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대학 협동조합 2026. 1. 4. 22:09

1년 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운동가_박한표 #우리마을대학 #복합와인문화공간뱅샾62 #사랑 #김중 #사랑은_식탁을_타고_온다 #안분지족 #나누어야_한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5년 1월 3일)

오늘의 화두는 '나누어야 한다' 이다.

1. 나는 기회가 되는대로, "사랑은 식탁을 타고 온다"는 말을 한다. 먹는 문화란 단순한 식도락의 차원이 아니다. 음식 요리는 하나의 종합 예술로 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이며, 만일 먹는 문화가 있다면, 그 때 먹는 것은 생존의 차원이 아니라 세련된 문화의 일부분이어야 한다. 레스토랑에서의 외식은 단순한 끼니 때우기가 아니라, 섬세한 미각을 가진 자신들의 혀를 만족시키면서 여가를 즐기는 문화적인 삶이어야 한다. 식탁은 단순히 배고픔을 채워주는 물리적인 공간이지만, 동시에 함께 밥 먹는 사람들의 사랑과 정을 나누고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최근 쉽게 분노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이유는 사랑과 유대가 넘쳐흐르는 식사 공간의 증발과 식탁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정서적 접촉 기회가 부족한 결과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틈나는 대로 딸과 식사를 함께 한다. 오늘 아침 사진은 딸이 만든 <밀푀유나베> 요리이다. 이 요리는 프랑스어로 '천 개의 입사귀(mille feuilles)라는 '밀푀유'와 일본어로 '냄비'라는 '나베'가 합쳐져 만들어진 이름이다. 딸과는 남은 육수로 누룽지를 넣어 국물까지 다 먹는다. 거기다 바디가 약한 칠레의 까르미네르 품종 레드 와인을 곁들이다.

2. 2025년 초에 선택한 두 번째 사자성어가 '안분지족(安分知足)'이다. 이 말은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分數)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앎'이란 뜻이다.  자기 분수에 맞게 무리하지 않고 만족하면서 편안히 지낸다는 거다. 나의 만트라로 늘 외우는 문장은 '자신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족을 알자' 이다.  도덕적 윤리적으로 인격이 높은 덕망 있는 사람은 스스로의 잣대로 오만(傲慢)에 빠지거나 자만(自慢)하지 않고, 크고 작은 일을 나 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삶의 아름다운 향기가 풍긴다. 이렇듯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 분수를 지키며 욕심을 버리고 만족할 줄 아는 삶이야 말로 '멋진' 삶이 아닐까?

3. ‘안분지족’은 노자 <<도덕경>> 제44장의 다음 문장을 소환한다. "知足不辱(지족불욕) 知止不殆(지지불태) 可以長久(가이장구)" 이 말은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치욕을 당하지 않고, 적당할 때 그칠 줄 아는 사람은 위태로움을 당하지 않으니 오래오래 삶을 누리게 된다'이다.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구절이다. 만족(足)을 알고 그치는(知) 것이 내 몸을 살리고, 내 정신을 행복하게 하는 최고의 해답이다. 이 구절을 가지고 노자의 철학이 소극적이고 허무적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문장의 주체는 성공한 귀족이거나 권력자이다. 이미 성공이라는 문턱에 다다른 사람에게 하는 경고이다. 자신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더 큰 탐욕을 보일 때 벌어지는 참사에 대한 경고이다. 소유는 나눔을 통해 빈자리가 비로소 채워진다. 지속(長久) 성공과 생존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족함을 알아야 욕됨이 없고, 멈출 줄 알아야 위태롭지 않다'를 "살아서 창고에 많이 간직하고, 죽어서 무덤에 많이 간직하면, 살아서는 도둑이 쳐들어올까 염려하고, 죽어서는 도굴 될까 근심한다"고 푸는 사람도 있다. 명예와 몸, 몸과 재물, 잃음과 얻음, 그 어느 것도, 엄밀하게 말하면, 더 이롭고 더 아름답지 않다. 문제는 우리 안에서 일렁이는 욕심이다. 그 욕심을 그칠 줄 아는 지혜와 균형이 필요하다. 적당히 만족하고 삼갈 줄 알면 욕됨이 없고, 재물을 크게 쌓지 않으면 많이 잃는 법도 없다. 욕심을 줄이고 가진 것에 만족하며, 멈출 줄 아는 게 중요한 것은 곧 오래가기 위함이다. "가이장구(可以長久)"는 생존의 지속을 말하는 것이고, 편안함을 이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명예보다 몸-생명이 더 중요하다. 몸-생명을 잃은 뒤 재물이나 명예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러니  몸-생명을 성히 보존하려면 욕심을 그치고 지족(知足) 하라고 이르는 것이다.

