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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사람 사이도 간격이 필요하다.

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장자는 이렇게 말한다.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그 다음엔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들어라." 귀는 고작 소리를 들을 뿐이고, 마음은 고작 사물을 인식할 뿐이지만, 기는 텅 비어서 무엇이든지 받아들이려 기다린다. 도(道)는 오로지 빈 곳에만 있는 것, 이렇게 비움을 장자는 '심재(心齋)'라고 했다. 이어서 그는 심재를 실천하여 생기는 결과에 대해 말한다. 심재를 하면,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심재'란 '심(心)'을 깨끗이 비움으로써 궁극적으로 허(虛)의 세계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허'의 경지에 이르면, 자연히 나와 대상 간의 간격이 없어지는 물아일체의 상태가 실현된다고 한다. '심재'를 하면, 일상의 의식 속에서 이루어진 옛날의 '작은 나(self, 小我)'가 사라지고, 새로운 큰 나(Self, 大我)'가 탄생한다. 그런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을 때 명예나 이익 추구에 초연하게 되고, 그 때 비로소 사회 어느 곳에 있더라도 위험 없이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쉽지는 않다. 세상과 완전히 인연을 끊고 은둔하면 몰라도, 사회에 참여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살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심재'를 하여 마음을 텅 빈 방처럼 만들면, 간격이 생기고, 그 간격에서 뿜어내는 빛을 체험할 수 있다. 지난 주말 걸은 겨울 숲에서, 시인처럼, '심재'하고 있는 나무들의 간격이 숲을 이룬다는 사실을 나도 알았다. 사람 사이도 간격이 필요하다.

간격/안도현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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