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다음 주 화요일에는 김연수 소설가가 대전에 온다. 우리는 <프로젝트 60>이라는 이름으로 10년간 60명의 거장을 만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화요일 저녁마다 있는 강의가 연기되어, 나도 참석하게 되었다. 그래 오늘 아침은 김연수 소설가가 말하는 이야기의 공식을 공유 하겠다.
이야기의 공식= 보고 느끼는 '나'라는 캐릭터+나에게 없는 것(=욕망)/ 내 주변의 모든 방해물
모든 사람은 욕망이 있고, 우주의 법칙에 따라 그 욕망은 갖은 방해물로 인해 쉽게 충족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의 이야기가 생기는 것이다. (1) 욕망이 없다면, 이야기도 안 나온다. 그래서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갖고 싶다면 우선 욕망해야 한다. (2) 방해물이 없어도 이야기는 안 나온다. 그래서 이야기는 방해물이 크면 클수록 더 흥미로워 진다. (3) 이야기는 각자의 결핍에서 시작된다. 결핍의 양이 크면 클수록 나만의 이야기가 더 잘 나온다.
그러니까 사는 고생의 시작은 보는 것, 즉 감각에서 비롯한다. 김연수 소설가는 그걸 견물생심(見物生心)라고 했다. 그러나 불교는 우리에게 말한다. 내가 감각하는 이 현실이 텅 비어 있다는 걸 안다면 번뇌, 즉 고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녀를 보면서 해골이 된 그녀를 상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런 상황을 다르게 본다. 예술가나 인문운동가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귀를 열고, 눈을 뜨고, 입을 벌려서 감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결핍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그걸 욕망한다. 그래야 이야기가 시작되고, 삶이 동사적이 된다. 예컨대, 고속버스에서 평상시처럼 졸지 않고, 옆의 미인에게 자기 마음을 표현하면 그 때부터 고생이 시작된다. 작가가 미녀의 해골을 상상한다면, 끝이다. 그런 사람의 삶은 건조하다. 사는 고생이란 보고, 듣고 느낄 줄 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불우해진 중생이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간절히 원하건만 세상의 갖은 방해로 그걸 얻지 못하는 과정이다.
다시 이야기가 생성되는 공식을 말해본다. 욕망+결핍/방해=이야기(삶), 즉 자기에게 없는 것을 얻기 위해 투쟁할 때마다 이야기는 발생한다. 그러니까 욕망이 없다면, 이야기도 없다. 결핍이 없어도 마찬가지이다. 방해가 없어도 마찬가지이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우리들의 "식사법"은 욕망이 클수록, 결핍이 많을수록, 방해물이 많을수록 더 풍요로워 진다. 꿈꾸고, 욕망하지 않으면 고생은 없다. 그러나 더 많이 원하고, 더 큰 방해물을 만나면 고생 이야기는 더 커진다. 이런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최상의 자신이 되기 위해서 원하고, 또 원하는 세계를 꿈꾼다. 가지지 못한 것들이 우리를 밀고 가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자신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할수록 더 삶의 이야기는 흥미로워진다.
김형석 교수님의 이야기를 첨삭한다.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행복은 만들어 가는 것이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 있는 고생'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다. "마지막 나에게 남은 것은 나를 위해서 한 것은 하나도 남지 않는다. 남과 더불어 사는 것이 남는다. 친구를 만나고, 애인을 만나고, 결혼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그가 말하는 '사랑이 있는 고생'을 한 사람으로 마틴 루터 킹, 도산 안창호, 마하트마 간디가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위해 고생의 짐을 대신 진 사람이다.
세상의 지혜란 마음의 평온을 찾게 하고, 삶의 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 그리고 하나 더 붙이면, 피할 수 있는 고생을 미연에 방지하게 한다. 고생과 고통은 다른다., 고생(苦生)은 어렵고 고된 일을 겪는 생활이고, 고통(苦痛, pain)은 몸이나 마음의 아픈 상태이다. 괴로움(suffering)도 고통의 한 종류이지만 그 고통의 상태에서 나온다.
우리는 종종 ‘고통과 시련이 내게는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고 또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고통과 시련이 없어질 때, 내 삶의 의미도 없어질 수 있다. 그러한 자극을 통해 우리들은 한걸음 더 앞으로 성장할 수 있으며, 분명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고통은 기쁨의 앞부분일 뿐이다. 현재의 고통은 곧 희망일수 있고, 미래의 행복일 수 있다. 고통(pain)과 괴로움(suffering)은 다르다. 고통은 어떤 경험이다. 주로 다양한 감각들로 구성된다. 반면 괴로움은 어떤 경험들, 특히 고통에 의해 촉발되는 정신적 반작용이다. 괴로움의 본질은 실체의 거부이다. 다시 말하면 실체의 부정이 모든 괴로움의 뿌리이다, 예컨대, 고통을 경험 할 때는 그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라고, 쾌락을 경험할 때는 그 쾌락이 강해지고 지속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렇게 되진 않는다는 데서 괴로움이 시작된다. 괴로워 하지 않으려면, 실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훈련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나는 "한 모금 식후 물처럼 또 한 번의, 삶을/잘 넘길 것"이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사진처럼, 떠나지 못한 화살나무의 화살촉이 마지막 '발악'을 한다. 색으로. 갈 땐 가야 한다.
식사법/김경미
콩나물처럼 끝까지 익힌 마음일 것
쌀알빛 고요 한 톨도 흘리지 말 것
인내 속 아무 설탕의 경지 없어도 끝까지 묵묵히 다 먹을 것
고통, 식빵처럼 가장자리 떼어버리지 말 것
성실의 딱 한 가지 반찬만일 것
새삼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제 명에나 못 죽는 건 아닌지
두려움과 후회의 돌들이 우두둑 깨물리곤 해도
그깟 것 마저 다 낭비해 버리고픈 멸치 똥 같은 날들이어도
야채의 유순한 눈빛을 보다 많이 섭취할 것
생의 규칙적인 좌절에도 생선처럼 미끈하게 빠져나와
한 벌의 수저처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할 것
한 모금 식후 물처럼 또 한 번의, 삶을
잘 넘길 것
#인문운동가_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_시하나 #김경미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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