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운동가의 인문 산책

물고기가 나를 깨운다.

8년 전 오늘 글이에요.

'참나'를 찾는 여행

물고기가 나를 깨운다.

삶을 마치 소유물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소멸을 두려워 한다.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늙음이나 죽음을 무서워 할 필요가 없다. 그것들은 단지 '있음'의 인연이 다했을 뿐이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늙음이 아니라 녹스는 삶이며, 인간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어야 한다." (법정 잠언집)

내가 좋아하는 이성복 시인의 시 두 편을 읽는다.

소멸에 대하여 1/ 이성복

거실 화장실 수건은 늘 아내가 갈아 두는데
그 중에는 근래 직장에서 받은 입생 로랑이나
랑세티 같은 외국물 먹은 것들도 있지만,
1983년 상주녹동서원 중수 기념수건이나
(그때 아버지는 도포에 유건 쓰고 가셨을 거다)
1987년 강서구 청소년위원회 기념수건도 있다
(당시 장인어른은 강서구청 총무국장이셨다)
근래 받은 수건들이야 올이 도톰하고 기품 있는
때깔도 여전하지만, 씨실과 날실만 남은 예전
수건들은 오래 빨아 입은 내의처럼 속이 비친다
하지만 수건! 그거 정말 무시 못할 것이더라
1999년, 당뇨에 고혈압 앓던 우리 장인 일 년을
못 끌고 돌아가시고, 2005년 우리 아버지도
골절상 입고 삭아 가시다가 입안이 피투성이
되어 돌아가셨어도, 그분들이 받아온 옛날
수건은 앞으로도 몇 년이나 세면대 거울 옆에
내걸릴 것이고, 언젠가 우리 세상 떠난 다음날
냄새 나는 이부자리와 속옷가지랑 둘둘
말아 쓰레기장 헌옷함에 뭉쳐 넣을 것이니,
수건! 그거 맨정신으로는 무시 못할 것이더라
어느 날 아침 변기에 앉아 바라보면, 억지로
찢어발기거나 태워 버리지 않으면 사라지지도 않을
낡은 수건 하나가 제 태어난 날을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제나 저제나 우리 숨 끊어질
날을 지켜보기 위해 저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멸에 대하여2 /이성복

결혼한 지 한참 뒤에도, 아니 오십 넘어서도
비누를 쓰다가 얇아지면 버릴 수도 없어.
부서진 것들 뭉쳐 비누질 하다가, 그것들
바스러져 세면대 배수구가 막히기도 하고,
그러면 손가락 쑤셔 넣고 파내기도 했지만, 이제
닳아빠진 비누를 새 비누에 붙여 쓰게 되었다
지금가지 나의 발명 중에 그보다 신기한 것은
없었으리라 알뜰하기야 그보다도 더한 살림살이도
없지 않았겠지만, 비누가 맛본 소멸보다 더한
소멸은 없었으니, 무여열반도 이보다
완전하지 못했으리라 또한 지금까지 내 삶에서
그보다 완전한 수행은 없었으니, 아무 원한도.
회환도 없이 있지도 않은 무를 없애지도
않았던 것이다 하기야 지독하게 장난스럽기로는
천지보다 설마 내가 더했겠는가
환갑을 코앞에 둔 내가 작은 비누조각처럼
내 아들의 등빨위에서 나날이 사라져간다 한들
암두꺼비 등을 타고 할딱거리며 교미하는
멍청한 수놈과 무엇이 얼마만큼 다를까

무여열반無餘涅槃: 온갖 번뇌를 다 없애고 분별하는 슬기를 떠나 육신까지도 없애어 완전히 정적으로 들어간 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