳을 ‘사의재(四宜齋)’라 이름 지었다. 생각(思), 용모(容), 말(言), 행동(行)이 어떠해야 하는지 늘 되새기며 자신을 다스리고자 한 것이다. 생각은 깊고 치밀해야 하고, 용모는 단정하고 경건해야 하며, 말은 부드럽고 겸손하되 경솔하거나 거칠어서는 안 된다. 행동은 신중하고 절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억울한 유배 상황에서도 마음을 다스리며 학문에 전념한 다산의 의지가 드러난다. 용모, 말, 행동은 모두 밖으로 표현되는 생각이다. 다산은 언행의 정밀함 속에서 품위를 지키고자 했다. 살아가며 가장 힘든 일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다. 붓다가 ‘좋아하는 사람과만 함께할 수 없고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도 마주하고 대화해야 하는 것이 괴로움’이라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일상에서 감정이 상하고 관계가 어그러지는 주된 원인 또한 얼굴 표정과 언행에 있다.
다음 글은 어제 이준 신부님의 글에서 읽은 거다. 같은 맥락이라 공유한다. 주님은 신앙의 길이 결코 평탄한 꽃 길이 아님을 분명히 하셨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이기심과 시기, 물질주의 등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이리 떼 같은 가치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말씀대로 순수하게 살아가려는 신앙인은 때로 바보 취급을 당하거나 손해를 보고, 심지어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조차 오해와 미움을 받기도 한다. 이 험한 세상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주님이 제시하신 처방전은,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마태 10,16) 이다.
▪ 뱀 같은 슬기로움은 악한 세상의 유혹과 음모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다. 무조건 착하기만 해서 세상의 꾐에 쉽게 넘어가는 어리석음을 경계하고, 무엇이 하느님의 뜻이며 무엇이 악의 유혹인지 명확히 분별하는 지혜를 뜻한다.
▪ 비둘기 같은 순박함은 세상의 수단에 물들지 않는 마음의 순수함이다. 세상을 분별하되 나 또한 세상처럼 똑같이 영악해지 거나 남을 속이지 않고, 오직 하느님만을 신뢰하는 깨끗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슬기로움만 추구하다가 영악한 존재가 되어서도 안 되며, 순박함만 고집하다가 대책 없이 당하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서도 안 된다.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세상 한가운데 서도 복음의 향기를 풍길 수 있다는 거다.
5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로 말씀은 <마태오 10,24-33>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선포하여라" 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당신처럼>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마태 10,25)
당신처럼
믿게 하소서
당신처럼
바라게 하소서
당신처럼
사랑하게 하소서
당신처럼
기뻐하게 하소서
당신처럼
걷게 하소서
당신처럼
멈추게 하소서
당신처럼
어울리게 하소서
당신처럼
섬기게 하소서
당신처럼
살리게 하소서
당신처럼
살게 하소서
당신처럼
죽게 하소서
당신처럼
영원하게 하소서
6
하느님께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2026/7/11/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마태오 복음 10장 24-33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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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을 용기
광주대교구의 나주 성당은 ‘나주 순교자 기념 성당’이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그곳에서 돌아가신 네 분의 순교자를 기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춘화 베드로 순교자는 기해박해 중 순교하셨고, 하느님의 종 유치성 안드레아, 유문보 바오로, 강영원 바오로 이렇게 세 분은 병인박해의 마지막 시기인 1872년 나주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분들의 순교록을 보고 공부하면 할수록, 현실에 잘 적응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잔머리를 굴리고 사는 요즘의 제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그분들의 삶을 그 입을 빌려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만 번을 죽어도 하느님을 믿겠습니다.” 단순하지만 웅장한 고백입니다. 오롯이 하늘로 향했을 순교자들의 시선. 그들의 마음 안에는 오늘 복음 말씀이 계속해서 샘솟지 않았을까요?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나를 귀하게 여기신 분! 그러니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 놓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8,35) 최용감 안젤로 신부(광주대교구)/생활성서 2026년 7월호 '소금항아리'에서⠀
7
2026년 7월 11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오늘은 유럽의 수호성이자 서방 수도 생활의 아버지이신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입니다. 성인의 유명한 모토인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는 오늘날 분주함과 불안 속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신앙의 중심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명확히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거센 반대와 박해 앞에 서 있는 제자들을 향해 거듭해서 강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첫 번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마태 10,26-27).
세상은 때로 진실을 왜곡하고, 선하게 살려는 이들을 모함하며, 복음의 가치를 어둠 속에 가두려 합니다. 박해자들의 힘이 너무나 거대해 보여 신앙인들은 때때로 위축되고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주님은 선포하십니다. 악의 승리는 일시적일 뿐이며, 하느님의 공정과 진리는 반드시 온 세상 밝은 빛 아래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장 눈앞의 불이익이 두려워 진리와 타협하거나 숨기지 말고, 주님의 말씀을 당당하게 삶으로 외치라고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이어 예수님은 우리가 품어야 할 두려움의 대상을 바로잡아 주십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 10,28).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세상이 나의 재물이나 건강, 평판, 심지어 목숨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권력은 고작 우리의 ‘육신’에만 손을 댈 수 있을 뿐, 우리 영혼의 영원한 생명은 결코 건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경계해야 할 것(거룩한 경외심)은 세상의 눈치를 보느라 하느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리고 영혼이 메말라가는 일입니다.
주님은 참새 두 마리가 단돈 한 닢에 팔리는 사소한 일도 하느님의 허락 없이는 일어나지 않으며, 심지어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참새 무리와는 비교할 수 없이 귀한 존재입니다. 하느님이 나를 이토록 속속들이 알고 아끼신다는 확신이 있을 때, 세상을 향한 두려움은 안개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베네딕토 성인은 로마 제국이 무너지고 세상이 혼란과 두려움으로 가득 찼던 시대를 살았습니다. 성인은 세상의 소란스러움에서 물러나 하느님을 향한 ‘고요한 기도’와 정직한 ‘노동’으로 일상을 채웠습니다. 세상이 흔들려도 하느님이라는 반석 위에 자신의 일상을 굳건히 세운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는”(마태 10,32) 삶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거창한 순교가 아니더라도, 매일의 삶 속에서 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첫자리에 모시고, 내게 맡겨진 일터와 가정에서 성실하게 땀 흘리는 것 자체가 세상 앞에서 하느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숭고한 고백입니다.
세상의 이리들이 아무리 으르렁거려도 우리는 하느님의 손안에 있는 소중한 자녀들입니다. 베네딕토 성인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찾아냈듯이, 우리도 두려움의 소리에 귀를 닫고 우리를 아끼시는 주님의 다정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시다. 오늘 하루,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주님 발앞에 내려놓읍시다. 내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정성껏 기도하고 충실하게 일하며, 주님의 자비를 세상에 전하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저희를 보호하시는 주님, 세상의 변화와 인간관계의 갈등 속에서 저희 마음이 쉽게 두려워지고 흔들렸음을 고백하나이다. 참새 한 마리도 돌보시고 저희 머리카락까지 세어두신 그 섬세한 사랑을 온전히 신뢰하게 하소서. 오늘 성 베네딕토의 모범을 따라, 저희가 삶의 자리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성실히 일하며, 말과 행동으로 당신을 당당히 증언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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