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어제는 황금 연휴의 한복판인데,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다른 많은 이들은 야외에 나가는 데 귀찮았겠지만, 나는 기다리던 비이다. 한동안 가물었기 때문이다. 심은 고구마, 가지, 토마토들이 다 말라비틀어졌다. 신기한 것은 자연은 다 때를 알고, 적절하게 일을 한다는 점이다. 오후에는 해가 떴다. 나는 바로 농장에 나가 밭 정리를 했다. 나비도 보았다. 지난 글들은 https://pakhanpyo.blogspot.com 을 누르시면 보실 수 있다.
인간은 크게 ‘거미형’, ‘개미형’, ‘나비형’,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 거미형 인간은 생산적, 창조적 노력은 하지 않고, 과거에 얻은 지식과 경험, 지위나 명성 등을 통해 먹고 사는 인간
- 개미형 인간은 부지런히 먹을 것을 수집하지만 자신의 가족이나 기업 등을 유지하기에 급급해 하는 인간
- 나비형 인간은 자신의 몫을 챙기지 않고, 쉬지 않고 옮겨 다니며 행복과 사랑과 생명을 전파하는 인간
다수 애벌레는 자기가 ‘나비’가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번데기가 되는 아픔(온몸이 굳어가는 아픔)을 모면하려 그냥 애벌레로 여생을 보낸다. 인간으로 치면, 자기의 꿈을 접고, 세상과 타협하며 적당히 살아가는 부류의 인생들이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고 나비가 된 애벌레는 생애동안 다른 어떤 곤충보다도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게 된다. 나비가 되어 평생 100Km 이상의 거리를 자유롭게 날고, 꽃가루를 몸에 묻혀, 각종 식물과 나무의 열매도 맺게 하는 좋은 일을 한다. 나비가 된 그는 하늘을 날아, 숲도 보고, 호수도 보고, 강도 즐긴다. 고통의 강을 건너 성공의 강둑에 도착한 인간은 다른 사람도 건너 올 수 있도록 자기의 나룻배를 기꺼이 내놓는다. 자신의 재능과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성공을 돕기 위해.
만일 그냥 애벌레로 남았다면, 평생 나뭇잎사귀 정도의 시야에 갇혀 살아야만 한다. 출발은 같았으나 그 끝은 장대한 차이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원래 우리 모두는 ‘나비’가 될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 그러나 대부분은 세상에 부대끼며 본인의 의지부족으로 나비가 되기를 거부하고 애벌레로 남는다. 나비가 되던, 애벌레가 되던, 인생은 옵션(option)이다. 그러니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반음계/고영민
새소리가 높다
당신이 그리운 오후,
꾸다 만 꿈처럼 홀로 남겨진 오후가 아득하다
잊는 것도 사랑일까
잡은 두 뼘 가물치를 돌려보낸다
당신이 구름이 되었다는 소식
몇 짐이나 될까
물비린내 나는 저 구름의 눈시울은
바람을 타고 오는 수동밭 끝물 참외 향기가
안쓰럽다
하늘에서 우수수 새가 떨어진다
저녁이 온다
울어야 겠다
나는 한겨레 신문 김종철 기자의 <여기>라는 코너를 좋아한다. 그는 국가나 사회, 민족 등 추상적인 단어보다 그 실질을 이루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람을 찾아간다. 그의 글은 '지금-여기'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들이다. 오늘 아침도 고양시 덕양중 이준원 전 교장으로부터 여러가지 배운다. (한겨레 <김종철의 여기>(하), 2020년 4월 26일)
1. 우리의 학교 문화가 너무 경직되어 있다. 교장과 교감, 관리자, 선배 선생님들에게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입시학원 같은 학교에서 일하면서 교사들은 힘들어 한다. 권위적이거나 계급으로 눌러서 지시하지 않고 정말 똑같은 인간 대 인간의 소통을 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이 전교장은 할 이야기가 있으면 선생님이나 행정 실무 선생님을 인터폰으로 교장실로 부르지 않고, 가능하면 교장이 직접 선생님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 갔다고 한다.
2. 교사들도 상처를 받는다. 자기를 무시하고 권위적인 자세로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교장에게 상처를 받기도 하고, 터무니 없는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에게 상처를 받고, 서로 마음이 맞지 않는 동료 교사에게도 상처를 받는다, 이보다 더 큰 상처는 학생들에게 받는 상처이다. 그래서 학생과 교사의 내면의 아픔을 치유하는 훈련도 함께 한다. 이런 훈련을 통해, 교사들은 서로의 삶을 개방하고 나누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만나면서 겪었던 아픔들도 들으면서 서로 위로한다. 그리고 업무 추진 과정에서 서로에게 미쳤던 영향들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발적인 사과와 용서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 업무 중심이었던 학교에서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고 지시하는 생활공동체로 거듭나면서 교사들은 학생들을 넉넉하게 품을 수 있는 자생력을 갖게 된다. 여기서 방점을 생활공동체에 찍고 싶다.
