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인문산책
내가 드라마를 '다시 보기'로 처음부터 시청하는 일이란 이번이 처음이다. 드라마의 재미 때문이 아니다. 학습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하루에 다 보지는 않는다. 저녁 시간에 휴식을 위해 두 세편을 몰아 본다. 최근의 많은 칼럼에서 이 드라마를 가지고 글을 쓴다.
경향신문의 <시선>이라는 컬럼에서 오수경이라는 자유기고가 쓴 글이 눈에 잡혔다.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우선 두 인물에게 배운다.
1. 드라마 속의 이수임의 ‘옳음’ 태도를 지적하고 싶다. 나에게도 다소 그런 부분이 있어,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수임은 타인의 ‘복잡성’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이해하는 태도가 결여되어 있다. 이런 점들에서 보았다.
▪ 어찌하여 사회 구조의 문제를 읽는 훈련은 되었다 하더라도 이웃 주민의 자살이라는 비극을 겪은 ‘캐슬’ 구성원이 가진 슬픔의 정서나 그 비극을 흘려 보내야 하는 시간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감수성은 부족하다.
▪ 보육원을 운영하는 선한 부모의 영향으로 바르게 자랐을 그녀는 같은 반 친구인 곽미향이 선지를 파는 폭력적인 아버지를 부끄러워하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곽미향을 버리고 신분 세탁한 ‘한서진’을 이해할 수 없다.
▪ 그녀는 단지 ‘캐슬’의 욕망과 이익 문제로 단순화할 뿐이다. 한번쯤은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나?’ 혹은 ‘내가 모르는 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 좋겠지만, 자신만의 정의가 앞서면 그만큼 깊은 확신의 함정에 빠지기ㅣ 마련이다. 내가 옳고, 이 일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량하게 무례하다.
▪ 실제로 ‘이수임’과 같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나도 그런 점이 있다. 무엇이든 너무 쉽게 단순화하여 내가 생각한 ‘옳음’을 앞세워 판단하고, 비판하는 태도 말이다. 그래, 나는 그녀를 거울 삼아 나를 되돌아 보는 기회가 되었다.
2. 드라마 속의 노승혜는 ‘틈’을 내는 사람이다. 자신이 속한 세계를 지키되, 필요하다면 균열을 낸다. 나는 칼럼리스트가 표현하고 있는 이 '틈'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 1분이라도 아껴가며 공부해야 하는 ‘캐슬’ 방식을 거슬러 쌍둥이 아들을 데리고 나가 눈싸움을 할 줄도 알고, 그들이 조금이라도 인간답게 공부하도록 벽을 부수고, ‘컵라면 투쟁’을 벌인다.
• ‘가짜 하버드생’ 노릇을 하다 발각되어 쫓겨날 위기에 처한 딸을 지키기 위해 남편이라는 절대 권력에 대항하여 오히려 남편을 쫓아낸다.
• 노승혜는 신중하고 사려 깊다. 이수임과 처음 만났을 때 손톱에 낀 때의 의미를 알아차려 상대방을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는다. 한서진이 곽미향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도 ‘캐슬’ 구성원 중 유일하게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녀를 이해한다.
• 이수임의 아들, 한우주가 김혜나를 죽인 범인으로 지목되어 위기에 처했을 때도 노승혜는 후배 변호사를 소개하는 등 실제적인 도움을 준다.
• <SKY 캐슬> 구성원 중 가장 관조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 같던 그녀가 사실은 가장 공동체적으로 행동하고, 가장 인형 같던 그녀가 가부장 권력을 무너뜨리는 혁명가가 된 건 이 드라마의 또 다른 ‘반전’이다. 그녀가 보여주는 태도에서, 나는 내가 지니고 싶은 삶의 지혜를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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