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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살아 남아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은 애도(哀悼,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 이다.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한 공인으로 그가 한국 사회에서 이루어 왔던 소중한 일들을 지켜내고, 아직 이루지 못한 남아 있는 일들을 남아 있는 사람들이 이어서 해 나가야 한다."

하루가 지나간다. 어쩌다 아침 글 공유할 시간을 놓쳤다. 지금은 프랑스어로 개와 늑대의 사이 시간이다. 개인지 늑대인지 구별이 안 되는 저녁 무렵이다. 내 머리는 하루 종일 이런 시간이었다. 바슐라르는 이 시간을 '몽상의 시간'이라 했다. 어제부터 한 사람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가 오후에 텍사스 크리스찬 대학교의 강남순 교수의 글을 읽고, '내 마음이 이런 것이었구나'를 알았다. "내가 느끼고 있는 아픔, 우울함, 절망감 등은 (…) 어느 한 특정한 한 개인의 죽음 자체 때문만이 아님을 보게 된다. 마치 손에 쥐고 있던 '생명선'을 한 순간에 놓기만 하면, 인간의 생명이란 얼마나 한 순간에 무화(無化)될 수 있는 거라는,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 나의 온 존재 속에 느껴지는 것 같았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책상에 앉으면, 페이스북의 <과거의 오늘>을 열어본다. 지난 4-5년의 내 사유의 흐름과 시대정신을 앍을 수 있다. 오늘은 4년 전의 글의 일부를 공유한다. 세상이 너무 더디게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 인문운동가의 활동에 더 박차를 가하고 싶은 아침이기 때문이다.

<복합문화공간 뱅샾62> 앞집이 치킨집이다. 겉으로 봐서 잘되지는 않는 것 같다. 사람이 자주 바뀌는 것을 보아서. 늘 젊은 친구들이 닭을 튀긴다. 지금부터 6년 전인 2014년부터 "대한민국은 '치킨 공화국'이다"라는 말이 돌았다. 10대부터 직장인들까지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치킨집'으로 수렴되는 현실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6년이 지난 2020년에도 별로 바뀌지 않았다. 더 심화되었을 뿐이다.

'낙엽만 떨어져도 까르르 웃는다'는 사춘기 소녀도 웃지 않고, 편의점 알바도, 편의점 사장아저씨도 웃지 않는 시대. 웃음이 사라진 시대이다. 왜? 한번 등급이나 계급이 매겨지면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능성에 대한 포기에서 그렇게 된 것 같다. 문과도 이과도 결국에는 다 '튀겨야' 하는 인생이다. 졸업하고 바로 치킨집을 차리느냐(문과), 아니면 취업이라도 한번 해보고 차리느냐(이과) 경로만 다를 뿐 치킨집으로 다 수렴된다. 어차피 일자리 없고(문과), 언제 잘릴지 모르기 때문에(이과) 다들 치킨집으로 다 수렴된다. 그리고 치킨집은 3040 가장들의 현실이다. 게다가 위험사회를 뚫고 성장해도 아이들의 미래는 불안으로 자욱하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지적은 지금도 유효하고, 더욱 공공 화되고 있다. "돈(자본)이 돈을 버는 속도가 사람(노동)이 일해서 돈을 버는 속도보다 빨라서 어떤 부모를 두었냐가 개인의 미래를 좌우하는 세습자본주의가 고착화되고 있다."

모가지만 비트는 세상, 누가 새벽을 열 것인가? 천 번 흔들리는 것은 날기 위한 잠시의 고통이라고, "미치면" 될 것이라고, 이젠 이런 이야기에 회의적이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그 새벽은 10대와 20대의 성장 판 깊숙이 경쟁의 유전자만 세습한 기성세대가 열어줘야 한다. 나도 이젠 떠나야 한다. 그래야 네 다음 세대의 젊은이들이 날개를 펼 수 있다.

