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전 오늘 글이에요.
인문 운동가의 사진 하나, 시 하나
오늘도 최진석 교수의 특강과 토론에 간다. 이 번 주제는 "지식의 생산과 인격의 성숙"이다. 지난 주제는 "추상과 득도"였다. 추상이란 "자기 영역이 확장되는 과정"이라고 했다.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세계만 진짜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세계를 없는 세계 취급하면 자유와 독립과 같은 높은 단계의 것들을 가질 수 없다. 바로 종속적인 단계이다. 이런 단계에서는 '따라하기'에 빠진다.
니체는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안락한 생존과 쾌락에만 연연해하기 때문에 병약한 인간이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니체는 자극에 민감하면서 안락만을 탐하는 인간을 ‘말세인(末世人)’이라고 한다. 반대의 인간을 ‘초인(超人)’이라고 한다. 니체는 이러한 인간을 ‘고귀한 인간’ 혹은 ‘기품 있는 인간'이라고 부른다.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하고 당당한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 강한 긍지를 갖기에 외부의 상황에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항상 그 상황의 주인으로 존재하면서 상황을 압도하는 자신의 힘을 느낀다.
우리의 교육은 너무나 많은 부분이 상상과 탐구보다는 이미 알려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지식을 생산하기보다, "사건의 쓰레기"인 지식을 암기하는 데 시간을 다 보낸다. 그래 난 인문운동가로 나선 것이다. 인문운동가는 지식을 전달하는 자가 아니라, 인문정신을 생산하여 이 사회를 인문적 높이로 올리고자 하는 사람이다. "생명의 서(書)"를 쓰고 싶다.
생명의 서(書)/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여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沙漠)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死滅)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孤獨)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인문운동가박한표 #대전문화연대 #사진하나시하나 #유치환 #와인비스트로뱅샾62 #지식의생산과인격의성숙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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