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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헬레나 보르베리 호지와 탈성장

1731. 인문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8월 26일)

 

오늘은 <<오래된 미래>>를 통해 유리에게 잘 알려진 헬레나 보르베리 호지의 이야기를 공유한다. '오래된 미래', 형용모순 단어이다. 형용모순은 영어로 ocymoron(옥시모론)이다. 이를 우리는 모순어법이라 한다. '날카로운 무딤', '똑똑한 멍청함', '선한 사마리아인', '귀를 먹먹하게 하는 침묵' 등이 그 예이다. 서로 상반되는 두 단어가 합쳐져 논리적이지 않은 뜻을 가질 때 '옥시모론'이라 하고, 단어를 넘어 문장 자체로는 모순이지만 진실일 수 있을 때는 '패러독스(paradox)'라고 한다. 패러독스는 '겉보기에는 상호 모순이나, 그렇다고 비논리적이거나 완전히 허구인 것은 아닌 문장'을 뜻한다.


자연은 형용모순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파도는 '끝없는 무관심'이고, 원자 핵을 돌고 있는 전자는 '낭비적인 열정'이고, 인생은 '모호한 명확성'이고, 구름은 '덧없는 풍부함'으로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대자연의 무모한 열정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덧없는 풍성함과 끝없는 무관심 같은 마음으로 명확한 삶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채, 찍고 까부는 존재인지 모른다

'오래된 미래'는 '과거야 말로 우리가 가야할 미래'라는 말이다. '오래된 그 무엇이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거다. 헬레나 보르베리 호지(스웨덴, 언어학자이자 생태주의자)의 책이다. <<오래된 미래>>(양희승역, 2007, 중앙북스) 영어 원문은 Ancient Futurees From Lafakh이다. 험준한 히말라야의 오지인 라다크를 30년 동안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같이 부대끼며 생활한 후 쓴 책이다. 그녀는 1975년부터 '작은 티베트;라고 부르는 라다크 사람들과 함께 자국의 문화와 생태의 가치를 굳건히 지키면서도 현대의 세계를 만날 수 있는 해법을 실현해 왔다. <<오래된 미래>>는 1991년에 나왔다. 그 책을 통해, 그녀는 자연과 멀어진 인간의 삶이 초래한 현실을 기록하고 미래를 경고했다.

헬레나 보르베리 호지는 이번 인터뷰("안희경의 내일의 세계"(한겨레, 2021년 8월 12일)에서 도시화와 결합된 세계화 무역과 대량생산 소비질서를 경고하면서 "이제는 사람들이 우리 시대를 잠식하는 성장 서사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인터뷰에서, 그녀는 기후 문제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 정부가 대량 소비, 대규모 도시화, 더 많은 에너지 사용을 장려하는 정책을 왜 하는지 파악하여야 한다.
- 신제품이 곧 구식이 되어 버리도록 기획하는 생산 판매 전략을 왜 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 한 제품을 이리저리 이동시키며 제작하는 공정 방식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잘 몰랐던 사실인데, 영국이 버터를 수출하는 양과 수입하는 양이 비슷하다고 한다. 이윤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 한다. 그리고 폴크스바겐 자동차가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오가며 조립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식민지 농민들은 지역 사회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농작물을 더 이상 재배하지 못한다. 무역업자들을 위한 농사를 지어야 한다. 그러니까 경제가 무역을 늘려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도록 해야 한다 생각에 빨려 들어간 것이다. 비교 우위를 갖는 물품에 집중해야 하다는 거다. 예를 들어 스코틀랜드에서 귀리가 잘 되니까 오로지 귀리를 길러 수출하자. 그렇게 번 돈으로 나머지 필수품을 싸게 수입해서 모두를 이롭게 하자는 논리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말들이 나온다. 에티오피아 농부들은 커피만 먹고 살 수 없고, 케냐 농부들은 장미를 먹고 살 수 없다고 한탄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자기 동네에서 길러진 다양한 농산물을 안전하고 먹고 누릴 기회를 잃고 있다. 세계화된 농산물 시장이 돈이 되는 단일 작물 재배를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지구적 규모의 식량 규모가 오염원이에요. 단일재배는 생명 순리를 거스릅니다. 자연스럽지 않으니까 사람이 비료, 살충제, 제초제를 공급해야 하죠. 토양에 있는 온갖 벌레까지 다 죽기 때문에 땅속 생명만이 죽어갑니다."  지금 필요한 것이 로컬 푸드 운동이다. 단일 재배가 아니라, 다양하게 농사짓는 농장에서 수확되는 작물들이 가까운 시장으로 나가게 하는 거다. 그렇게 되면 지역 사람들이 눈으로 확인될 수 있는 운송 사슬을 가는 거다. 그러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된 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생산자와 유통자가 더 큰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게 관계를 중시하는 로컬 푸드 운동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녀의 말처럼, 생수, 쇠고기, 오렌지가 지구를 가로질러 오고 간다. 쌀, 콩, 밀, 옥수수가 지구를 가로지르며 가공된다. 문제는 우리가 수입하고 수출하는 물류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거다. 

