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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언텍트(비대면)가 컨택트를 버리자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언텍트(비대면)가  컨택트를 버리자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과잉 컨택트에서 적정 컨텍트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어제 우리는 On-line으로 <새통사> 시즌 11를 개강하였다. 주제는 <2050년 지구: 인류, 너는 누구인가?>였다. KAIST 종신명예교수이신 성단근 교수님의 방대한 자료와 차분하게 말씀하시는 강의를 스마트폰으로 들었다. 새로운 세상이다. 그래 오늘은 시를 공유한 후, 언택트(untact) 사회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그런데, On-line 강의를 듣고, 몇몇은 저녁을 함께 하고, 복합와인문화공간 <뱅샾62>에서 컨택트를 하였다. 역시 사람을 대면하면서, 눈을 마주치고, 여러 주제가 넘나드는 대화를 해야 즐겁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밀폐, 밀접한 시설에서의 모임을 자제하여 주시고, 모임시에도 마스크를 착용, 거리 두기, 침 방울 튀는 행위 않기를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조심하고 예방하는 일은 지나쳐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언컨택트 사회는 단절이 아니라 연결될 타인을 좀 더 세심하게 가리라는 것으로 본다. 나쁜 경험을 줄이고 좋은 경험을 더 쌓겠다는 거다. 중요한 건 만남의 선택권이다. 회식이 싫은 게 아니라 선택권이 없다는 걸 못 견디는 거다. 예전엔 선택권이 없었고 지금은 선택권을 요구하는 것은 전통적인 톱다운 방식의 문화를 버리고 자발적으로 재조립한 느슨한 공동체에서 수평 문화를 즐기겠다는 것이다.

나는, 오래 생각하다, 고등학교 총동문회 등반행사에 참가하기로 신청했다. 오늘이 그날이다. 곧 집을 나서야 한다. 매일 동네에서만 놀다 보디, 아침에 공유하는 사진이 늘 비슷하다. 그래 머리에 바람도 넣고, 새로운 풍광을 사진에 담아 보고 싶어 신청한 것이다. 난 원래 동창 모임이아 동문 모임을 안 좋아한다. 어쩌다 같은 학교를 나왔을 뿐인데, 선배라고 말 함부로 하고, 동창이라고 내 사적 영역까지 쳐들어 오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코로나-19 블루'로 우울하던 차에 기분전환을 위해 오늘 등반대회에 간다.

어쨌든 오늘 아침 공유하는 시의 "비닐 우산"처럼, 행복하고 싶다. 컨택트 모임에서 행복 하려면, '미친 존재'보다는 'I'm nothing(무아,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을 받아들이고, 누군가의 "비닐 우산"처럼, "가슴에 연꽃 한송이" 피워야 한다. 오늘 아침은 사진 대신, 몇일 전 『꾸베 씨의 행복 여행』속에 있던 책갈피를 찍은 사진이다. 나는 이 4'라'를 좋아한다. "춤추라, 사랑하라, 노래하라, 살라." 즐거운 토요일이고 싶다.

비닐 우산/정호승

오늘도 비를 맞으며 걷는 일보다
바람에 뒤집히는 일이 더 즐겁습니다.

비 오는 날마다
나는 하늘의 작은 가슴이므로
그대 가슴에 연꽃 한송이 피울 수 있으므로

오늘도 바람에 뒤집히는 일보다
빗길에 버려지는 일이 더 행복합니다

‘느슨한 연대', ‘혼자 사회', ‘초 연결' 그리고 ‘언 컨택트'는 포인트만 다를 뿐 사실 모두 한 방향의 라이프를 가리키고 있다. 공정, 투명, 개인이라는 시대정신이다.

조직 내에서 권위적인 사람은 아직도 어린 사람을 내려보며 ‘새파랗다'고 말하고, 더 나아가 한번 새파라면, 영원히 새파랗다고 우긴다. 나이로 우려먹는 건 '연차(年差)'뿐이다. 그러나 ‘언 컨택트'가 퍼뜨린 수평화가 본격적으로 ‘연차의 성벽'을 깨고 있다.

'비 대면 접촉'이 깬 또 하나의 악습이 있다. 기성세대의 ‘짬짜미’ 문화이다. 만나면 부정, 청탁, 편 먹기가 쉽다. 그러나  안 만나면 못한다. 그러다 보니, 거칠게 이분화해 보면, 기성세대는 못 만나서 불편하고, 젊은 세대는 안 만나서 좋다. 만나서 이득 본 사람들은 한국식 인맥 쌓기에 능한 분들이다. 아는 사람끼리 술 마시고 밀어주는 문화는 비겁한 문화이다. 공정 사회에 어긋난다. 정이라고 우겨도 글로벌 스탠다드와는 안 맞는다.