이런 말이 있었다. "당신의 치킨 인생, 시킬 것인가 튀길 것인가?" "1,2,3 등급은 치킨을 시키고, 4,5,6 등급은 치킨을 튀기고, 78,9 등급은 치킨을 배달 할 것이다." 이 문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은근히 언론이 계급을 조장하고, 사는 것이 경쟁이라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사는 것이 이런 것일까? 시키든, 튀기든, 배달하든, 자신이 하는 일이 즐겁고 행복하면 되는 것 아닐까? 한 사회를 구성하려면,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돕고 사는 것이고, 자기가 있는 그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면 다 나름 잘 사는 것 아닐까? 한 공동체의 목표가 각자 맡은 일을 하면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할 때 건강한 사회가 아닌가?

오래 전에 고** 변호사의 딸이 자기 아버지에 대해 한 말이 기억난다. "늘 남을 자신보다 낮게 봤다" "그 사람에겐 그 일이 중요한 일일 수 있다. 우리 각자 모두가 사회에 중요한 일이 있지 않나. 그 사람은 내가 위에 있으니... 내 밑에 나보다 못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하는 일은 각자 다 중요한 일이다. 그러니 사람을 천대하지 않는 마음 가짐이 중요하다.

이런 '병든' 사회를 바꾸려고 그렇게 애를 쓰다가, 그는 힘들어 지쳤던 것일까? 어제는 하루 종일 침울했다. 그런데 난 밥만 잘 먹고, 다른 날과 다르지 않게 와인만 잘 마시더라.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처럼, "푸른 밤"도 아니더라. 그래 더 슬픈 아침이다. 그러나 강남순 교수의 글을 읽고, 마음을 정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모르는 분이 내 카톡으로 보내 준 김민웅 교수의 글을 공유하며 그를 추모하고 애도한다.

푸른 밤/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앞에서 인용했던 강남순의 글에서 위로를 받았다. "인간에 대한 복합적인 이해라는 것은 한 인간은 무수한 결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우리의 인식구조속에 수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인간이해를 수용할 때, 한 인물에 대한 '이상화' 또는 '악마화'라는 흑백 논리적 접근이 얼마나 폭력적이며 위험한가를 보게 된다. 한 사람의 삶이란 단순한 한 두가지 표지로 드러낼 수 없다."

"인간이 복합적인 존재라는 것은, 동일한 정황에서 누구나가 다 동일한 해석, 결정,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각자가의 얼굴과 목소리가 다르듯,  우리 각자는 다른 해석과 결정을 내린다. 그렇기에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등의 표현으로 한 고유한 존재가 내린 결정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 알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자의적 판단/심판을 중지하는 것[은] 인간됨의 실천이다."

" 자신의 '생명선'을 놓겠다는 결정을 하는 것'에 대하여 살아 남아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은 애도(哀悼,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 이다." 그리고 "한 공인으로 그가 한국 사회에서 이루어 왔던 소중한 일들을 지켜내고, 아직 이루지 못한 남아 있는 일들을 남아 있는 사람들이 이어서 해 나가야 한다."

다음은 김민웅 교수의 글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이다. 난 서울을 잘 모른다. 그러나 어쩌다 서울에 가면 달라진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인문운동가로 고 박원순 시장의 가치에 동의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공동체를 회복하여,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더 사람을 우선하는 마을로 만들고 싶어 마을 활동도 한다. 김민웅 교수님의 개인적인 내용은 삭제하고, 글의 큰 줄기는 그대로 둔다. 고 박시장이 생각나면 또 읽고 읽으며 그를 기억할 생각이다.

"다녀왔습니다. 빈소의 영정사진으로 그를 마주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 무수한 이들과 함께 애도하면서 이제 조금이나마 진정이 됩니다. 그리고 그를 다시 들여 다 봅니다. 박원순, 그의 빈 자리가 이리도 큽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 지난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가 곳곳에 일상으로 담겨졌는지 돌아볼수록 놀라울 따름입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에게 조언합니다. 큰 거 하나 해, 그래야 정치적으로 딱 각인이 되지. 그런데 그는 소소한 일상의 풍경을 바꾸는 일에 진력합니다.

