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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실어증/심보선

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기억력이 감퇴한다고 사유 능력까지 퇴보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전체를 읽어내는 추상적 사유능력과 개념적 사유 능력은 오히려 커진다는 것이 최근 노인학의 연구 결과이다. 삶은 동사이어야 한다. 삶이 명사이면, 관념 속에 살며, 실재가 아닌 이미지에 속는다. 나는 '물'이 되려 한다. 다른 사람이 그 물에 들어 와서 노는 고기가 되어 내 안에서 헤엄치고 잘 놀고, 그러다가 싫증나면 가도 좋다. 물은 주장하지 않는다. 그렇듯이 뭐가 들어오면 들여놓고, 나가면 내놓는다. 어젠 그런 하루였다. 그래 오늘도 시를 읽는다.

실어증/심보선

나이가 들수록 어휘력이 줄어든다

언어학에서 말하는 인접적 자의성의 규칙에 따라 평소 잘 쓰지 않는 단어들을 훈련 삼아 적어보았다

배짱, 베짱이
사슬, 사슴
측백나무, 측면
언니, 어금니
홈, 흠
마음껏, 힘껏
벨라, 지오

윤동주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생각할 때 다른 단어들도 숙고했을 것이다

달, 해, 안개, 숲, 구름 ……

버려진 단어들을 생각하며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 있다

시인이 아니라도 그런 사람이 있다

TV에 나오는 낱말 맞히기 게임에서 하나도 맞히지 못했다

철없던 시절에 실어증에 걸리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오늘에야 소원이 이루어졌다

약을 먹는데 옆집 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살려달라고 외치고 싶어도 말이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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