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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대화는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주고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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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4월 28일)

대화는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주고 받는 것이다.  대화법 용어에 '전환 반응'이란 말이 있다. 이것은 상대가 꺼낸 말에 호응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초점을 자기 자신에게로 전환시켜 더 이상 상대가 할 말이 없게 만드는 것이다. 대화 속에서 전환 반응을 통해 자기 쪽으로 이야기의 화제를 돌리는 상황을 사회학자 찰스 더버는 '대화 나르시시즘'이라 한다.

여러 연구들에 따르면, 우리는 대화를 할 때 말하는 시간의 약 60%가량을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쓴다고 한다. 게다가 나머지 40% 또한 대화 상대방이 아닌 제3자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하니, 정작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에 대한 이야기는 사라져버리고, 대화는 일방적으로 흐르고 만다. 이건 본능적인 것이기도 하다.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더 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화 나르시시즘에 빠져 지속적으로 전환 반응을 보이게 되면, 대화는 더 이상 진전되기 힘들고, 진전되더라도 일방적이거나 갈등적인 양상을 띠게 된다.

상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전환 반응이 아니라, 지지 반응을 보여야 한다. 이건 상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것이다. 이는 상대의 말을 그대로 받아 상대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거다.  대화를 할 때, 상대가 말한 것과 비슷한 내 경험을 말하려 하지 말고, 그저 상대의 말에 박자를 맞추고 그 말에 호응하는 거다. 그렇게 하면, 관계는 훨씬 생산적이고, 발전적으로 변화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을 보면, 자신만의 얘기를 하느라 상대의 말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를 '전환 반응'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모든 대화를 ‘나’로, 아니 '내 문제'로 전환시켜 자신만의 이야기만 하는 것이다. 예컨대,  “요즘 몸이 좀 안 좋아"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나도 안 좋은데"라고 말하는 식이다. 끊임없이 상대의 이야기를 자신의 스토리로 바꿔 버리는 이런 식의 대화는 우리를 지치게 한다. 좋은 대화는 “어디가 안 좋아?”라고 물으며 상대의 마음속으로 한걸음 더 들어가는 것이다. 이를 '지지 반응'이라 하는 거다.

정신과 문턱이 높을 때, 유독 사람들이 점집을 많이 찾던 이유 역시 꼭 그럴 듯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다. 점쟁이야 말로 내 말에 온 신경을 집중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답답한 마음을 털어 놓는 것만으로도 이미 위로를 받는다. 그러니 대화 중 잘못된 정보가 있다고 해도 중간에 끼어들지 말고 끝까지 들어야 한다. 소설가 백영옥의 글에서 만난 거다. 이어지는 그녀의 말을 더 들어 본다. 주옥 같은 생각들이다.
▪ 늘 징징 거리는 사람은 정작 타인의 울음은 듣지 못한다. 자신의 내부가 너무 시끄러우면 타인의 목소리가 묻히기 때문이다. 이때 상대의 말을 듣기 위해 필요한 건 적당한 양의 침묵이다. 나도 너무 징징거린다. 내부가 시끄러운 거다. 이젠 좀 덜 말하리라.
▪ 대화에서 내가 어떤 말을 했는지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건 상대가 나의 어떤 말을 ‘기억'하느냐 이다.
▪ 말없이 친구의 말을 그저 듣기만 했을 뿐인데 대화가 끝날 무렵 친구에게 “오늘 조언 고마워. 정말 도움이 됐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저 친구의 눈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친구가 울 때 손을 잡은 게 전부였는데도 말이다. 이런 대화에서  침묵은 제3의 청자다. "침묵은 제3의 청자"라는 말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상대가 말할 때 눈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친구가 울 때 손을 잡아 주며 침묵 속에서 상대의 말을 잘 들어 주는 거다.
▪ “내가 이야기꾼이라면 그건 내가 듣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꾼은 전달자라고 생각돼요.” 소설이 써지지 않을 때, 나는 소설가이자 미술평론가인 존 버거(John Berger)의 말을 떠올린다. 대개 좋은 이야기꾼들은 잘 듣는 사람이다. 듣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해지면 결국 상대도 침묵에 깃든 내 마음을 듣게 된다. 잘 듣는 것이 잘 말하는 것이다.

좀 결이 다른 이야기이다. 대화 속에 나는 이제 거대 담론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작고 사소한 것들의 합이 우리의 인생임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좋음’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지 말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더 힘들다. 누가 좋은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거창한 말보다 그 사람의 작은 행동을 보면 안다. 소설가 백영옥은 이런 사람들이고 열거를 했다.
▪ 운전할 때 양보해 주는 사람,
▪ 문을 열 때 뒷사람이 오는지 확인하는 사람,
▪ 식당에서 일어설 때 의자를 밀어 넣는 사람,
▪ 비 오는 날 상대에게 우산을 더 기울여 주는 사람,
▪ 약속 시간에 5분 먼저 오는 사람,
▪ 헤어질 때 한 번쯤 뒤돌아봐 주는 사람,
▪ 그리고 나에게 잘하는 사람. 그러나 나에게만 잘해주는 사람이라면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세상에 나에게만 잘하는 사람은 없다.
▪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감’을 잡을 수 없을 때는 ‘음소거’ 버튼을 누르고 오직 그 사람의 ‘행동'만 보라고 충고한다. 나쁜 행동에 대한 기준이 명확해질 때 라야 좋은 사람에 대한 안목이 생긴다.

