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나를 아끼는 최고의 방법이다.
3년전 오늘 글입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2년 12월 4일)
오늘 아침은 <나를 깨우는 하루 한 문장 50일 고전 읽기>라는 부제의 <<어른의 새벽>> 읽기 아홉 번째 이야기를 한다. 주제는 "글쓰기는 나를 아끼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거다. 글은 잘 쓰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가진 생각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쓸 뿐이라는 거다. 글 쓰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글을 쓰는 목적이 잘 쓰는 데 있지 않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면 시작조차 할 수 없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고, 생각이 빈약하더라도 정확하게 표현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저자 우승희는 <<채근담>>의 한구절을 소개한다. "최고의 문장은 남다른 기교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쓰고자 하는 내용에 꼭 맞게 할 뿐이다." 이 문장은 쓰기에 대한 높은 기대 때문에 쓰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준다. 글쓰기는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고, 마음에 있는 것이 그대로 글에 드러나게 할 수 있다면 좋은 글이라 말할 수 있다.
글은 생각을 표현하지만, 글이 생각을 다듬어 주기도 한다. 쓰다 보면 마음이 정리되기도 하고, 생각지 못했던 마음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생각을 마음에 담아두기만 하는 것과 글로 꺼내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분명한 언어로 바뀌는 과정에서 마음이 해소되고 정화된다. 불안이든, 걱정이든, 아니면 기쁨이든 일단 쓰기 시작하면 감정이 누그러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여씨춘추>>에는 "칼은 잘 벨 수 있기를 바랄 뿐이지, 굳이 막야 같은 명검이기를 바라지 않으며, 마은 천리를 달릴 수 있기를 바랄 뿐이지 굳이 기오 같은 명마이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한다. 글이라는 것도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으면 그만이지 최고의 글을 바랄 필요는 없다. 저자 우승희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본다. "글을 쓰기 전에 나는 내 생각을 그렇게 중시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쓰는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나의 생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내 글이 아무리 부끄럽게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글쓰기는 나를 아끼는 최고의 방법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매일 글쓰기를 한다. 아주 조금씩 이라도 쓰다 보면 내가 보이고, 나의 삶이 보이기에 그 소중한 경험을 포기할 수 없다". 나도 그렇다. 그래 매일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를 쓰는 거다.
글을 쓰려면 내공(內攻)이 필요하다. 내공은 욕망과 능력의 함수이다.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욕망이라면, 그것을 지속하는 힘이 능력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내공은 중국 권법의 용어로 '내가(內家)의 공부(功夫)'를 줄인 말이다. 이는 곧 내적으로 쌓은 힘을 뜻한다. 사실 산다는 것은 온갖 고난을 겪는 거다. 피할 수 없을 바에 야 부딪혀서 겪어 버리는 게 낫다. 그래 인생을 잘 살아가려면 누구든 자율성과 능동성을 발휘하는 길을 반드시 확보해야 된다. 그래야 자유로운 사람으로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런 길 중에 글쓰기가 가장 보편적이다.
고전 평론가인 고미숙에 의하면, 글쓰기의 시작은 발원(發願)과 집중(執中)이라 했다. 글쓰기에서 발원은 생각의 편린들을 모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하나의 주제가 압축되며 발원(發願, 간절한 바람)이 일어난다. 그런 다음 집중하는 거다. 집중하면, 일상과 세계를 재발견하게 된다. 요약하면 간절히 발원하기는 주제를 화두처럼 늘 갖고 다니는 것이다. 그리고 항심(恒心)을 갖고 집중하며 삶의 현장을 놓치지 않는 거다.
그런 다음 글 쓸 내용들의 질서를 부여하는 거다. 산만하게 흩어진 생각의 조각들에 리듬을 부여하는 거다. 질서를 줄 때 그 기준을 봄-여름-가을-겨울로 순환하는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것이다. 우리 존재가 이 리듬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학교 다닐 적에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이라 불렀다. 봄은 기(起)이다. 일어나는 기운이다. 글의 처음에는 스프링(용수철)같은 봄의 기운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승(承)은 기에서 제기한 문제를 펼치고, 가을의 결실처럼, 전(轉)은 말 그대로 전환이 일어나야 하고, 결(結)은 전제 논지를 압축하면서 응축해야 한다 겨울이 되면 만물이 씨앗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이게 리듬을 타는 거다.