4. 그리고 나누어야 한다. 안젤러 카터의 <여자는 힘이 세다>에 수록돼 있는 ‘손가락 벌리기’라는 제목의 이 이야기엔 바야우라는 남자의 (이름도 없는) 두 아내가 등장한다. 바야우는 먹을 것이 생기면 두 아내에게 가져다주며 이렇게 말했다. “그것들을 먹을 때는 손을 벌려야만 하오.” 첫째 아내는 남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먹을 것을 다 먹은 뒤 허공을 향해 손을 벌리곤 했다. 하지만 둘째 아내는 남편의 말을 달리 해석했다. “손을 벌려야 한다”는 말을 내가 가진 것을 남들과 나눠야 한다는 말로 이해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죽자 첫째 부인은 쫄쫄 굶어야 했다. 하지만 둘째 부인에게는 무언가를 가져다 주는 사람이 많아 풍족하게 먹을 수 있었다. 첫째 부인이 둘째 부인에게 그 비결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당신은 허공에 대고 손을 벌렸기 때문에 무엇을 줄 상대는 허공밖에 없죠.”

5. 톨스토이는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이다. 가난한 구두장이가 모피 외투를 사러 외상값을 받으러 갔다가 허탕을 치고는 술 한잔 걸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예배당에서 벌거벗은 남자를 보고 발걸음을 재촉했다가 그만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 되돌아가 그를 집에 데려온다. 내일 먹을 빵마저 없어 걱정하고 있던 아내는 남편의 농민 외투를 걸치고 있는 낯선 사내를 보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다. 설상가상 저녁을 차려 달라는 말에 가출하려던 아내를 붙잡은 건  "자네 속에는 하느님이 없는가" 라는 물음이었다. 톨스토이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사람 안에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무엇이 주어지지 않았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첫째와 셋째 질문의 답은 '사랑'이다. 사람들은 나의 안위만을 걱정하며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랑 하나만으로 살아간다는 게 톨스토이의 답이다. 이 답은 이 성경 구절에 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 매일의 삶 속에서 도움이 필요한 이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를 알아 뵙고 섬기는 것이다.

6. 톨스토이의 또 다른 단편소설 <사랑이 있는 곳에 신도 있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이다. 주인공 마르틴은 구두를 만들고 고치는 제화공이다. 착하고 성실한 그가 절망에 빠졌다. 5년 전에 자식 두 명과 아내를 하늘나라로 보냈는데, 근래 하나 남은 막내아들까지 병으로 죽었다. 그는 매일 술로 시간을 보내며,  자신도 빨리 죽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리스도의 삶에 감동을 받은 그는 자신의 삶을 반성하며 새로운 희망을 되찾아 성경 읽기에 열중했다. 하루는 성경을 읽다가 잠깐 잠이 들었는데,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르틴, 내가 내일 찾아 갈 테니 창 밖을 보아라.” 마르틴은 그날 하루 종일 창 밖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언제쯤 오시려 나" 중얼거리며 하나님을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온다는 하나님은 오지 않고, 창밖에 늙은 청소부가 눈을 맞으며 청소를 하고 있었다.  마르틴은 그를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한 뒤,  따뜻한 차를 대접하였다. 청소부를 내보내고 두어 시간이 지나 창밖을 보니, 아기를 안은 여인이 눈보라 속에서 떨고 있었다. 그는 여인을 가게 안으로 맞아들여 먹을 것과 옷을 대접해 주었다. 또 시간이 흘러 거의 해가 질 무렵, 창밖을 바라보니 사과를 파는 늙은 노파가 사과를 훔친 소년을 붙잡고 야단치고 있었다. 마르틴은 밖으로 나가 소년의 죄를 뉘우치게 하고, 사과 값을 대신 갚아주며 노파가 소년을 용서토록 권유하여 원만하게 해결해 주었다. 마르틴은 날이 어두워지자,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마르틴은 성경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그 때 어둠속에서 자신이 낮에 대접했던 늙은 청소부와 아기 안은 여인, 노파와 소년이 나타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르틴, 네가 오늘 만난 사람들이 바로 나이다. 너는 나를 대접한 것이다.” 이후 마르틴은 꿈에서 깨어 나 펼쳐져 있는 성경을 보니,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내가 배고플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를 따뜻하게 맞아들였고, 헐벗었을 때 옷을 주었으니, 내 형제 중에 보 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극진히 대접한 것이 바로 내게 한 것과 같은 것이니라.”

오늘 공유하는 시도 사랑의 이야기이다.


사랑/김중

곱추 여자가 빗자루 몽둥이를 바싹 쥐고
절름발이 남편의 못 쓰는 다리를 후리고 있다
나가 뒈져, 이 씨앙놈의 새끼야
이런 비엉-신이 육갑 떨구 자빠졌네
만취한 그 남자
흙 묻은 목발을 들어 여자의 휜 등을 친다
부부는 서로를 오래 때리다
무너져 서럽게도 운다
아침에 그 여자 들쳐 업고 약수 뜨러 가고
저녁이면 가늘고 짧은 다리 수고했다 주물러도
돌아서 미어지며 눈물이 번지는 인생
붉은 눈을 서로 피하며
멍을 핥아 줄 저 상처들을
목발로 몽둥이로 후려치는 마음이 사랑이라면
사랑은 얼마나 어렵고 독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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