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와인 품평은 눈, 코, 입으로 한다. 일반적인 와인, 즉 스파클링이 아닌 스틸와인 품평에서 눈으로 주는 점수는 15점, 코로 주는 점수는 30점, 입으로 주는 점수는 44점이다. 합이 89점이고, 전체적인 와인 평가에서 만점을 받으면 11점이다. 그래 모든 면에서 완벽한 와인이라면, 100점을 받는다.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와인 품평 점수는 80-90점이다.
나는 와인 품평을 하며, 제일 먼저 와인의 색의 투명도를 본다. 그리고 이어서 와인 색의 농도, 와인의 주요 색깔, 뉘앙스(잔을 흔든 후 이차적 색깔), 점도를 보며 투명도 이외의 전체적인 시각적인 사항을 품평한다. 출품한 와인들의 대부분이 시각적인 부분은 변별력이 심하지 않다.
다음은 코를 통한 후각적인 품평을 한다. 후각의 순수성을 평가한다. 이어서 향의 강렬도를 본다. 다시 말하면, 코를 통해 느껴지는 향의 전체적인 스펙트럼의 정도를 품평한다. 나는 이 때 감지되는 향이 좋은 와인에 높은 점수를 준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감각 기관 중에 향의 인지가 가장 취약하다. 소설가 백영옥이 소개한 알렉산드라 호로비츠의 책 『개의 사생활'』에 의하면, 향에 있어서 인간과 개가 경험하는 세계가 전혀 다르다고 한다. "인간 코에는 거의 600만개 정도의 감각 수용체가 있고, 양치기 개의 코에 는 약 2억만개, 비글의 코에는 3억만개 이상이 포진해 있다. (…) 그러니 그들 옆에 서면 우리는 후각 상실자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프루스트의 소설『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 쿠키 향으로 시작된다. 시각·청각·촉각 중 인간에게 가장 오래 각인되는 기억이 후각인 셈이다. 개의 감각으로 세상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에게 보이는 세계는 지금과 전혀 다른 모양일 것이다. 그래서 향을 품평하기가 가장 어렵다. 순간적으로 특정한 물질에 의해 코가 자극 받을 경우 느껴지는 감각을 찾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
이젠 입을 통해, 와인의 미각을 평가한다. 와인이 입 안에 있을 때 인지되는 총체적 감각을 말한다. 미각을 통해 와인의 순수성을 본다. 특히 포도 재배 관련 결함, 양조적인 결함 등을 감지한다. 결함의 근원은 와인의 원료인 포도의 상태, 양조하면서 일어나는 오염, 특히 미생물에 의한 오염과 산화 등을 평가한다.
마지막으로 와인의 전체적인 인상을 판단한다. 와인의 일반성과 개성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숙성의 잠재 능력까지 감안하여, 와인을 상, 중 하로 나누어 점수를 준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와인도 술이다. 무얼 그리 심하게 따지는가? 그냥 마시고 취하면 그만이지 않는가?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어제 밤에 유발 하라리의 『호노 데우스』강의 준비를 하다가, 위의 질문들에 대한 답이 될 만한 부분을 만났다.
유발 하하리에 의하면, 중세의 지식 공식은 "지식=성경X논리"였다. X을 쓴 이유는 두 요소가 상호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과학혁명 시대의 지식 공식은 "지식=경험적 데이터X수학"이다. 수학적 도구를 이용해 그 데이터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과학이 제안한 지식의 공식에는 큰 결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가치와 의미에 관한 질문을 다룰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 사회는 그런 가치 판단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 후, 인본주의 대안은 인간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얻으면서, 새로운 공식이 등장했다. 지식=경험X감수성. 지식을 추구하는 우리는 수년간 경험을 쌓고, 그 경험들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감수성을 갈고 닦는다. 여기서 경험은 세 가지 주요 성분인 감각, 감정, 생각으로 이루어진 주관적 현상이다. 그리고 감수성을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경험에 항상 열려 있어야 하고, 그 경험들로 인해 내 견해와 행동은 물론 성격에 일어나는 변화까지 받아들여야 한다. 중요한 것은 경험과 감수성은 서로 이어져 서로를 강화한다는 점이다. 감수성 없이는 어떤 것을 경험할 수 없고, 다양한 경험을 하지 않으면 감수성을 개발할 수 없다. 감수성은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어서 키울 수 있는 추상적인 소질이 아니다. 예컨대, 와인을 마시면서 와인에 대한 감수성을 연마하는 것이다. 필요한 감수성을 갖추지 않으면 어떤 것을 경험할 수 없고, 많은 경험 없이는 감수성을 개발할 수 없다. 문제는 다른 모든 미적, 윤리적 지식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미적 감수성, 윤리적 감수성도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시간이 없어, 여기서 멈춘다.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술이든, 사람이든 익어야 한다. 익되 부패하지 않고, 발효되어야 한다. 부패와 발효는 똑같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어떤 미생물이 작용하는가에 따라 해로운 변화와 이로운 변화로 나뉜다. 잘 발효되며 익어가는 힘은 "남을 더욱 앞장서게 만드는" 것이라고 시인은 알고 있다.
익는 술/이성부
착한 몸 하나로 너의
더운 허파에
가 닿을 수가 있었으면.
쓸데없는 욕심 걷어차버리고
더러운 마음도 발기발기 찢어 놓고
너의 넉넉한 잠 속에 뛰어들어
내 죽음 파묻힐 수 있었으면.
죽어서 얻는 깨달음
남을 더욱 앞장서게 만드는 깨달음
익어가는 힘.
고요한 힘.
그냥 살거나 피 흘리거나
너의 곁에서
오래오래 썩을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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