우리 나라를 포함해, 많은 나라들이 그린 뉴딜을 이야기 하지만, 에너지를 적게 쓰자 거나 자원을 적게 쓰자는 말을 하지 않는 그린 뉴딜이다. 실제로 우리도 에너지를 이까지는 말보다는 더 많은 재생 에너지를 사용하자고 단순하게 말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도시화에 박차를 가하고 대규모 농장에 재생 에너지를 끌어와 규모를 키우고 로봇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만 논의한다. 이는 여전히 규모 확대, 속도 경쟁의 길을 가는 거다.  예를 들어 사람을 로봇으로 대체하면 실업과 더 많은 자원 소비, 더 많은 에너지 소비를 창조하는 거다. 그동안 글로벌 기업과 금융이 부유해지는 가운데, 국민과 정부는 가난해졌다. 더 이상 글로벌 은행과 기업의 지시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더더욱 부자가 되도록 돕지 말아야 한다. 그녀가 말하는 그린뉴딜은 지역화, 분산화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젠 오늘 시 한 편을 공유한 후, 그녀의 주장을 이어간다. 오늘 공유하는 것들은 내일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당장 프레임을 바꾸어야 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주도하는 파괴적인 방식으로 운영하는 질서를 빠져 나와야 한다. 우리는 글로벌 무역이 매일 얼마나 팽창되는지,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유해지는지 알지 못한다. 정부들도 글로벌 은행들과 기업에 권한을 넘기면서 점점 허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일 이야기/ 김근이


내일 이야기는
어제 내가 만들어 놓은
이야기
내일에서
어제로 돌아가는 이야기

내일 이야기는
내일로 다가가면
아직도 내일 속에 머물고
어제에서는
언제나 내일에 남아있는
이야기

내일은 언제나
그 자리에 남아 있는데
나는
내일도
내일을 기다린다.


그녀는 경제를 발전시키는 방향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작동 원리로 세금, 보조금, 규제를 들었다. 산업화 속에서 대다수의 정부가 지역 인프라를 무시하고 심지어 파괴하면서까지 글로벌 인프라에 자금을 지원해왔다. 예를 들어 도로를 보면, 지역 도로 대부분은 빠듯한 지역 예산으로 관리되고, 수출입 세계 경제의 한 축인 대형 트럭이 다니는 고속도로는 더 많은 예산으로 신속하게 관리된다.  그리고 글로벌 규제는 완화하고 지역 규제는 과도하게 강화하고 있다.  세계화 산업을 이루는 망 속에 있는 시설이나 생산에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지역과 국내 산업에는 세금으로 압박한다. 지역 규제를 풀면,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지역 경제 망 속에서 자리를 찾아가고 눈으로 확인하는 관계 속에서 먹거리 안전도 단단해 질 수 있다. 우리가 탈 중앙 화한다면 관료주의는 덜하고 민주주의 더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여야 한다. (1) 우리의 미래를 위해 지금 소중하게 여기는 우선 순위는 무엇인가? (2) 우리의 아이들에게 행복하고 뜻있는 미래를 갖도록 하기 위해 지금 어떤 사회의 모습을 보고 싶은가? 우리는 더 큰 그림을 보기 위해 뒤로 물러나 전체적으로 본다면, 딜레마에 빠져 있는 듯 보이는 문제들의 실마리를 볼 수 있을 거다.

흑이냐 백이냐 하는 질문, 한 단어로 단순화하는 상황 정리가 현실을 왜곡하고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로 흐르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세상에는 오로지 좋거나 오로지 나쁜 것은 없고, 세상의 모든 것은 역할이 있고, 서로 의존하며 산호 존재한다고 말하며, 우리가 더 큰 생명 가족의 일원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보다는 왕인 것처럼 맹목적으로 행동하며 점점 더 많은 에너지, 더 많은 자원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젠 "잠시 멈추고 잠시만 기다리자. 5G를 서두르지 말자. 인간에게 맞는 속도를 유지하고 삶을 돌보기 위해 규모를 줄이는 방법을 살펴보자"고 말하며, 우리 시대를 잠식하고 있는 성장 서사에서 벗어나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최근에 '탈성장', 곧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것 자체를 멈춰야만 미래를 열수 있다는 주장들이 나온다.  '지속가능한 발전', '녹색 성장' 같은 대안 담론보다 더 급진적인 주장이다. <<디그로쓰(Degrowth)>>라는 책이 그것이다. 지구를 식히고 세계를 치유할 단 하나의 시스템 디자인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인간 사이의 착취, 나라 사이의 착취, 자연을 대상으로 한 착취를 기반으로 한 경제 시스템은 끊임 없이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비용을 발생시키고, 우리는 그 대가로 찾아온 빈곤과 불평 등 기후 위기를 맞이한다. 탈성장 담론은 1970년데 앙드레 고르가 말한 "데크르와쌍스(décroissance)" 개념이 더 나아간 것이다. 이 담론은 "차이 자체를 줄여야 한다"이다.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생산, 소비할 뿐 아니라 더 적게 생산, 소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최근에 '잉여'에 대해 많이 고민한다. 우리들에게 찾아오는 불균형은 그 잉여에 비례한다. 그러므로 잉여는 줄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잉여를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한다. 그게 자연이 가르쳐주는 순환이다. 탈성장의 반대인 성장 담론은 더 많은 잉여를 획득하기 위해 인간이 자연에 비용을 떠 넘기는 거다. 그러다 보니 인간과 인간, 국가와 국가 사이에도 비용 전가, 곧 착취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우에게는 늘 환란이 있고, 늘 이름 바뀐 위기가 왔다. 이제는 위기가 위기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손보아야 한다. 지역의 자생력을 갖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갖춘다면, 그 어떤 위급 상황이라 하여도 고통의 질과 강도는 다를 것이다. 탈성장을 옹호하는 핵심 근거도 마찬가지이다. 협동과 공유를 기반으로 한 소박한 삶이다. 그러면서 지역에서 걷거나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도시 텃밭을 가꾸거나, 지역 공동체에 참여하는 소박한 행동들이 뿌리줄기(리좀) 같은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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