사람이 말로 짓는 업보가 다음과 같이 4 가지이다.
▪ 남을 속이는 거짓말
▪ 남에게 퍼붓는 욕지거리
▪ 남을 이간시키는 서로 다른 말
▪ 겉과 속이 다른 발림 말
세상을 어지럽히고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들이다. 진실한 말은 있는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인생에서 나온다. 말을 한다면 세상에 양식이 되는 말, 세상에 쓰임이 되는 말, 세상에 거름이 되는 말, 세상에 빛이 되는 말, 세상에 소금이 되는 말을 해야 한다. 내가 뿌린 말의 열매를 모두 내가 거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말을 경작하는 농부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입구(口)자가 세 개 모인 것인 품격(品格)이다. 내가 하는 말이 곧 인격인 거다.

말[言]은 그릇[口]에 형벌 도구인 여(余, 바늘)를 꽂아서 신에게 맹세하는 일이다. 이때 '口'는 ‘입’이 아니라 ‘신에게 바치는 축문을 담은 그릇’이다. 갑골이나 청동기에는 ‘ㅂ’ 닮은 모양으로 새겨져 있다. 모든 말에는 신성이 깃들어 있어서, 발화만으로도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면 신의 벌이 내리므로 말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 신은 언어에 깃든 뜻을 살펴서 되새길 줄 아는 사람에겐 지혜를 주지만, 말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하는 자한테는 재앙으로 갚는다. 공자는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민첩하기를 바란다”라고 했다. 말의 힘을 거스를까 저어했기 때문이다. 서양의 사유가 소피스트의 말 잘하는 법(수사학)에서 시작했다면, 동양 사상은 공자와 노자의 어눌함에서 출발했다. 공자는 항상 꾸민 말[巧言]이나 헛된 말[佞言]보다 더듬는 말[訥言]을 칭찬했다. 장은수 대표한테 배운 거다.

말 이야기를 하다가, 천양희 시인의 <나를 살리게 하는 말들>이라는 시가 소환되었다. 시 속에 나오는 "불완전하기에 세상이 풍요하다"는 말의 경지는 우리들의 마음의 품을 넓혀야 한다. 나를 잃지 않도록 잘 간직하려면 그 곳간을 무어으로 지어야 할까? "시가 없는 세상은 어머니가 없는 세상과 같다는 말"은 무엇인가? 아마도 근본을 잃지 않으면 그 삶이 시와 같다는 말 같다. 마지막으로 "사람을 쬐는 것도 필요하다"는 말에서 사람을 쬐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이 사람을 얼마나 차게 하는지 모르시는 게 아니라면, 궁극 사람만이 사람을 녹일 수 있다는 말 같다. 좋은 시이다. 오늘은 천안으로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 약 2시간 탁두 게임을 하고,, 2024년 판 옻 순과 함께 저녁을 먹고 내려온다. 친구들을 만나면, 그들을 살리는 말들을 해야지.

나를 살 게 하는 말들/천양희

얼음이 녹으면 봄이 된다는 말이
나를 살게 한다
불완전하기에 세상이 풍요하다는 말이
나를 살게 한다
나를 잘못 간직했다가 나를 잃는다는 말이
나를 살게 한다
시가 없는 세상은 어머니가 없는 세상과 같다는 말이
나를 살게 한다
그 중에서도 나를 살게 하는 건
사람을 쬐는 것도 필요하다는 말
날마다 나를 살게 하는 말의 힘으로
나는 또 살아간다

대화 이야기를 좀 더 이어간다. 말을 잘 한다고 대화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말을 못해도 대화를 잘 할 수는 있다. 말 잘하는 사람이 오히려 대화에 서툴 수 있다. 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대화 역량이기 때문이다. 대화를 잘 하려면 경청, 공감, 질문 이 세 가지를 잘 해야 한다. 대화를 잘하는 사람은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을 잘 이끌어 내는 사람이다.

말에는 글 같은 말과 말 같은 말이 있다. 글 같은 말은 충분히 곱씹고 머리 속에서 퇴고까지 마친 뒤에 꺼낸 말이다. 대화에 애드립이 부족하다. 그러나 말 같은 말은 현장에서 직접 말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강원국 작가의 <<강원국의 어른 답게 말합니다>>에서 대화에 가장 중요한 건 상대방을 배려하는 눈높이 말하기라 했다. 그가 꼽은 "눈 높이 말하기의 7가지 기본 원칙"은 눈을 맞추고, 성향을 맞추고, 속도를 맞추고, 관심사를 맞추고, 스타일을 맞추고, 수위를 맞춰서 그리고 수준을 맞춰서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말 안에 진실된 마음이 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원국 작가 한 말 중 잊혀지지 않는 것이 또 있다. "대화는 말하는 사람의 수사학이 아니고, 듣는 사람의 심리학이다." 이 말을 유튜브에서 소개한 박문호는 "말은 하기 전에만 내 것이다. 말하고 난 다음에는, 내 입을 떠난 말은 듣는 사람의 것"이라 했다. 그것은 듣는 사람의 심리에 달렸다는 거다. 우리의 일상은 말로 시작해 말로 끝난다. 뇌고학자 박문호의 멋진 주장이다. 잘 따라가면, 좋은 대화를 할 수 있다.

말은 언어이다. 내 안의 언어가 생각이다. 언어는 순서이다. 순서가 인지를 만들고, 개념을 만든다. 개념은 맥락을 만든다. 언어는 맥락을 벗어나면 의미가 없다. 이 의미를 상대에게 전해야 한다. 그것이 말이고, 그 과정이 대화이다. 그래 어려운 거다. 각자가 만들고 형성한 의미인데, 그것을 말을 통해 전달해야 하고 공감을 얻어야 하니까 말이다. 더 나아가 설득을 해야 한다. 설득은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게 만들려는 의도이거나 내 생각을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화는 듣는 사람의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