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삶에 '소금'을 치다. (1-13)

'자발적 불편함(Friction-Maxxing)'이라는 좋은 표현을 알게 되었다. 며칠 전부터 <<편안함의 습격>>을 읽으며, '자발적 가난'은 생각했는데, '자발적 불편함'이라는 표현을 몰랐었다.
자발적 불편함(Friction-Maxxing)은 일부러 불편함이나 마찰(friction)을 늘리는 선택을 통해 더 나은 집중, 판단, 성장을 얻으려는 태도나 전략을 말한다. 보통 우리는 시간을 아끼고 노력을 줄이기 위해 마찰을 최소화하려고 한다. 자동화, 추천 알고리즘, 원 클릭 결제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자발적 불편함은 이와 반대로, 너무 편해져서 생각 없이 흘러가게 되는 상황에 의도적인 불편함을 추가하는 거다. 그 불편함이 멈추어 생각하게 만들고, 선택을 자각하게 만든다고 보기 때문이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고생을 미화하는 개념이 아니다. 목적 없는 고통이 아니라, 통제 권을 되찾기 위한 불편함이다. 예를 들어 자동 재생을 끄거나, 손 글씨로 메모를 하거나, 가까운 거리는 일부러 걷는 것처럼 작고 관리 가능한 마찰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이 개념은 생산성, 자기 관리, 디지털 웰빙 같은 맥락에서 자주 쓰인다. 특히 즉각적인 보상과 과잉 편의가 집중력과 판단력을 약화 시킨다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다. 자발적 불편함은 느려지자는 주장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편리함을 의식적인 선택으로 바꾸자는 제안에 가깝다.
불편함에는 생각할 시간이 따라온다. 예를 들어, 메모 앱 대신 종이에 직접 적어보는 일, 자동 추천 대신 서점에서 한참을 서성이는 일 같은 것들이다. 손이 더 가고 시간이 더 걸리지만, 그 과정에서 머리가 움직인다. 무엇을 왜 선택하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이 질문이 쌓이면 삶의 밀도가 달라지고 삶의 깊이가 깊어진다. 산다는 것은 수명을 연장하는 길이보다 밀도가 높은 삶의 깊이를 더 추구하자는 거다.
이 개념은 고행이나 자기 학대와는 다르다. 일부러 괴로운 상황에 자신을 던지자는 말이 아니다. 핵심은 통제 권이다. 너무 매끄러워서 생각 없이 흘러가던 부분에, 내가 개입할 여지를 만드는 거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택하는 것처럼 작고 현실적인 선택이면 충분하다.
자발적 불편함이 주는 가장 큰 변화는 감각의 회복이다. 편리함에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지루함과 불편함에 과민해진다. 조금만 느려도 답답해 하고, 즉각적인 보상이 없으면 금방 포기한다. 불편함을 받아들이면 이 기준이 서서히 바뀐다. 기다림과 반복이 다시 견딜 만한 것이 된다.
일상에 적용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자동 로그인을 끄고 비밀번호를 직접 입력본다. 출근길에 이어폰 없이 걸어보는 것도 좋다. 처음엔 불편하지만, 그 틈에 생각이 떠오르고 주변이 보인다. 이 작은 마찰들이 하루를 조금 더 내 것으로 만들 것이다.
한 줄로 정리하면, 바발적 불편함은 삶을 더 어렵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깨어 있게 살기 위해 불편함을 선택하는 태도이다.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정치인보다 유권자가 깨어나야 할 차례이다. (1) | 2026.01.14 |
|---|---|
| 사는 것이 고통스러울 때는 나만 힘든 게 아니다. (0) | 2026.01.14 |
| 성사적 인간 (1) | 2026.01.13 |
| 가장 중요한 것은 비어 있다. (1) | 2026.01.13 |
| 교육에 관한 생각들 (1) | 2026.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