버스와 전철의 손잡이가 키에 따라 높낮이가 다른 것이나 비 오는 날 우산 빗물 털개가 설치되는 것이나
공공자전거 서비스 서울 자전거 따릉이가 대기하고 있는 것이나 모두, 일상을 사랑하는 그의 철학의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어디 그뿐이었습니까?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운동의 거점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적폐정권 하에서 경찰들의 물대포 작업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촛불시민혁명의 현장 광화문, 그곳을 그는 지켜주었습니다.

그는 청년의 때에 살았던 모습을 시장이 된 뒤로도 그대로 실현해 나갔습니다. 아니 더욱 구체적이고 정밀하게 밀고 나갔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또한 적지 않습니다. 시민들의 시민의식, 그 권리를 위해 <서울자유시민대학>을 출발시킨 것은 박원순 시장의 모든 업적 가운데 가장 소중한 일입니다. 보이지 않는 정신의 힘을 기르는 긴 안목의 결정이었기 때문입니다. (…) 평생교육의 거점을 세워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기쁘게 새로운 평생학습권을 누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서울 도서관> 설립은 책 읽는 도시 서울을 위한 박원순의 기여입니다. 서울 시내 여러 유형의 도서관 정책, 그 골간을 짜는 본부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

서울의 브랜드 “I-Seoul-U”, 누구나 다 압니다. 젊은 세대의 작품이었습니다. (…) 여러 개의 후보 가운데 시장의 선호도에 따라 결정된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선택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러자 전혀 익숙하지 않은 브랜드의 출현에 사방에서 비판이 일었습니다.  자신도 그 후보작에 표를 던지지 않았던 그는 시민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일관해서 자신의 입장을 지켰습니다. 현장 투표에서 시장의 표도 당연히 한표였을 따름이었습니다. 이 도시 브랜드는 이제 세계적으로도 명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시대의 내면을 본능으로 읽고 있는 세대의 힘을 아꼈던 것입니다.  

그와 함께 손을 잡고 일한 것 가운데 중랑구 망우동의 일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서울의 변두리, 낙후한 지역에서 마을 운동을 일으켜 혁신교육과 공동체 성장에 힘을 쏟고 협동조합을 만들어 활동하는 주민들에게 그는 뜨거운 사랑을 쏟고 지원을 했습니다. 아이들을 시장실에 초대하여 소탈한 할아버지가 되어주었습니다. 현장에 직접 찾아와 숲이 있는 마을로 가꾸어 나가고  녹색벨트와 사회적 경제, 그리고 인문학적 사유가 하나가 된 서울의 새로운 거점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도시 재생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헌신을 다하는 마을 운동가를 끊임없이 격려하면서 난제를 푸는 일에 조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성장한 그 마을 활동가는 지금 국회로 가서 새로운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 숱한 일을 매일 감당하는 그가 그 작고 이름없는 마을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보인 애정은 그가 어떻게 살아가는 이인지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실종소식을 듣고 마을 아이들이 우리도 찾아 나서야 하는 거 아니냐 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먹먹해 졌습니다.  그는 그런 따뜻한 추억을 아이들에게 남기고 떠났습니다.

서울시장, 하면 박원순. 이제 다른 이름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누군가 명명한 “영원한 서울시장”, 이라는 직함이 그의 일생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
그를 둘러싼 설왕설래가 있지만 지금은 온전히 추모의 예를 다해야 할 때라고 여깁니다. 도리(道理)라는 것은 그토록 중요합니다. 박원순, 그와 동시대를 살아온 것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에 대한 기억이 우리 역사의 힘이 될 것임을 믿습니다.

박원순. 이 한도 많고 말도 많은 사바세계의 짐을 모두 내려놓으시고 다시 초연이 산행(山行)을 떠나소서. 때로 별이 바람에 스치는 날이 있거든, 우리에게도 기별 전해주소서.

사랑하는 벗이여! 정다운 임이시여! 보내는 일이 이리도 힘이 드는군요." (김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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