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하여/칼릴 지브란
1802.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
(2021년 11월 5일)

조던 B.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12 rules for life)>>에서 말하는 열 번째 규칙은 "분명하고, 정확하게 말하라'이다. 피터슨은 이 규칙의 의도를 네 가지로 분류한다. (1) 그는 자신의 의도를 말로 표현해 보라 했다. 그래야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명확히 날아낼 수 있다는 거다. (2) 그는 자신이 말한대로 행동하라 했다. 그래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아낼 수 있다는 거다. 나도 개인적으로 말과 행동이 다르면, 그와의 관계가 불편하다. 왜냐하면 예측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3) 그는 자신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 관찰하라 했다. 자신의 잘못을 주목하고, 그 잘못을 정확하게 말로 표현하고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라는 거다. 이렇게 할 때 각자의 삶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삶의 비극으로부터 우리를 지켜낼 수 있다는 거다. (4) 그는 삶의 혼돈을 직시하고 정면으로 맞서며, 목적지를 명확히 설정하고, 그 목적지로 향하는 길을 지도에 표시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말하라 했다. 그러니까 지신이 어떤 사람인지 주변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 알리라 했다.
오랜 세월 진화한 인간의 지각 체계는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만드는 방법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사물을 그 자체로 인식하지 않고, 유용한 것 또는 방해하는 것, 둘 중의 하나로 구분하여 받아들인다. 이러한 구분과 구별의 힘을 가장 잘 길러주는 것이 인문학이다. 구분은 무한에 가까운 복잡한 사물의 세계를 구체적인 목적에 맞게 변형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사물을 정확하게 지각할수록 실제와 인식의 괴리를 줄일 수 있다. 이는 사물 그 자체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가치 없는 개체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눈에 들어 온 모든 사물에는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직접 인식한다. 예를 들어 의자를 보면 앉고, 자동차를 보는 것은 올라타거나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도구와 방해물을 보는 것일 뿐, 사물과 대상 자체를 보지는 않는다. 이런 지각 방식은 위험하기도 하다. 우리에게 세계는 이용하거나 극복해야 할 목적물일 뿐 아무런 맥락 없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을 관찰할 때 우리 계획과 행동에 적당히 들어맞고 우리가 그럭저럭 해낼 수 있는 것만 인식한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그렇게 단순화한 세상을 세상 자체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대상들은 우리에게 인식될 목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물들은 그 자체로 완전한, 개별적이고 제한적이며 독립적인 개체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복잡하고 다 차원적인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그래 우리는 그 관계를 정확하게 관찰하여야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인식할 때도 다를 바 없다. 나와 세계를 나누는 경계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1) 사물, 예를 들어 드라이버를 잡어 들면 자동으로 드라이버를 신체의 일부로 판단하여, 즉각 매 목적과 의도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또 다른 예로, 자동차에 올라타는 순간 자동차는 자동으로 우리 자신이 된다. 누가 자동차를 건드리면, 그 공격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2) 이런 자아의 경계는 사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예를 들어 가족, 연인, 친구를 통해서도 확장된다. 예를 들어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3) 그리고 우리는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상황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영화나 소설 속 주인공이 느끼는 모든 것을 느낀다. (4) 때로는 대결하는 집단을 동일시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팀이 라이벌 팀과 경기할 때 벌어지는 일이 그렇다. 팬들은 팀의 승패를 개인적인 문제로 받아들이고, 개인적인 일보다 응원하는 팀의 결과에 더 흥분하고 실망한다. 이런 동일시 능력은 삶의 수준이나 교육 수준에 상관 없이 모두에게서 나타난다. (5) 국가와 개인의 관계 역시 이와 비슷하다. 국가가 객관적인 대상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다를 바 없는 동일시 대상이다. 이는 사화성과 협력 정신의 결과이다. 우리가 자아라는 한계를 벗어나 가족과 팀과 국가 같은 대상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면 협력이 쉬워진다. 동시에 이는 자기 보호 본능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 세계는 모든 것이 움직이고 변한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독립된 단위는 더 작은 독립된 단위들로 구성되고, 더 큰 단위의 부분이 된다. 그런데 전체와 부분을 가르는 층위들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고 객관적이지 않다. 어떤 층위에 속한 단위들 사이의 경계 역시 모호하다. 그 경계는 구체적이고 특정한 조건 아래에서만 타당하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자동차를 객관적인 사물이나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우리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가 주는 도구로 인식한다. 자동차가 그런 목적에 부합하지 않을 때, 즉 기능을 멈췄을 때 사물로 인식한다.