젊은 세대는 연장자 비위를 안 맞추고, 막말을 안 들어도 되니, ‘안 만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성희롱', ‘인격 비하'를 비롯해서 막말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이 사악한 사람들은 아니다. 사회가 그걸 용인했던 것이다. '그래도 되는 사회'였다. 지금은 룰이 바뀌었다. 청년들은 어디서든 스마트폰 녹음기를 켠다. 그러니까 근거가 남아서 안 한다는 건, 나쁜 짓인 줄 사람들이 안다는 것이다. 이젠 '그래도 되는 사회'에서 '그러면 안 되는 사회'로 넘어가야 한다.

‘비 대면 접촉'이 얼마나 편하면, 젊은 사람들이 페이스 북, 인스타그램 등에서 잘 놀겠는가? '혼술'하고, SNS에서 '잘' 노는 건 그동안 만났을 때 불편함이 계속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실 '비 대면 문화'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계속 해온 <날카로운 상상력 연구소>의 김용섭 소장의 말에 의하면, "한국 사회는 한 살만 많아도 '형 노릇'하려고 한다. 나이가 어리면, 여자면, 못생기면, 피부색이 다르면 함부로 데한다. 반발 하면 ‘관심'이라고 말한다. 나쁘다는 걸 알면 바꿔야 한다."  

한 사회의 욕망이 진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언텍트(비 대면)'이라는 방향을 만들었던 것이다. 방향은 정해졌고, 다만 속도의 문제였다. 그런데 코로나-19가 가속도를 내게  만들고 있다. 언컨택트가 컨택트를 버리자는 게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숙명이라 뭉쳐 살고 섞여 사는 게  맞다. 다만 과잉 컨택트로 나쁜 기억을 만들지 말자는 거다. 한국 문화가 대학교 1년 선후배도, 유치원 한 살 차이도 깐깐하게 따져 서열을 매긴다. 사실 나이로 통제하는 건 원래 우리 문화가 아니다. 학교를 군대로 조직해서, 선배가 상사로 군림한 건 일제 강점기 문화이다.  

네덜란드의 심리학자 헤이르트 호프스테디의 표현을 빌리자면, '권력 거리(power distance)'이다. 우리는 윗사람과 아랫사람 간 거리가 먼 문화를 가지고 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지나치게 어려워 하고, 젊은 사람은 나이 든 사람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 놓지 못한다. 나이가 든다고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나이가 어리다고 해법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아랫사람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을 열지 않고, 나이가 든 사람은 잘 모르면서 자꾸 해법을 제시하려 한다. 요즈음 이런 문화를 없애고 수평적 문화를 만들기 위해 애쓰지만, 아직은 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언컨택트와 컨택트의 적정 비율을 어느 정도로 맞추는 가의 문제이다. 김 소장에 의하면, "장유유서는 분별이지 ‘윗사람이 짱 먹어라'가 아니라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위아래로 열 살은 친구였다. 예를 들어, 오성과 한음은 절친이지만 5살 차이였다. 친구는 나이와 무관하게 신뢰를 나누는 사이이다. 마음이 통하면 70대 노인과 20대 청년이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존칭과 화법은 함께 정하면 된다. ‘꼰대’가 갑자기 나온 게 아니다. 예전엔 뒤에서 욕하다 이젠 대놓고 저항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김 소장은 2017년애는 ‘적당한 불편’, 2018년에는 ‘아주 멋진 가짜’, 2019년에는 ‘젠더 뉴트럴’에 이어 2020년엔 ‘느슨한 연대’까지, 그는 매년 ’라이프 트렌드' 시리즈를 출간하면서 우리 사회의 흐름을 읽어왔다. 특별히 최근 몇 년간의 키워드가 선명하다. ‘느슨한 연대', ‘혼자 사회', ‘초 연결' 그리고 ‘언 컨택트'는 포인트만 다를 뿐 사실 모두 한 방향의 라이프를 가리키고 있다. 공정, 투명, 개인이라는 시대정신이다. 어제는 이런 시대 정신에 맞는 <새통사> 모임이었는데, 오늘 총 동문 등반대회는 어떨까? 한 번 부딪쳐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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