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3일간의 제주여행 중 하루만 날씨가 좋았다. 좋아도 너무 좋았다. 파란 하늘 그리고 바다. 하루는 비가 왔고, 또 하루는 흐렸다. 다 나름대로 운치 있는 가을 여행이었다.
여행은 일상(日常)이 이나라, 일탈(逸脫)이다. 그런데 너무 많이 벗어났나 보다. 아침에 글이 써지지 않는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 와, 내 시간을 지배해야 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회복(回復)하는 힘이다. 우리는 흔히 견고함을 중시하도록 배워왔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주변 환경은 우리에게 회복력을 요구한다. 복잡한 현실에서 흔히 우리는 이기려 들면 지는 경우가 많다. 그냥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에만 그저 일들은 벌어지고, 우리는 그에 대한 반응을 선택할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에만 우리는 성숙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회복력이다. 회복력이란 다음에 무엇이 올지 내가 예견할 수 없음을 예견하고 상황인식을 높이는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는 또 다른 종류의 ‘용기'이다. 승리나 권력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세상에서 멋지게 살아갈 방법을 염두에 두고 전략을 짜야 할 사람에게는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때 회복력이 나온다.
벌써 10월 첫날이다. 다시 올라온다는 태풍만 지나면, 멋진 가을 하늘이 우릴 기다릴 것이다. 오늘 공유하는 시는 제주도의 주상절리대의 정원이다. 나는 제주도 하면 바로 떠오르는 사람이 소설가 현기영이다. 최근에 그의 산문집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를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에는 소설가 현기영의 제주에 대한 사랑 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에 대한 외경(畏敬)이 담겨져 있다.
그는 제주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원래 지구는 들끓는 불덩어리였는데, 지구 내부에서 빠져나온 기체들이 대기와 구름이 되고 마침내 큰비가 만들어져 바다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식어가는 마그마 위에 형성된 바다는 처음에는 뜨겁다가 차츰 따뜻한 물로 변해 거기에서 생명 탄생의 화학 반응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불이 물로 변한 것이데, 불과 물의 싸움에서 불이 패배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물은 단지 지구 표면만 식혔을 뿐, 땅 속에서 아직도 섭씨 2천 도의 마그마가 펄펄 끓고 있다는 것이다."
제주는 불과 물의 투쟁으로 이루어진 섬이다. 투쟁은 생명의 본질이다. 물과 불, 누가 이겼나? 무승부이다. 바다가 용암의 홍수를 삼키고 냉각시켜 현무암으로 만들어버렸으니, 결국 불이 패배한 것인가? 아니다. 불은 바다 한 가운데서 용솟음쳐 올라 새로운 땅, 큰 섬 하나를 만들어 놓지 않았는가? 무승부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는 술이다. 술을 마시면, 물이 이긴 것인가? 불이 이긴 것인가? 술은 물과 불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수불, 수불'하다 '술'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 술은 '불을 품은 물', '해를 품은 달'이다. 이젠 내 몸 속의 '불'을, '해'를 식혀야 할 때이다. 새로운 땅을 만들 시간이다.
가을 하늘/목필균
누구의 시린 눈물이 넘쳐
저리도 시퍼렇게 물들였을까
끝없이 펼쳐진 바다엔
작은 섬 하나 떠 있지 않고
제 몸 부서뜨리며 울어대는 파도도 없다
바람도 잔물결 하나 만들어 내지 못하고
플라타너스 나무 가지 끝에 머물며
제 몸만 흔들고 있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_시하나 #목필균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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