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사람들은 '리셋 코리아(reset korea)'를 말하며, 대학도 많은 고민을 하는 것 같다. 나는 리셋보다 리부트란 말을 좋아한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reset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축적이 승계되는 reboot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슬기로운 대책들이 논의되어야 한다. 요즈음 여기 저기서 다 '슬기로운' 말을 사용한다. 내 성악 레슨 선생님 이름이 슬기이다. 슬기는 드라마 <슬기로운 감방생활>,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가 되었다. 그래 사람들은 아무데나 "슬기로운 ~~"을 사용한다. 슬기는 사전에서 '사리를 바르게 판단하고 일을 잘 처리해 내는 재능'으로 뜻을 설명한다. 비슷한 말로 '재치', '현명'이 쓰인다. 나는 '슬기로워야 한다'는 말이 좋다. 그냥 하지 말라는 말보다, 슬기롭게 판단하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선 생로병사의 최전선인 병원(‘슬기로운 의사생활’)과 생소하고 막막한 교도소(‘슬기로운 감방생활’)도 서로 협력해 슬기롭게 생활한다면 살 만한 곳이 되었는데 과연 우리의 미래 사회도 슬기로워질 수 있을까? 코로나-19의 충격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위기의 순간을 앞당겼다. 그래 우리는 다시 정확한 방향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갖고 선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성급한 해답보단 좋은 질문들을 나누며 미래 사회를 준비해야 한다.
위기의 시기에 전환의 주체로 거듭나려면 우리 삶과 연결된 주위를 세심히 관찰·공유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을 봐야 한다. 의례적인 답을 내놓기보다, 좋은 질문으로 함께 고민하는 공동체를 만들 준비를 해야 한다. 계속되는 장마 속에서, 모두들 지쳐 있는데, 나는 <우리마을대학>을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실제적으로 하나씩 실천에 옮기고 있다.
배철현 선생은 <창세기> 1장 1절의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를 "처음이라는 순간을 통해 신이 혼돈 상태의 우주에서 쓸데 없는 것들을 처내기 시작했다"로 바꾸었다. 여기서 방점을 찍어야 할 것은 '처음'과 '처내기 시작했다'란 말이다.
카오스(혼돈)에서 코스모스(질서)로, '없음'에서 '있음'으로의 질적인 변화는 '처음'이라는 특별한 순간을 통해 가능하다. 여기서 '처음'이란 이전과 질적으로 전혀 다른 상태로 진입하기 위한 '경계의 찰나'이다. 습관처럼 흘러가던 이전의 양적인 시간과 달리 충격적이고도 압도적이어서 전율하게 하는 질적인 시간이고, 동시에 문지방, 현관이다. 현자가 가물가물하다는 말이다. 그래 아직은 손에 뭔가 잡히지 않지만, 가물가물하게 뭔가 보인다.
그리고 흔히 우리가 번역하는 '창조하다'의 히브리어가 '바라(bara)"라고 한다. 이 말의 뜻이 "빵이나 고기의 쓸데 없는 부위를 칼로 잘라내다'라고 한다. 그러니까 '창조하다'의 의미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 요리사나 사제가 신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해 재물의 쓸데 없는 것을 과감하게 제거해 신이 원하는 제물을 만드는 것처럼, 창조란 자신의 삶에 있어서 핵심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개인적으로 이 과정은 자신의 삶의 깊은 관조를 통해 부수적인 것, 쓸데 없는 것, 남의 눈치, 체면을 제거하는 거룩한 행위가 된다.
그 속에서 의미가 나온다. 의미는 한 인간이 오늘이라는 시간을 허락 받아 마쳐야 할 고유한 임무이며, 그 임무의 완수를 간절히 원하며 자발적인 헌신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아는 사람은 건강하며 슬기롭다. 그래 나는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밤"이다.