그 도구적 사물이 아무 문제가 없을 때는 단순하게 보이는 세상이 무엇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한없이 복잡해 보인다. 우리가 주변 사물이나 우리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물들 사이의 맥락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확고한 의지, 정확한 목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우리는 인과 관계로 연결된 거대한 그물망에서 극히 일부만을 지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이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어야 한다. 눈 앞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때, 또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감이 오지 않을 때, 우리가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저히 모를 때, 우리는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것, 익숙하다고 느껴지는 것에 눈길을 다시 주어야 한다. 방해물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때, 우리가 지각하는 것은 더 이상 질서의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때는 바로 그 혼돈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비상상태와 창발(創發)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창발은 알려지지 않은 현상이 미지의 것에서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다. '창발하다'라는 프랑스어 에메르제(emerger)의 반대는 이메르제(immerger)이다. Emerger는 자동사로 '수면 위로 나타나다'란 뜻으로 그냥 어떤 도움 없이 부상한다는 말이다. Immerger는 타동사로 '물에 잠기게 하다'란 말이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더 빨라진 미래의 생존 원칙" 중 하나인 "권위보다 창발"을 말하고 싶어서 이다.
그러니까 프랑스어로 에메르정스(emmergence, 솟아남)의 반대는 임메르지옹(immersion, 물에 담그기)이 아니라, 권위(autorite)이다. 영어로는 이머전스(emergence), 한국어로는 '창발(創發)'이라 한다. '창발'을 사전에서는 '남이 모르거나 하지 아니한 것을 처음으로 또는 새롭게 밝혀내거나 이루는 일'이라 설명하고 있다. 요즈음 이머전스, 창발은 '작은 것들(뉴런, 박테리아, 개인)'이 다수가 되면서, 개별 능력을 훨씬 뛰어 넘는 어떤 속성을 드러낼 때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단순한 부분의 합보다 훨씬 더 큰 능력과 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권위적인 조직은 소수의 사람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항로를 결정하는 것이라면, 창발적 조직은 의사 결정이 '내려가는' 경우보다 많은 조직원 또는 이런 저런 이해당사자들로부터 솟아오르는 경우이다. 이 부분에서 인터넷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세상이 바뀌었다. 초연결시대이다.
비상사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정신이 아니라 몸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몸이 정신보다 훨씬 신속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의 것들이 무너져 내리면 지각은 사라지고 몸이 반응한다. 긴급한 상황에서 몸은 모든 가능한 사태에 대비한다. 먼저, 위험 상황을 지각하고 신체가 뻣뻣하게 얼어붙는다. 그리고 반사 반응이 서서히 감정으로 나타난다. 감정은 지각의 다음 단계이다.
비상사태에서 신체는 에너지 소모가 큰 대기 상태를 유지한다. 호르몬 코르타솔과 아들레날린이 분비되어 삼장이 빨리 뛰고 호흡도 가빠진다. 코르타솔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신경계를 흥분 시켜 혈압을 올리고 호흡을 가쁘게 하며 혈당을 높이고 면역 기능 떨어뜨린다. 아드레날린은 위기 상황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뇌과 근육에 산소와 포도당 공급을 늘리고 심장 박동을 강화하며 동공을 확장하여 신체 능력을 일시적으로 향상시킨다. 최선의 상황을 기대하며 최악의 상황을 준비한다. 이 과정은 혼돈이 질서로, 즉 가능성이 현실로 바꾸기 전에 거쳐야 할 자각 과정이다.