봄-여름-가을-겨울, 기승전결, 발단-전개-절정-대단원 등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정리가 된다. 글쓰기 뿐만 아니라, 삶도 마찬가지로 리듬을 타야 한다. 세상 만사가 시작, 중간, 변화, 마무리로 전개되어야 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리듬을 타면 엔트로피 법칙(사물들은 늘 무질서를 향해 달려간다)에 저항해서 방심하지 않고 정신 차릴 수 있다.
그 다음은 골조에다가 육체를 입하는 거다. 피와 살을 입히는 거다. 그건 목차를 짜는 일이기도 하다. 이건 글이 살아 움직이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일상의 모든 것, 즉 들은 것, 읽은 것, 관찰한 것들을 다 활용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잘 배열하고 적재적소에 쓰는가에 달려 있다. 배열의 원칙은 독창성과 논리성이다. 처음에는 유연하게 풍부하게, 마칠 때는 예리하고 단호하게 하는 것이다. 유연하다는 말은 뭐든지 다 섞일 수 있는 유동성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서 독창성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논리적이고 유기적인 완결성이 필요하다.
고미숙은 글쓰기가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은,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은 활동이라 주장했다. 생명의 자율성과 능동성에 가장 적합한 행위라고도 말했다. 실제로 우리는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싶어 한다. 나아가 지혜를 알고 싶어 한다. 다시 말하면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고 싶어 한다. 그걸 가장 잘 훈련할 수 있는 길이 글쓰기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글쓰기는 노동이면서 활동이고 놀이이면서 사색이다. 그 길은 홀로 가는 담대함이 요구되지만 동시에 세상 속으로 깊이 들어가야만, 타자와 깊이 뒤섞여야만 가능하다. 생식과 생장의 원초적 본능이면서 동시에 고도의 지성을 요구한다. 고미숙은 글쓰기가 노후 대책으로 좋다고 강조한다. "노후 대책은 돈이 아니라 일로 하겠다" 개그맨 전유성의 말도 소개했다.
사는 건 누구와 어떻게 연결되느냐 에 달려 있다. 그래서 사는 건 소유가 아니라 활동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고의 노후대책은 관계와 현장의 활동이다. 한 평생을 직장과 핵가족에서만 산 사람은 은퇴 후 힘들어진다. 그러다 보니 돈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걸로는 해결이 안 된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관계와 활동이다. 계속되고 부지런한 활동은 예전의 끈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장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노후 대책은 관계와 현장을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이다. 우정과 지성의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그 속에서 같이 읽고 쓰기를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스토리들이 확장될 수 있다.
그러면서 우리의 삶은, 오늘 시처럼, "어떤 풍경"이 된다. "서로 같은 줄 알고 사랑에 빠졌다가, 서로 달라서 다투곤 하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죠. 서로 달라서 나와 당신이라는 걸. 천년 동안 저 건너 눈길 주고, 만년 동안 속 울음 울다니, 강산의 연애는 아픔이 길기도 하군요. 산에 대한 별 같은 기대와 강물에 대한 꽃 같은 바람을 떨궈버리자 둘은 비로소 풍경이 되었군요. 내가 넘지 못해서 높은 당신, 당신이 건너지 못해서 깊은 나를 알게 되었군요. 당신이 높이를 허물고, 내가 깊이를 메워서 하나가 되면 아득한 사막이 되는 걸 아셨군요. 높이가 곧 깊이인 걸 알고, 산은 더 우뚝하고 강물은 더 깊게 굽이치는군요. (시인 반칠환)
어떤 풍경/이진흥
당신이 산이라면 나는 강, 나는 당신을 넘지 못하고 당신은 나를 건너지 못합니다. 천년을 내게 발을 담근 채 당신은 저 건너에만 눈길을 두고, 만년을 당신 휩싸고 돌며 나는 속으로만 울음 삭였습니다. 그렇게 세월 지나 당신의 능선 위로 별빛 기울고 나의 물결 위로 꽃잎 떨어져 당신은 죽고 나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주검 돌아보니 산은 첨벙첨벙 강 속으로 들어가고 강은 찰랑찰랑 산의 허리 감싸 안고 흘러갑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슬픔도 그리움도 모두 잊어버리고 푸른 하늘 너울너울 날아다니는 새들 바라보며 골짜기에 보얗게 안개 피워 올리는 그런 풍경이 되었습니다.
다른 글들은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최근에는 우리마을대학 홈페이지 블로그에도 글을 올린다. https://www.wmcss.ne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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