밤/김동명
밤은
푸른 안개에 싸인 호수
나는
잠의 쪽배를 타고 꿈을 낚는 어부다
오늘 아침은 한국의 대학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지난 1학기 우리 대학 교육의 가장 큰 변화는 온라인 전환이었다. 교수와 학생, 그리고 동료 학생 간에 얼굴을 마주 보며 소통하고 성장하는 상호 교류는 일시 중단됐다. 그리고 수업의 온라인화와 평가 관리는 당면 문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학령인구 감소, 강의 온라인화 등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해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교육 지향점이 무엇인지 먼저 설정해야 한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 지향점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갖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은 긍정의 에너지도 품지만, 이면에는 위기를 활용해 재빨리 이익을 얻으려는 경박한 재난 자본주의의 모습도 도사리고 있다. 성급하게 임시방편을 택함으로써 값싼 이득은 취하지만 방향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주의해야 한다. 숨 쉴 틈 없이 관성으로 달려왔던 우리 사회가 잠시 멈춰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 대학의 정체성을 회복할 기회이다. 미래학자들에 의해 예견된 대학의 종말 전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고등교육법 제28조에 따르면 대학의 목적은
• 인격을 도야(陶冶) 하고,
• 국가와 인류 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 국가와 인류 사회에 이바지 하는 것이다.
과연 대학이 이를 실천하고 있는가? 인격이 아니라 스펙을 갈고 닦고 있고, 심오한 학술이론보다 가시적 성과와 취업률로 평가받고 있다. 국가와 인류에 이바지하기보다 교수·학생·대학 모두 생존에 급급한 상황이다. 생존을 위해 교육 공동체의 본질로부터 멀어지는 것 자체가 정체성의 종말이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와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 등 많은 사람이 오래전부터 대학의 위기를 경고했다. 개방형 온라인 교육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세계 최고 수준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세상에서 대학에 다니는 선명한 이유가 없다면 대학은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현실이 이렇다.
• 구글·애플 등 세계적 기업의 채용에 대학 졸업장이 요구되지 않고,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역할을 대체함으로써 더는 교육이 필요 없는 분야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는 대학 위상에 큰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 길어진 기대수명으로 인한 100세 시대, 2번 이상의 직업을 가져야 하는 시대에 20대 초·중반 특정 전공으로 끝나는 대학 교육의 역할이 적절한지 심각하게 재고해야 한다.
대학은 분명히 벌써 위기였다. 왜냐하면 2019년 합계 출산율 0.92명인 한국의 극단적인 저출생 추세에서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의 위기는 언젠가 닥칠 시한폭탄이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9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83.8%로 정점을 찍었던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2018년 약 70%로 떨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OECD 평균(41%)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과거 우리의 높은 대학 진학률은 인적자본으로 인식됐었다. 그러나 이제 대학 교육이 실용적으로 필요하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학령인구가 줄고, 대학 진학률이 OECD 평균으로 수렴해가는 건 한국 대학의 존립에 치명적이다.
이미 위태로운 상황에서 제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인재 양성을 위해 개선을 고민하던 대학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예기치 않은 직격탄을 예상치 않게 빨리 맞고 있다. 에를 들어, 대학의 일상 기능이 마비됨에 따라 재정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튼튼하다고 알려진 미국 하버드대조차도 코로나19로 인해 인력과 설비 구조조정을 발표했다. 하버드대는 지난달 코로나19 영향으로 앞으로 2년간 수입이 12억 달러(약 1조4300억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며 교직원들의 조기 퇴직, 근무시간 단축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 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세계 대학들에 머지않아 닥칠 현실이다. 참고: <중앙일보, 송인한의 페스펙티브>, 코로나_19와 대학의 미래.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_인문운동연구소 #사진하나_시하나 #김동명 #복합와인문화공간_뱅샾62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늙는 것의 가장 두려운 점은 세상과 무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1) | 2025.08.04 |
|---|---|
| 執大象(집대상) 天下往(천하왕): 대상(=큰 모습=대도)을 잡고 있으면 천하가 움직인다. (7) | 2025.08.04 |
| 책의 경험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7) | 2025.08.04 |
| 꽃 피어 야만 하는 것은, 꽃핀다, (8) | 2025.08.03 |
| 수천(水天) 수(需) 괘 (7) | 2025.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