살아 있는 것들은 관심을 받지 못하면 죽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우리들의 삶은 인위적인 노력이 더해져야 유지된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명료하고 분명하게 표현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확연히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안개속에 감추면 문제가 생긴다. 삶이 정체되고 혼탁해 지는데도 막연하고 모호한 태도를 고집하는 이유는 두려운 진실을 받아들일 용기가 부족할 때 숨을 곳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면, 그 현실을 지배하고 장악할 수 있다. 여기서 문제를 규정한다는 것은 문제의 존재를 인장한다는 뜻이다. 아프다고 고통을 회피하면 끝없이 지속되는 절망과 막연한 실패에서 비롯된 만성적인 통증에 시달리며 소중한 시간을 흘려 보내게 될 뿐이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혼돈이 얼굴을 드러낼 때, 우리는 말을 통해 혼돈을 바로잡고 질서를 다시 찾을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어떤 것이든 분류하고 정돈해서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렇 게나 불분명하게 말하면, 어떤 것도 모호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목표도 명확하게 표현되지 않아서 불분명하다. 불확실성의 안개가 걷히지 않는 한 세상을 헤쳐 나가기 위한 협상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최고 수준의 삶에 이르면, 영혼과 세계는 언어를 통해 체계화되고, 언어를 통해 연결된다. 명확히 이해되지 않는 끔찍한 혼돈으로 붕괴된 상태에서도 새롭고 긍정적인 질서의 가능성은 존재한다. 그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명료한 생각과 용기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문제에서 탈출하려면 먼저 문제 자체를 인정해야 한다. 문제를 빨리 인정할수록 문제에서 탈출할 수 있는 시간이 빨라진다.
우리는 복잡하게 뒤얽힌 혼돈을 분석하고, 우리 자신을 포함해 모든 것의 특성을 정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며, 세계를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한다. 여기서 분명하고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정확한 표현은 정밀한 구분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실제로 일어난 끔찍한 사건과 일어날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모든 가능한 사건을 구분할 수 있다.
적절한 단어를 찾아내고, 그 단어들로 올바른 문장을 만들고, 그 문장으로 올바른 단락을 구성해야 한다. 과거는 정확한 언어로 핵심을 포착했을 때 온전하게 되살아난다. 눈앞의 현실을 명료하게 서술해야 현재가 미래를 방해하지 않는다. 현재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방치하면 미래가 혼탁하고 불쾌한 모습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정확한 언어로 말해야 한다. 그러면 혼돈에서 질서로 나아갈 수 있다. 용기 있게 진실을 말할 때 현실은 단순해지고 깨끗해지며 명확히 규정되어 삶이 편안해 진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면 복잡하게 서로 연결된 전체에서 떨어져 나와 쉽게 지각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변한다. 이런 식으로 주변을 단순화하면 모든 것이 명확하고 유용한 것으로 변한다. 그러면 복잡성으로 인해 생기는 불안이나 불확실성에 압도되지 않고, 주변의 것들을 활용하며 살아갈 수 있다. 반면에 모든 것이 서로 혼란스럽게 되 섞이면 세상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 진다.
대화할 때도 주제를 의식적으로 명료하게 규정해야 한다. 특히 까다로운 문제를 두고 대화할 때는 더욱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대화의 주제가 '모든 것'이 된다. 이런 무분별한 대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과거에 일어난 문제, 지금 존재하는 문제, 훗날 닥칠 수 있는 문제 등 여러 문제가 주제로 오르면, 대화가 말다툼으로 변한다. 생산적인 대화를 하려면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나를 불행하게 하는 건 정확히 ...이다. 따라서 대안으로 내가 원하는 것은 정확히 ...이다. 당신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정확히 ...이다. 이렇게 한다면 당신과 내가 더는 불행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려면 먼저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 '정확히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정확히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정리한 내용을 솔직히 털어놓음으로써 혼돈에서 질서의 세계를 끌어내야 한다. 그러니까 불행과 혼돈에서 벗어나려면 정확하고 정직하게 말해야 한다.
오늘도 어제에 이어 칼릴 지브란의 시를 공유한다. 결혼 관계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모든 관계도 서로 진실된 관심을 주고, 서로의 공간을 지켜주며 상대를 진실로 걱정하고, 자기만의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방을 바꾸려 하지 않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치 같은 음악이 울릴지라도 기타줄이 따로 있듯이 말이다.
결혼에 대하여/칼릴 지브란
그대들은 함께 태어났으니
영원히 함께 하리라
죽음의 흰 날개가 그대들의 삶을 흩어 놓을 때에도
그대들은 함께 하리라
아니, 신의 고요한 기억 속에서까지도 함께 하리라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리하여 하늘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그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그대들 영혼과 영혼의 두 기슭 사이에서
출렁이는 바다가 되게 하라
서로의 잔을 채워주되 하나의 잔으로
함께 마시지는 말라
서로에게 저희 빵을 주되 같은 조각으로 먹지는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그대들 각자는 따로 있게 하라
비록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서로의 마음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마음 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생명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마음을 간직할 수 있으니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 있는 것처럼
참나무와 편백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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