3. 존중과 경청을 아이들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들에게도 충분히 들어주고, 그들이 가진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면 선생님 자신이 꿈꿨던 교육과정을 실천해서 그것이 현실화 되는 모습을 본 선생님들은 굉장히 성장하고, 주인의식과 자발성이 생긴다.
4. 학부모들을 동원 대상이 아니라 학교 운영의 주체로 만든다. 부모가 제대로 바뀌지 않으면 학교에서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다. 근원적인 아이의 변화를 위해선 교사 이전의 교사인 학부모의 역할이 더 중요하고, 학교가 바르게 가려면 부모가 교육철학을 같이 공유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엘리트 부모들이 더 마음의 환자들이다. 그분들이 받아온 교육이, 성적 잘 나오고 집안이 좋으면 특권의식을 느끼도록 부추겼기 때문이다. 특권의식과 우월감을 심어주는 교육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사람을 차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제 평소에 내가 생각했던 바뀌어야 할 교육문법 이야기를 서울대 심리학과 박주용 교수의 칼럼에 만났다. 인문운동가로 늘 고민하던 내용이다. 오늘 아침 고유한다. 기존의 교육은 사고력을 키우는 데 그리 성공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지금이 교육 혁신의 적기이다. 수업은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만나는 시간으로, 단순히 진행 방식에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수업의 초점을 가르치는 사람에게 두면서 첨단 기술이나 그 밖의 다른 교수 기법을 도입한들 가르치는 사람의 독백을 학생과의 대화로 바꾸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게 해야 비로소 지식 뿐 아니라 사고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성공적인 코로나 방역에 이어 교육 혁신이 음악, 음식, 영화 등을 잇는 또 하나의 한류가 되길 기대해 본다. 쉽지 않지만 다음 두 가지를 바꾸면 가능하다.
(1) 가르치는 사람에게는, 학생을 자신의 부하로 보는 대신 특정 주제를 탐구하고자 하는 동료나 길동무로 여기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런 태도가 있으면 수업은 면대면이든 온라인이든 활발한 대화가 이루어지는 진정한 만남의 시간이 될 수 있다.
(2) 학생들이 충분히 준비하고 수업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준비할 수 있는 자료 자체가 없었기에 만나서 지식과 기술을 전달했다. 그런데 지금은 더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 스스로 찾아보며 공부할 수 있는 자료가 많기 때문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부분, 예를 들어 동영상 보기나 책 읽기처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학생들에게 맡겨야 한다. 수업 시간은 혼자서 할 수 없는 부분을 해결하는 데 써야 한다. 학생들이 가져온 문제에 대해 가르치는 사람이 전부 답해 주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학생들이 서로 협력해 답을 찾아보거나 토론을 하게 하자. 토론하고 협력하게 해야 아는 지식을 더 잘 사용할 수 있고 뭘 모르는지도 확실히 알게 되기 때문이다.
면대면 방식에 비해 온라인 강의의 질이 떨어진다는 불평과 염려는 핵심을 놓치고 있다.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면 강의보다 더 좋은 학습 방식인 토론, 팀 과제 수행, 문제중심 학습법 등이 왜 사용되지 않는지를 따져야 한다. 학생들이 그렇게 따지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적 근육을 키워야 한다.
지금도 힘든 공부하기가 훨씬 더 힘들어 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부는 힘든 일이다. 신체 근육과 마찬가지로 지적인 부담이 있어야 지적 근육이 생기는데, 학생들에겐 지적 근육을 키우기보다는 쉽게 과정을 이수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래서 마치 아이들이 몸에 좋은 야채를 싫어하는 것처럼, 학생들은 학습 효과가 더 높은 방식을 싫어한다.
이로 인한 부작용 중 하나는 가뜩이나 변화를 싫어하는 많은 교수와 강사에게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을 빌미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강의가 중심인 우리의 현재 대학 교육 방식은 혼자 해도 되는 공부를 굳이 모여서 하게 한다는 점에서 낭비다. 학생들이 많은 질문을 가지고 수업에 임하고 교수와 학생이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지식과 생각을 나눌 때 생산적인 수업이 가능해지고 대학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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